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돌아온 우리는 배가 고팠습니다. 저녁 먹으러 오라는 전갈을 받았을 때는 반갑고 기대됐습니다. 저녁은 뷔페식이었습니다. 빨갛고 작은 열매가 들어간 노란 밥과 하얀 밥이 나왔습니다. 노란 밥은 간을 해서 버터로 볶은 것 같은데 보기만 해도 속이 느글거렸습니다. 노란 밥은 거들떠 보지 않고 하얀 밥을 커다란 접시에 담았습니다.
닭고기는 향신료와 함께 삶았는데 냄새가 좋아서 욕심을 내 세 조각이나 담고, 생선 한 마리에다가 야채를 수북이 담았습니다. 마침내 접시는 산처럼 쌓였습니다. 굴착기가 산을 야금야금 파들어가듯이 허겁지겁 먹어치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먹은 이 음식이 그 옛날 대상들이 먹었던 음식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녁을 먹은 후 우리는 식당에 붙어 있는 방으로 이동했습니다. 직선 벽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낯선 곡선 방입니다. 하얀 벽의 방은 여러 가지 장식품이나 사람 한 명쯤 숨어 있게끔 움푹 들어간 공간 때문에 인상적이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우린 벽을 따라 둥글게 앉은 채 중앙으로 시선을 모았습니다. 공연이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하얀 색 옷을 입은 남자 두 명이 나오더니 막대기로 칼싸움 비슷한 춤을 췄습니다. 이 남자들은 우리가 대상 숙소에 왔을 때도 이 옷을 입은 채 우리에게 방을 안내했고, 또 식당에서는 이 옷을 입은 채 음식 시중을 들었고, 지금은 또 공연까지 했습니다. 하얀색 옷은 이들의 일상복인 것 같았습니다. 조선시대 우리나라 서민들이 입었던 흰색 바지저고리를 연상시키는 옷이었습니다.
흰색 옷을 입은 남자들의 춤은 특별히 인상적인 것은 없었습니다. 잘 춘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그렇다고 새로운 느낌의 춤도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5분 정도 춤을 추더니 팁을 달라는 듯 바구니를 돌렸습니다. 우리 일행은 5천토만을 냈습니다. 사실 팁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녁도 먹었고, 시덥잖은 공연도 봤고, 이제 할 일은 잠자리에 들어가 사막의 고요를 느끼며 잠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찍 잠들기에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묵은 대상 숙소는 하룻밤 묵는 데 한 사람당 40유로나 하는 엄청나게 비싼 곳이기 때문입니다. 본전 생각이 나서 아이들과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옥상도 올라가보고, 동그랗게 하늘이 올려다 뵈는 안마당도 서성이고, 출입문 로비에 있는 방명록도 뒤적였습니다. 그러다가 여자 두 명을 보았습니다. 인도 여자들처럼 화려한 사리를 걸친 그녀들을 봤을 때 난 현실감이 조금 떨어졌던 모양입니다.
이게 꿈 속이야, 텔레비전 속이야, 할 만큼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걸친 사리가 너무나 화려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 여자들은 너무나 예뻤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톱스타를 만났을 때의 기분이 아마도 이런 기분일 것 같았습니다. 그 여자들은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이곳 대상 숙소에 사는 사람들은 평범한 이란인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남자들의 하얀 옷도 그렇고, 여자들의 의상도 그렇고 지금까지 봐온 이란인하고는 달랐습니다. 대부분의 이란인이 시아파 무슬림으로 여자들은 검은 차도르를 걸치는데 우연히 만난 그녀들의 옷은 차도르하고는 비교가 안될 만큼 화려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시아파 무슬림과는 다른 종류의 종교를 믿는 사람들로 여겨졌습니다.
대상 숙소는 요새처럼 지어졌습니다. 높고 단단해 보이는 돌로 지었습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면 사정이 달랐습니다. 실내는 카펫으로 공간을 구분하고 카펫을 깔아 땅으로부터 올라오는 냉기를 막았습니다. 밖에서 보면 튼튼한 성 같은데 실내는 유목민의 텐트 속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창문이라고는 없고 실내는 밤이고 낮이고 항상 어두웠습니다.
그러나 대상 숙소도 이란의 다른 전통 가옥처럼 둥근 안마당이 있었습니다. 건물은 안마당을 둘러싸고 화장실과 식당, 주인장이 자는 곳, 손님을 재우는 곳으로 구성돼있습니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는 안마당을 지나가야 하는데 아주 커다랗고 여닫는 소리가 요란한 나무 대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조금 불편하다고 생각했지만 안마당에서 올려다본 하늘에 박힌 별은 놀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장갑처럼 빛났습니다.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올려다본 하늘의 별이 너무나 아름다워 난 잠자리에 누워서도 쉽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와 같은 사람들이 또 있었습니다. 옆방에서도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안 자면 옥상에 별 보러 갈래요?""추울 건데요?""난 사막에 온다고 했을 때 한밤중에 별을 꼭 보고 싶었어요."내 부탁을 마지못해 들어준 것인지 아니면 그들도 별이 보고 싶었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린 육중한 대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조금 실망했습니다. 안마당에서 봤을 때는 하늘이 온통 별로 뒤덮인 것처럼 보이더니 실제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하늘 한복판만 별이 송송 맺혔고 가장자리로는 별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1시간만 가면 야즈드예요. 도시의 불빛 때문에 별빛이 빛을 잃은 것이지요."그러면서 두 사람은 자신들이 봤던 별들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사하라 사막에서의 별이었던가, 무슨 호수에서의 별이었던가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들과 달리 외국 여행이 처음인 난 우리나라의 오대산 적멸보궁서 본 별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아마도 나도 오대산 적멸보궁에서의 별을 보지 않았더라면 대상숙소 옥상에서 본 별에도 충분히 감동했을 것입니다. 오대산 꼭대기에 있는 적멸보궁서 본 겨울하늘의 별들이 워낙 인상적이었기에 대상 숙소 옥상에서 본 별이 주는 감동은 그다지 크지는 못했습니다.
다른 두 사람도 별 감동이 없는지 춥다면서 내려가자고 해서 내려왔습니다. 사막에서 가장 기대했던 게 별 보기였는데 그게 별로 신통찮아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 사막을 혼자서 산책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사막에 온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욕심인지는 모르지만 난 사막에서 특별한 감정을 기대했습니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을 경험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기대를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옛날 오대산 적멸보궁서 한없이 쏟아지는 별을 보았을 때 경험했던 그런 특별한 감정을 사막에서 다시 한 번 체험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산책에 기대를 걸었던 것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혼자 걷는 기분은 어떨까, 이런 식의 망상을 피웠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 계획도 무산됐습니다. 밤에 잠을 설치느라 늦잠을 자는 바람에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떠나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