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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크로폴리스
네크로폴리스 ⓒ 지은경

3개월간의 긴 에르미타 익스프레스에서의 삶이 힘겨워지기 시작했다. 스페인의 봄 햇살은 북부에도 강렬하게 비치고 있었다. 산책하는 곳곳마다 수선화와 벚꽃이 만발했다. 기술적 실업 상태에 놓인 우리는 험상궂은 하늘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대신 여행 중 지나쳤던 장소들을 하나 둘 찾아나서기로 했다.

죽은 자들의 도시 네크로폴리스에 가다

 네크로폴리스.
네크로폴리스. ⓒ 지은경

스페인 북부, 소리아 지방의 쿠이야 카브라스(Cuya Cabras)에 있는 네크로폴리스(Necropolis). 죽은 자들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네크로폴리스는 기원전에 만들어졌다는 이론과 중세시대의 흔적이라는 이론이 팽팽하게 대립된다.

작은 바위 동산 하나가 시신을 담던 무덤들의 흔적으로 뒤덮여 있다. 물론 시신을 안착할 당시에는 엄청난 무게의 바위를 그 위에 얹었을 것이다. 덮개바위는 모두 사라져 인체의 형상을 한 홈들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키가 컸던 사람, 작은 사람, 갓 태어나자마자 죽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아기들의 자리도 이곳저곳에서 발견된다.

많은 죽음의 자리 위에 올라 산책을 하자니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에 있으며, 또 어디로 가는가? 이 세 가지의 질문 중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빼고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어떤 때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라 혼란을 겪을 때도 있다. 그러나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간에 우리는 시간이라는 긴 끈으로 항상 이어져 있다. 그 시간의 흐름을 타고 우리도 같이 흘러간다. 시간은 다음 순간으로 항상 이어져 있으며 그것에 따라 달라지는 장소도 결국 어떤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다.

늙어가고, 움직이고, 새로운 아침을 시작하고, 여행을 하고, 그리고 수많은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며 생을 영위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죽음이 과연 삶의 끝일까? 아니다. 종교적으로 접근하지 않더라도 죽음은 또 다른 형태의 삶의 시작을 의미한다. 먼 훗날 시간이 흘러 이 세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후세대와 교류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죽어서 흙이 되고, 흙은 여러 갈래로 흩어져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를 여행하다가 시냇물을 타고 흐르고 흘러 바다로 가고, 대서양과 태평양을 거친 기나긴 여행 끝에 어느 누군가의 입안을 적시는 존재가 될 것이다. 우리의 몸은 사라지지만 우리의 본질은 영원히 이 땅에 남을 것이다.

아주 먼 곳에 있더라도 어떤 작은 움직임이 또 다른 움직임을 낳고 이어지고 또 이어져 지금의 내가, 이 장소에서, 누군가와 함께 어떠한 일을 도모한다. 사랑하는 사람, 가족, 친구들 동료들, 모든 만남은 아주 오랜 과거, 어쩌면 인류의 시작에서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 조율 중 어느 하나라도 달랐다면 다음의 작용들이 변화해 지금 이 현재는 곧 다른 모습이 된다.

삶의 해답을 찾는 여행은 계속해야 한다

 네크로폴리스.
네크로폴리스. ⓒ 지은경

이 세밀하고 연약한 듯한 연결고리들은 무수한 바뀜이라는 경우의 수들을 지니고 있지만 절대 고리가 풀리는 법은 없다. 고고하고 거대한 그 절대적인 존재 앞에서 이루어진 지금의 나의 모습, 내가 느끼는 감정과 숨 쉬는 공기, 이 모든 것들은 전해지고 전해지며, 또 누군가에게 어쩌면 다른 형태로 전달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존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또 얼마나 멀리까지, 어떠한 형체로 전달될 것인가? 치밀한 계획으로 이루어진 듯한 기막힌 우연으로 내가 누리는 지금이라는 소중한 시간, 무엇으로 계속 채워가야 할 것인가? 나는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아직은 모르지만, 우선은 그 해답을 찾는 여행을 계속해야 할 것 같다.

각 나라마다 장례의 풍습이 틀리고 무덤의 형상이 다를지라도 죽음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마음은 동서양,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동일하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깊은 내면에서 죽음을 통해 새로운 바람을 이루려는 마음이 가득하기 때문이 아닐까?

죽은 자, 이끼 그리고 지금 그 누군가

 네크로폴리스 이끼위에 누군가 그려넣은 하트.
네크로폴리스 이끼위에 누군가 그려넣은 하트. ⓒ 지은경

거대한 네크로폴리스 바위의 그늘진 한 켠에는 동물의 털을 연상시키듯 소복한 이끼들이 돋아나 있었다. 이 이끼들은 기원전, 혹은 중세시대 생을 마감해 바위 안에 안착된 그 누군가의 인체 속에 머물던 어떤 요소들의 영양분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그 이끼들 사이로 누군가 큐피드의 화살을 맞은 심장을 귀엽게 그려놓았다. 죽은 자, 이끼 그리고 지금의 그 누군가, 오랜 시간을 거친 작은 대화의 모멘트.

 바위 위에 새겨진 에르미타.
바위 위에 새겨진 에르미타. ⓒ 지은경

네크로폴리스 숲의 한 귀퉁이에서 우리는 바위 위에 새겨진 죽은 자들을 위한 에르미타를 발견했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그려진 문, 그 문 안으로 우리는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당시 죽은 자들은 그곳을 들어갈 수 있었다. 사후 세계에 대한 염원, 그리고 염원을 담은 열정은 오랜 시간을 담고도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지은경 기자는 지난 2000~2005년 프랑스 파리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최근 경상남도 외도 전시 기획을 마치고 유럽을 여행 중입니다. 현재 스페인에 머물고 있으며, 미술, 건축, 여행 등 유럽 문화와 관련된 기사를 쓸 계획입니다.

사진작가 세바스티안 슈티제가 핀홀 카메라로 찍은 에르미타(ermita) 등 다양한 사진을 만나보시려면 세바스티안의 홈페이지(www.sebastianschutyser.com)를 찾아와 보시기 바랍니다.



#에르미타#네크로폴리스#스페인#쿠이야 카브라스#에르미타 익스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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