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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전 청와대 홍보수석)가 27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특강 - 왜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움을 벌였나'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전 청와대 홍보수석)가 27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특강 - 왜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움을 벌였나'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권우성

"노무현 대통령은 평소에 국민한테 언론의 정파성을 계속 환기시켜 놓지 않으면 국민들이 선거 때 꼼짝없이 속는다고 보셨다. 그래서 평소 때 한 치도 양보하지 말고 담론 경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현 이화여대 교수)은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기간 언론과 껄끄러운 관계를 가졌던 것은 '담론 경쟁'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항상 '민주정치는 여론 정책'이라 생각했는데 여론을 움직이는 언론이 왜곡보도를 하는 상황에서 이들과의 담론 경쟁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27일 오후 7시 30분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특강' 세 번째 강사로 나선 조 전 수석은 노 대통령과 언론과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참여정부 홍보수석으로 누구보다 노 대통령의 언론관에 대해 잘 이해할만한 위치에 있었던 그는 노 대통령과 언론과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철학과 사상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 사상을 알기 위해선 '진보적 시민주권'을 이해해야 한다. 시민권은 19세기 참정권(절차적 민주주의), 20세기 복지권(실질적 민주주의), 21세기 자치권(참여 민주주의)으로 개념이 확장돼 왔는데, 노 대통령은 21세기 참여적 또는 문화적 민주주의를 추구했다. 즉, 자치권을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를 동시에 추구하는 게 꿈이었다."

 

이어 조 전 수석은 "노 대통령은 저소득층이 시민으로 깨어서 계급투표를 할 수 있는 세상, 자기 운명을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진짜 민주주의라고 보시고 그걸 하고 싶어 하셨다"고 덧붙였다.

 

즉, 국민들이 선거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자기 이익과 계급에 배반하지 않는 투표를 하도록 돕기 위해서는 잘못된 언론 보도에 대해 정부가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그 일에 대통령이 나서야 했을까?

 

조 전 수석은 "당시 밖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면 '대통령 언론하고 싸우지 말라 그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나도 대통령이 언론과 갈등을 빚는 게 싫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홍보수석이었던 본인이 먼저 나서기도 했는데, 노 대통령은 이를 두고 '홍보수석이 나서면 다치고, 대통령인 내가 나서야 파급력이 크다. 그래야 국민들이 많이 관심을 갖게 되고, 이후에 학습이 된다'고 생각하셨다고 전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언론 관계 알려면 그의 철학과 사상 먼저 알아야"

 

ⓒ 권우성

언론과의 담론경쟁은 민주주의 핵심을 '견제와 균형'으로 본 노 대통령의 철학에도 맞다는 것이 조 전 수석의 설명이다. 노 대통령은 인간은 누구나 본능이 있어 견제 받지 않으면 특권을 쓰고 싶어 하므로 서로 견제해야 하고 그 중심에 시민이 있다고 여겼는데 그 철학 하에서 언론과의 견제와 균형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조 전 수석은 "우리가 한 것은 언론의 제안이나 비판을 건설적으로 받아들이는 시스템과 언론이 왜곡 오보를 할 때 바로잡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인데 이것을 가지고 언론이 매일 '언론 탄압'한다고 했다"고 비판했다. 언론 '탄압'은 결코 없었다는 얘기다.

 

그는 일부에서 말하는 언론과의 '싸움'이란 표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내보였다. "대통령이 권력을 써서 언론을 탄압할 생각이었다면 이명박 정부가 <피디수첩>에 하는 것처럼 체포해 구속시키고, 수사·기소하면 기자들 기죽이고 피디들 입 막는 효과를 보는데 굳이 싸울 필요가 있었겠냐"고 말했다.

 

조 전 수석은 "대통령은 대통령의 권력을 쓰지 않고 단지 한 시민으로서 언론 품질 운동을 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언론과 각을 세운 노 대통령의 전략이 본인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다고 조 전 수석은 말했다. 레이건과 클린턴 대통령을 연구한 시트린과 그린에 따르면 연구·정책·경제 업적·개인 이미지 가운데 정부 신뢰를 높이는 데 언론에 비친 개인의 이미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즉 대통령이 어떤 리더십을 행사하고 정부 신뢰도를 올리고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노출 시켜주는 언론과의 좋은 관계가 필수적인데, 노 대통령의 경우 언론과 담론 경쟁을 하며 껄끄러운 관계가 형성돼 이미지에서 손해를 봤다는 게 조 전 수석의 설명이다.

 

그러나 그는 "지지도가 낮다고 해서 그 대통령이 잘 못하는 것은 아니고 지지도가 높다고 해서 잘하는 것도 아니"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지지도와 정부 신뢰도가 매우 높은 대통령이었지만 러시아엔 언론 자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조 전 수석은 "전두환 시절이 지금보다 정부 신뢰도가 높았다"며 "정부 신뢰도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높은 게 어렵지, 전체주의 국가나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당연히 정부 신뢰가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정부 신뢰만 가지고 말할 수가 없는데 <동아일보>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전두환 정부 신뢰도를 발표하며 독재정부보다 못한 정부라고 비판할 걸 보고 진짜 무식하다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한겨레> 만평에까지 '조기숙 생계형 범죄' 떴을 땐 죽고 싶었다"

 

조 전 수석은 참여정부 시절 진보언론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얘기를 꺼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방송과 진보 언론은 참여정부 편이 아니었냐고 얘기하는데 전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겨레><경향> 등은 20세기 복지권을 주장하는데 노 대통령은 자치권을 주장하니까 이념적 갈등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노 대통령이 기자실, 해외 순방 지원 등 언론 특권을 없앰으로써 보수뿐만 아니라 진보언론에서 굉장히 반발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방송과 진보언론에 대한 섭섭함도 토로했다. "진보 언론이 보수 언론처럼 노 대통령의 말실수 잡는 보도를 하고, 방송에서는 8·15 경축사 때 대통령 연설이 아닌 한나라당 입장만 다 실어줬다"며 "국민들이 볼 때 조중동 뿐만 아니라 <한겨레><경향> 방송까지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하니까 잘못했나 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조 전 수석은 "용기는 자기 목숨 버리고 하는 게 용기이지 자기 사장, 삼성 등은 모른척하면서 누구나 다 때리는 대통령 때리는 게 뭐가 용기인가"라고 꼬집었다.

 

2009년 논란이 됐던 노무현 대통령 '생계형 범죄' 발언에 관해서도 조 전 수석은 언론의 보도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평화방송에서 인터뷰할 때 노 대통령이 무혐의라서 검찰 소환해서는 안 된다는 말과 함께 시중에서 자꾸 전두환·노태우 대통령과 비교하길래 마지막에 이 말을 비유법으로 쓴 것"이라며 "<조선><중앙> 뿐만 아니라 다음날 <한겨레> 만평에까지 '조기숙 생계형 범죄'가 떴을 땐 죽고 싶었다"고 말했다. 보수 언론뿐 아니라 진보 언론까지도 발언에 담긴 의도를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철학이 '내가 실패하더라도 국민이 학습했으면 좋겠다는 걸' 대통령이 떠나시고 나서야 깨닫게 됐다는 조 전 수석. 그는 "노 대통령은 정권 교체가 될 거라는 걸 오래전에 아셨다"고 말했다. '10년 주기설'에 따라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시스템을 만들고 국민들 학습시켜주지 않으면 다시 진보의 시대가 오기 어려우니 진보 진영 미래를 위한 주춧돌을 놓겠다는 게 대통령의 뜻이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정치 일체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청와대에 들어가 노 대통령과 일한 게 다 소중하고 보람있었다는 조 전 수석은 청중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강의를 마쳤다.

 

"노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보루는 시민이다, 깨어있는 시민이 보루이지 엘리트나 제도 같은 것을 믿지 말아 달라, 결국 시민들 교육을 내가 할 수 있게 해 달라'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이제 여러분께서 노 대통령이 성공했는지 평가해 달라."


#노무현#조기숙#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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