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물레책방'에서 다시 만난 법정 스님
헌책방에서 만나는 법정 스님은 어떤 모습일까? 그 '무소유의 철학자' 법정 스님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고 해서 필자는 대구 범어동의 어느 지하공간에 새롭게 자리를 튼 헌책방, '물레책방'을 찾았다.
'물레책방'에선 법정스님의 49제를 맞아, 법정 스님을 추모하는 조촐한 자리를 27일 마련했다. 바로 '법정 스님 수필 낭독회'가 그것이다.
49제, 이제 이 불교의식이 끝이 나면 법정 스님은 이생과는 완전히 이별을 고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고인의 49제를 하루 앞둔 이날 법정 스님을 마지막으로 불러 모시고 다시 한번 당신이 이 세상에 남기신 것들을 새겨보는 시간을 물레책방에서 가진 것이다.
물레책방, 그 지하공간으로 들어서자 법정 스님의 생전의 육성이 나직이 흘러나온다. 점점 내려 들어가자 법정 스님의 그 카랑카랑한 육성이 또렷이 들려오고 바로 정면에선 법정 스님이 예의 그 꼿꼿한 모습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섰다. 그 빈틈없어 보이는 노승은 그렇게 다시 그 공간으로 돌아와 계신 것이었다.
지역 문화공간으로서의 헌책방 '물레책방'
지난 23일 지역사람들의 큰 기대를 안고 새롭게 들어선 '물레책방'은 일주일 동안 '마중물 주간 행사'를 마련했고, 그 하나로 마련한 것이 이날 연 '법정 스님 수필 낭독회'다. 몇년째 방치된 채 버려진 그 지하공간을 멋진 헌책방으로 개조시켜 탄생하게 된 것이 지역 문화공간 '물레책방'이고, 그런 작지만 뜻 깊은 공간에서 스님을 기리는 행사를 다시 열게 된 것이다(관련 기사 - 헌책방을 열고 싶다는, 어느 청년 영화감독의 아름다운 도전).
이 행사를 기획한 '물레책방' 책방지기 장우석씨는 평소 법정 스님을 존경해왔고, 법정 스님이 '깨닮음의 사회화'를 주창하면서 만드신 (사)'맑고 향기롭게' 대구모임의 소리봉사모임 모둠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어서, 고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의 소유자다. 그래서 그는 이날 낭독회의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오늘 이 낭독회는 법정스님 49제를 맞아 고인을 다시 한 번 기리는 것과 아울러 스님 사후 불었던 '무소유' 돌풍에 대해 한 번 진단해 볼까 합니다. 그리고 스님 사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스님의 뜻을 그대로 사회화 시키려 노력하고 있는 '맑고 향기롭게' 모임에 대한 가치를 다시 한번 공유하고 뒤돌아보고자 합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이날 행사는 모인 이들과 함께 스님의 육성으로 당신의 작품 "산에는 꽃이 피네"를 듣고는 스님의 다비식 과정을 담은 한국방송의 <다큐멘터러 3일>이란 프로에서 제작한 "언젠가 세상에 없을 그대에게- 법정스님 가시는 길"를 함께 시청했다.
법정 스님을 기리는 다양한 풍경들
그 프로그램은 스님의 다비식의 모습을 담은 다큐로, 당신을 기리는 다비식 현장의 추모객들뿐만 아니라 가까이에서 스님을 모신 이들과 다른 스님들의 모습과 육성들을 담은 꽤 공을 들인 다큐였다. 다비식을 전날부터 밀착해서 담은 그 프로는 스님을 기리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우려낸 듯했다.
그곳에서 본 다시 본 다비식 장면은 "스님, 불 들어갑니다"란 애절한 목소리로 시작해서 "스님, 빨리 나오세요. 빨리요"란 애통해 하는 불자들의 다급한 음성들이 스님과 함께 활활 타올랐다.
그 프로에서 한 추모객은 말한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 마무리를 잘 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없어! 그런데 법정스님은 달랐어요. 그는 정말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신 분인 것 같습니다" 했고, 송광사의 한 스님은 "스님이 그저 외국 어디에 잠시 나가신 것 같아요. 아마도 곧 돌아오실 것 같습니다" 했다.
그리고 상주가 되는 길상사 주지 덕현 스님은 "저기 저 오래된 소나무 보이죠? 스님은 저 늙어가는 소나무처럼 나이가 드신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는 정말 날카로워서 사람들이 쉽게 다가가지 못했는데, 당신은 늙어가면서는 저 소나무처럼 많이 부드러워졌습니다" 한다.
이 다큐는 이렇게 스님을 추모하는 다양한 사람들, 특히 가까이서 스님을 모신 이들의 스님에 대한 추모의 정을 잘 우려낸 것 같았다. 암튼 이 다큐를 함께 시청한 후에 이제 모인 이들은 비로소 '법정'을 읽기 시작했다. 바로 그 유명한 <무소유>를 낭송한 것인데, 그 낭송방식이 재미있다.
'법정'을 낭송하며, 다시 그를 기리다
낭송은 어느 특정 한사람이 읽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참석한 모두가 한 구절씩을 돌아가면서 읽은 것인데, 참석한 각자의 육성으로 들어보는 그 색다른 맛은 역시 소리봉사모임의 모둠장인 책방지기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무소유>를 그렇게 함께 한 구절 한 구절 읽으면서 모인 이들과 <무소유>를 함께 '공유'하고 스님을 추모하는 마음을 나누었는데, 특히 '맑고 향기롭게' 대구모임의 사무국장을 오랫동안 역임했던 이유호씨는 스님이 '깨닮음의 사회화'를 주창하며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 만든, 스님의 뜻이 그대로 녹아든 모임인 '맑고 향기롭게'가 스님 사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상당히 안타까워했다.
스님 사후 세상은 잠깐 스님을 추모했지, 스님의 뜻이 오롯이 담긴 (사)'맑고 향기롭게'에 대한 관심과 평가로 이어지지 못한 데 많이 서운한 듯했다. 그리고 '맑고 향기롭게'가 마치 길상사의 한 신도모임으로 전락한 듯 보인다며 주객이 전도된 현실에 서운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말한다. "사실 길상사가 만들어진 것은 '맑고 향기롭게'로 스님의 뜻을 제대로 사회화시켜 내기 위해서인데, 이제는 그것이 뒤바뀌어서 '맑고 향기롭게'는 안 보이고 '길상사'만 보인다"
'무소유'를 넘어 '맑고 향기롭게'로
그랬다. 세상은 법정이 가르킨 달은 보지 않고 저 손가락만 본 것처럼 너무 스님 개인의 삶의 모습에만 초점이 가있을 뿐 스님이 그렇게 애정을 쏟았던 '맑고 향기롭게'에 대해서는 무심한 듯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맑고 향기롭게'를 좀더 사회화시키는 이런 문제가 앞으로 스님을 가까이에서 모신 이들의 숙제로 남은 듯했다.
그런데 과연 스님의 남기신 것은 무엇인가? 다 버리고 간 스님의 무소유의 정신만이 남은 것인가? 물론 그 무소유의 철학도 중요하다. 그러나 스님은 마음과 세상과 자연을 청정하게 하자는 정법운동으로서의 '맑고 향기롭게'를 주창한 장본인이시기도 하다.
그래서다. 스님의 그 '무소유'가 널리 읽히는 것 못지않게, 스님이 남긴 '맑고 향기롭게'도 더 널리 세상에 전파되기를 말이다. 그래서 개인의 청정을 넘어, 사회가 보다 청정해지기를 그래서 정말 맑고 향기롭게 되기를 말이다.
이렇게 해서 이날의 행사는 모두 마무리되었고, 낭독회 내내 스님의 말씀이 '물레책방'을 둥둥 떠다녔다. 그 스님의 말씀들을 담아보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육신은 헌옷 같은 것, 그러니 깨어있고 정진하십시오"
"둘을 가지면 애초의 하나까지 없어집니다"
"중생이 앓으면 나도 앓는다"
"우리는 전체의 한 부분, 관계 속에서 얽히고설켜 이루어진다… 한 마음이 청정하면 온 법계가 청정하다 … 그래서 한 사람의 마음이 평온하면 온 가정이 평온해진다 …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앞으로도 새롭게 태어난 이 공간 '물레책방'에서 이날 낭송회와 같은 이런 모임들을 자주 가진다고 한다. 30일(금)은 '마중물 주간' 마지막 행사로 '단편영화 상영회'가 잡혀있다고 한다. (문의 - 물레책방, 053-753-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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