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최지용·장지혜·김동환·홍현진 수습기자 정리 : 최경준 기자부산·경남지역의 한 건설업자가 폭로한 이른바 '스폰서 검사' 명단에 오른 대부분의 전·현직 검사들은 향응·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는 일부 전·현직 검사들의 증언을 통해 '스폰서 검사' 의혹을 폭로한 정아무개씨로부터 부적절한 술자리를 제공받은 사실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검사의 향응·성접대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대검찰청 차원의 진상조사가 시작된 22일, '스폰서 검사' 명단에 오른 전·현직 검사 50여 명을 대상으로 긴급 전화 인터뷰를 시도했다. 앞서 <오마이뉴스>는 전·현직 검사 40여 명의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는 정씨의 휴대폰 전화번호 저장 내역을 입수했다.
'스폰서 검사' 의혹을 받고 있는 전·현직 검사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일부는 정씨와 안면은 있지만 접대는 받지 않았다며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또 일부는 아예 정씨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며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오른 자체가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울산지검에 근무했던 한 검사는 취재진에게 "보도가 잘못돼서 나중에 책임이 뒤따르는 일은 하지 말고 잘하시라"며 은근한 압박을 가해오기도 했다.
"술 마시러 간 적 있지만... 불쾌하다"부산고등검찰청 등에 근무했다가 현재는 퇴직한 ㅇ변호사는 "88년 정 사장을 처음 알게 되었다"며 "90년 이후 현재까지 만난 적이 있는지…(기억나지 않지만), 내 이름이 (명단에) 들어가서 불쾌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20년 전의 분위기라면 지도위원(정씨를 지칭)이라는 사람과 술을 마셨을 수도 있다"며 "(정씨가) 제법 그럴듯한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어서 행사를 할 때 술자리가 있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경남지역 한 지방검찰청의 갱생보호위원과 검찰 소년선도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검사들과 친분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어 "분명히 (정씨와) 식사는 몇 번 했다"면서도 "그러나 일대일이 아니라, (나는) 말석검사니까, 선배 부장검사들과 같이 했을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특히 ㅇ변호사는 정씨가 검사들에게 상납했다는 '쥐포'에 대해 기억하고 있었다.
정씨는 부산·경남지역 검찰에 근무하다가 서울로 발령이 난 검사들에게까지 스폰서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울에 올라오면 일 주일씩 호텔에 머물면서 매일 검사들을 접대했다"며 "사천 특산물인 쥐포 몇 수십 박스를 트렁크에 싣고 왔는데, (그 박스 안에) 신권으로 30만 원을 넣어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ㅇ변호사는 돈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ㅇ변호사의 말이다.
"집사람도 <PD수첩>을 같이 봤는데, 전 검사들한테 30만 원씩 줬다는 게 기억이 안 나서 물어봤다. 쥐포에 넣어줬다는데……. 나는 그런 기억이 없어서 집사람에게 물었다. 쥐포를 먹은 적은 있지만, 누가 준 건지도 기억이 안 난다."ㅇ변호사는 "앞으로 (대검 측으로부터) 조사를 받더라도 지금한 말과 똑같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지검에서 근무했던 ㅂ검사도 "부산지검 때 부장검사를 따라서 술 마시러 간 적은 있지만, 정 회장(정씨를 지칭)이 누구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어 "특별히 문제 될 만한 일은 없었다"며 "감찰은 받아야겠지만 별 문제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역시 부산지검에 근무했다가 지금은 퇴직한 ㄱ변호사는 정씨와 "얼굴만 아는 사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씨가 폭로한 '스폰서 검사'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씨로부터 향응이나 촌지를 받았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정씨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인사 중 <PD수첩>을 통해 실명이 공개된 박기준 부산지검장은 "저는 개인적으로 할 말이 없다"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부산지검 옆 작은 호프집에 모여, 술 한 잔..."정씨가 폭로한 '스폰서 검사' 의혹과 관련 박기준 지검장과 한승철 대검 감찰부장을 제외한 다른 전·현직 검사의 명단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적은 없다. 그러나 상당수 전·현직 검사들은 자신의 이름이 정씨의 명단에 올라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부산고검을 거쳐 현재는 서울에서 근무하고 있는 ㄱ검사도 그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정씨가 폭로한 접대 기록 문건에) 뭐가 적혀 있는지 모르고 내 이름이 있다는 말만 들었다"며 "공식적으로 만난 것 이외는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대검 차원에서 진행될 예정인 진상조사와 관련 "리스트에 있다는 것만 알고 있는데, 어떻게 대응하겠느냐"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근무하고 있는 ㅇ검사도 "그 사람(정씨를 지칭)은 날 알 수도 있지만 난 그 사람을 전혀 모른다"는 입장이다. 그는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오른 이유에 대해 "법조인의 이름은 쉽게 알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역시 명단에 올라있는 부산지검의 한 검사도 정씨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박기준 지검장, 한승철 감찰부장과 함께 부산지검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는 ㅇ변호사는 오히려 두 사람을 걱정했다.
"그 당시 부산지검에 부장검사가 12명이 있었는데…. 왜 그게(명단이) 올라온 건지 저도 물어보고 싶다. 이 사람(정씨를 지칭)을 기억한다든지…. 남쪽에 오래 근무했다. 부산, 울산… 쭉 있었는데…. 검찰 내부 비상연락망이 있다. (정씨가) 그걸 보고 전화번호를 입력했는지,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다. 난 명함도 안 만들었다. 그 사람은 그렇게 자기 입장에서 그런(접대를 한) 사람이면 기억이 나야 하는데, 기억이 아예 없다. 건설업자다, 어떻다 하는데……. 그 때 한 검사장님, 박 검사장님, 잘 안다. 내가 막내였다. 공직에서 일하면서 큰 실수를 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작은 허물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검사들이 퇴임하는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지만…. 나는 크게 뭐,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으니, 내가 생각하기에 크게 부끄럽거나 그렇지는 않다. 많이 안 됐더라. 검사장님 모시고, 차장님 모시고 잘 지냈다. 부산지검 옆에 작은 호프집에 부장검사들 모여 술 한 잔하고, 서로 간에 잘 지낸다고 할까……. 이런 사태가 터지니까, 그 분들이 이걸 어찌 하시냐는 걱정이……."억울함을 호소하다 못해, 기자에게 "보도가 잘못돼서 나중에 책임이 뒤따르는 일은 하지 마시라"는 압박을 가하는 검사도 있었다. 다음은 울산지검에 근무했던 ㄱ검사와의 취재록이다.
기자 "리스트에 이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나?"검사 "글쎄."기자 "'글쎄요'라는 모르고 있었다는 것인가?"검사 "뭘 알고 싶은가?"기자 "리스트에 검사의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검사 "그걸 알고 싶나? 취재를 나한테 하지 말고 본인이 다른 걸 취재해서 진실에 입각한 팩트(사실) 보도를 해라."기자 "지금 팩트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한 거다."검사 "그것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조사 대상이 되고 있는데, 언론에 '이것이 맞다, 틀리다'라고 말하는 것이 맞지 않다. 언론이 본인의 책임 하에 보도를 하는 거지. 저한테 알려고 하지 말고, 다른 곳을 통해 정확히 취재를 해서 나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게 팩트 확인을 잘 하시라는 말만 하고 싶다."기자 "본인에게 확인하는 게 가장 정확하지 않겠나."검사 "나는 억울하다. 이 말 하나만 하겠다. 나중에 보도가 잘못되면 우린 치명상이니까, 언론에다 대고 이렇다, 저렇다 설명할 것은 아니다. 내가 맞다, 틀리다고 해서 누가 믿어 줄 것도 아니고. 제가 말 하지 않았다고 해서 마음대로 보도를 하라는 것은 아니다. 보도가 잘못돼서 나중에 책임이 뒤따르는 일 하지 마시고, 잘 하시라. 언론에 나와 있는 것이 무척 억울하다."
"뭐라고 돼 있어요, 나는?" ... "그 놈, 참 웃긴 놈이네"한 전직 검사는 자신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접대 등을 받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부산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ㄱ변호사는 "잘난 척하는 게 아니라, 20대 후반에 이름을 날렸고 장인어른이 누구라고 하면 알 정도로 큰 00을 하셨다"며 "왜 (내 이름을) 넣었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고검장을 지낸 ㅁ변호사는 "뭐라고 돼 있어요, 나는?"이라며 호기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물론 ㅁ변호사도 정씨를 전혀 모르고, 자신이 '스폰서 검사' 리스트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금시초문"이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부산 고검에서 근무했던 ㅂ변호사도 "나는 그 양반을 알지도 못하는데 왜 내 이름이 올라와 있는지, 나도 궁금하다"면서 기자로부터 본인에게 제기되고 있는 접대 의혹 내용을 확인하기도 했다.
차장검사까지 지낸 ㅂ변호사는 한발 더 나아가 "금시초문이 아니라 끔찍한 얘기"라며 정씨를 '지저분한 인간'이라고 폄훼했다. 다음은 ㅂ변호사와의 취재록이다.
기자 "'스폰서 검사' 리스트에 변호사의 이름이 올라와 있는 것을 아나?"변호사 "응? 어디 리스트?"기자 "'스폰서 검사' 리스트를 모르나?"변호사 "어, 그런 미친놈이 있나? 무슨 얘기냐, 그게? 무슨 그런 놈이 있어? 그 놈이 어떤 놈인데? 황당한 이야기를 하네?"기자 "<PD수첩>에도 보도가 됐고…."변호사 "아, <PD수첩> 잘 봤다. 그 아주….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무슨 엉뚱한 얘기야?"기자 "변호사도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변호사 "이놈의 자식들, 거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 무슨 리스트인데 그래요, 그게?"기자 "정아무개씨라는 사람이…."변호사 "아니, 정인지, 홍인지(<PD수첩>에서는 홍두식이라는 가명으로 보도), 전혀 모르는 인간인데, 말이 안 되지. 내가 부산에 있었다고 해서 그러는 모양이구나. 허허허. 그 놈, 참 웃긴 놈이네."기자 "정씨를 정말 모르나."변호사 "황당한 얘기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왜 갑자기 이런 뜬금없는 얘기가 나와? 황당하네. 그 리스트라는 게 어디에 나온 건데?"기자 "정씨가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리스트도 함께 제출했다. 정씨가 누군지, 짐작도 되지 않나?"변호사 "전혀…. 그건 황당한 얘기지. 내가 부산에서 근무하면서 그런 사람들, 그런 더러운 인간들하고 접촉한 사실이 없지. 그런 지저분한 인간을 왜 만나요? 검사가. 아이고…."기자 "보도를 보시면서 본인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한 건가?"변호사 "황당하다. 창피해서 부끄럽다고 한 판인데…. 짐작이 안 가는 게 아니라, 그런 사람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야. 이거는 밑도 끝도 없는 그런 황당한 얘기네. 금시초문이 아니라 끔찍한 얘기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한 번 (모 기자에게) 물어봐라. 답변하기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