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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들의 정원,조선왕릉>겉그림
<신들의 정원,조선왕릉>겉그림 ⓒ 책보세
2009년 6월 30일은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날이다. 단지 우리 민족만의 문화유산이 아닌, 세계인이 함께 공유하고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이 된 것이다.

최근 조선왕릉 답사객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썩 좋은 일이다. 때문인지 인터넷에서 조선왕릉을 답사한 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가족 여행지 혹은 나들이 코스로 어김없이 추천되는 단골 왕릉들도 있을 정도로 조선왕릉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이와 함께 조선왕릉에 관한 책들도 최근 몇 년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이정근의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책보세 펴냄)도 그중 한권이다. 저자 이정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이방원전> <소현세자>를 <오마이뉴스>에 연재했으며 현재 <민회빈강>을 연재중이다.

2년 전쯤, 초등학생과 중학생 남매를 둔 친구가 답사할 수 있는 곳을 묻기에 서삼릉과 서오릉을 추천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벌써 융·건릉에 갔다 왔다"며 다른 곳을 묻는다. 이런 친구에게 "드라마에도 종종 나오고 말들이 뛰어놀아 가족과 연인들이 많이 찾는 '원당 종마목장'이 서삼릉 바로 옆에 있다"고 말했더니 깊은 관심을 보였다.

남매와 의미 있는 답사 여행을 해보고 싶어 한 그 친구가 서삼릉과 서오릉을 별로 반기지 않은 이유는 또 다른 조선왕릉인 융·건릉에 이미 가봤기 때문. 왕릉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지라 커다란 봉분과 비슷비슷한 석물들, 홍살문, 정자각 등으로 이루어진 조선 왕릉은 융·건릉이건 서삼릉이건 그게 그거로 보여 구태여 갈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것이다.

 조선 최초의 왕릉인 태조의 건원릉
조선 최초의 왕릉인 태조의 건원릉 ⓒ 이정근

- 건원릉이라는 능호는 '조선을 건국한 왕'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이후 역대 왕들의 능호는 이성계에 대한 존경과 경외의 의미로 두 자 능호를 피하고 외자로 지었다.

- 사릉은 왕릉으로 조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규모가 소박하고 석물이 단출하다. 왕릉제도를 따라 곡장은 둘렀으나 병풍석과 난간석이 없다. 추복능이기 때문에 무인석도 없다.

- 경릉은 조선왕릉 중에서 유일하게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능이다. 살아 있을 때는 앉아있는 사람 기준으로 왼쪽이 상석이다. 그런데 죽으면 위치가 바뀌어 오른쪽이 상석이 된다. 이러한 기준을 적용하여 정자각에서 보았을 때 왼쪽이 왕이고 오른쪽이 왕후인데 경릉은 그 방위가 바뀌었다.

- 목릉은 전쟁 후유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전란을 겪으며 많은 장인들이 잡혀가서일까? 문·무인석을 비롯한 석물이 크고 우람하나 조형미가 떨어진다. -책속에서

이처럼 조선왕릉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왕이 묻혔는가에 따라 이름이 다르고, 살아생전에 어떤 지위를 누렸는가에 따라 구조나 석물들이 달라지기도 한다. 목릉처럼 무덤을 조영할 당시의 시대적 아픔을 간직한 경우도 있으며 후손들에게 훼손당한 왕릉도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왕릉이나 역사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쉽게 보이지 않는 것들일 수 있다. 때문에 내 친구처럼 조선 왕릉은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의 저자 이정근과 함께 조선왕릉에 가게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 광릉은 홍살문을 지나 정자각에 이르는 길에 박석이 없다. 그냥 흙길이다. 이는 '백성들의 수고를 덜게 하라'는 세조의 유언에서 비롯된다. 박석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돌이 아니었다. 강화도와 강원도에서만 소량 생산됐다.

- 중종은 1544년 11월 15일 창경궁 환경전에서 향년 57세로 승하했다. 중종이 승하하자 그의 유교에 따라 장경왕후 곁에 예장했으나 그 꼴을 보지 못한 문정왕후에 의해 지금의 강남구 삼성동으로 천장되었다. 문정왕후는 중종 곁에 자신의 수릉지를 잡았다. 지아비 곁에 눕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정왕후는 죽은 뒤 그곳이 길지가 아니라는 술사의 주장에 따라 지금의 태릉에 안장됐다. 조선 역대 왕 중에서 아버지 성종과 함께 부인을 가장 많이 둔 왕인 중종은 결국 혼자 있게 된 것이다.- 책 속에서

이처럼 근본적으로 저마다 다른 조선왕릉의 곳곳들을 해박한 역사 지식을 녹여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참도가 무엇이며 정자각은 무엇인가 등 일반인들이 쉽게 알 수 없는 왕릉의 기본적인 것들부터 그 왕릉만의 특징을 세세히 들려줌은 물론이다.  

역사는 물론 왕릉 곳곳을 알 수 있어 비록 책을 통한 저자와의 왕릉 답사지만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왕릉을 재미있게 만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왕릉은 책을 덮고서도 한참을 씁쓸한 기분에 젖게 한다. 세종의 영릉과 경종과 선의왕후의 의릉, 서삼릉이 특히 그렇다.

 군사정부가 훼손한 영릉
군사정부가 훼손한 영릉 ⓒ 이정근

 의릉 경내를 파고든 중앙정보부 건물.1972년 이후락 정보부장이 이곳에서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의릉 경내를 파고든 중앙정보부 건물.1972년 이후락 정보부장이 이곳에서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 이정근

-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군사정부는 능침(봉분과 그 주변)을 제외한 많은 부분을 훼손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의 참도와 사초지, 그리고 능지다. 유감스럽게도 조선은 중국의 제후국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았다. 따라서 왕릉의 참도는 황제릉처럼 3도가 아닌 2도였다. 신이 걷는 신도와 왕이 걷는 어도뿐인 것이다. 그런데 군사정부는 황도를 하나 더 추가해 3도로 만들어 버렸다.'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임금세종을 황제 세종으로 만든 것이다.

- 경종과 선의왕후가 잠든 의릉은 군부세력에 의해 훼손된 대표적인 왕릉이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는 정보정치의 산실 중앙정보부를 의릉 경내에 건축했다. 게다가 정자각 앞에 연못을 파고 장미 등, 외래 수종의 꽃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때마다 나무 그늘 아래서 가든파티를 열었다. 경종은 고문에 시달리는 선량한 시민들의 신음소리와 고기 굽는 냄새 속에서 편하게 잠들어 있었을까. - 책 속에서

이처럼 군부로부터 훼손을 당했으며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 친구에게 추천한 서삼릉 역시 마찬가지, 현재 왕릉권역 많은 부분들이 말의 먹이를 키우는 목초지라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는 서삼릉과 비공개 중인 효릉은 수십 년 동안 말똥과 함께 있다.

제13대 왕 명종과 비 인순왕후의 강릉은 최고 권력을 행사하는 위정자 개인의 사정 혹은 기분 때문에 수난을 당한 경우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자신의 주치의 G.H.루(Rue)에게 매매형식으로 강릉 권역 70만 평방미터를 떼어주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삼육대학 자리다. 부끄럽고 한심하며, 아쉽지만 우리 문화재의 현실이다.

 팔작지붕의 정자각이 이채로운 동구릉 내 숭릉. 조영과 보존이 잘된 곳이다.
팔작지붕의 정자각이 이채로운 동구릉 내 숭릉. 조영과 보존이 잘된 곳이다. ⓒ 이정근

유네스코가 조선왕릉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음은 조선왕릉이 한 왕조나 한 민족의 유산에 머물지 않고 전 인류가 공유해야 할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목릉처럼 시대적 아픔을 어쩔 수 없이 끌어안고 있는 왕릉들과 달리 후손들의 무지몽매함이 훼손한 이 왕릉들은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반성을 하게하는 뼈아픈 사례랄 수 있다.

1405년, 박자청(1357~1423)이 제릉을 수축한 이후 1966년 순정효황후를 유릉에 안장하기까지, 조선왕릉은 561년간 진행된 대 역사의 산물이다.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에는 우리 역사와 왕릉의 과거와 현재가 고스란히 스며있다. 저자는 왕릉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이처럼 훼손된 왕릉에서 탄식하며 왕릉의 미래를 생각해보게 한다.

저자 덕분에 몇 년간 자주 오가면서도 미처 몰랐던, 그리고 보지 못했던 왕릉의 많은 부분들을 보게 됐다. 혼유석의 받침돌이 어떤 왕릉에선 몇 개였다가 몇 년이 흐른 어떤 왕릉에선 몇 개로 변했는지까지 세세하게 알려주고 있는 저자의 왕릉 이야기는 감탄을 하게 한다. 조선왕릉 답사 최고의 길잡이요. 교과서 같은 책이라면 지나칠까.

덧붙이는 글 |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권력투쟁과 풍수로 읽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이야기|이정근|책보세|2010.3.19|16500원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이정근 지음,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2010)


#조선왕릉#세계문화유산#유네스코지정#이방원전#소현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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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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