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삼개나루 객주집에 모인 잡놈들은 장안에 떠도는 구성진 얘기에 몇 번이나 군침을 다 잡아 삼키며 키득거렸다. 단숨에 퍼 마신 술기가 오른 탓인지 탁배기 찌꺼기가 턱주가리에 묻은 걸 한손으로 쓰윽 쓱 훔치며 깍두기 김치를 안주랍시고 와삭 와삭 씹어댔다. 개중엔 성깔 급한 인사들도 있어 꺼억 꺽 게트림을 쏟아냈지만 그렇게 보기 좋은 풍경만은 아니었다. 잠방이를 걸친 떡쇠가 방정을 떤다.

"이히히히, 그러니께 고 싸가지 없는 이가(李哥)가 쓸데없는 소리 했구만잉. 낯짝은 쪼그만 하고 말소린 참새 새끼 마냥 조근조근대니 어떤 놈이 사내라고 생각하겄어? 이히히히, 허여멀쑥한 낯짝을 보고 이가가 용감하게 달겨 들었다 혓물만 켰구만잉."

사내들이 낄낄거리는 건 육의전(六矣廛)에서 포목점을 하는 이달수(李達秀)의 소문이 바람을 타면서였다. 간밤에 유곽에서 술을 한 잔 하다보니 술시중 드는 계집아이가 마음에 들었던지 게슴츠레 실눈을 뜨고 부리는 잔수작이 여간 통통했다.

"그래, 네 이름이 뭐냐?"
"묘화(妙花)예요."
"흐음, 묘화라···. 묘한 꽃이라. 뭐가 묘한 구석이 있단 말이지. 그래, 네 나이 몇이냐?"

"열 셋입니다."
"열 셋? 열 셋이라···.열 셋이면 기러기 발자국을 남긴다는 홍상미판(鴻潒未判)이라는데 너는 어떠냐?"
"아직 없습니다."

이가는 완전히 회가 동했다. 전대에 밀어 넣은 하루 매상을 다 내놓고 묘화란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이게 웬일인가. 은근짭짤한 곳은 나오질 않고 물컹한 막대기가 잡히는 게 아닌가.

'으악, 컥!'

사색이 된 채 방에서 뛰어나온 게 이틀인가 하루 전인가 싶었는데 소문은 벌써 삼개나루에 도착해 강을 건널 차비를 하고 있었다. 잡소리 주절대던 장가(張哥)가 못질 하듯 한소릴 내놓는다.

"그 야그만 들으믄 배꼽 옆에 붙은 창자가 꼬여 숨을 못 쉬겄구만잉. 두어 달 전엔가 첩실로 받아들인 계집이 사내 물건까지 있어 기절초풍을 했다는디!"

장가는 카악 칵! 침을 뱉으며 느적느적 걸어가 강가로 몸을 튼 채 시원하게 오줌줄기를 질퍽하게 뽑아냈다. 하품을 늘어지게 쏟아내던 그의 눈길이 크게 치떴다. 물속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건 계집의 죽은 몰골 아닌가.

얼마 전에도 삼개나루 나주댁 선술집에서 칠패시장의 차행수가 변사체로 발견된 일이 있었다. 흙탕물과 낙엽부유물이 뒤엉킨 주변은 합수처리장마냥 혼탁했다. 중등이 부러진 나뭇가지와 해묵은 통나무들이 떠다니는 것으로 보아 한가위가 지난 이레 간의 날씨가 얼마나 사나웠는지를 짐작케 했다. 뭍으로 건져낸 사체는 곳곳이 멍들고 걸친 옷가지가 찢기워진 채 너덜거렸다. 어찌 보면 물짐승이 떠밀려 온 것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사건 현장에 도착한 정약용은 뭍으로 올린 사체에 대해 검시기록을 작성했다. 사헌부 서리배들은 금줄을 쳐 외부인 출입을 막고 괜스레 으름장을 놓으며 설레발이 한창이었다. 물에 빠진 사체는 시간이 경과한 탓에 입은 벌리고 눈은 감았으되 복부는 팽창해 있었다.

"서과는, 다른 사람에게 구타당해 물속에 던져진 경우 어찌 되는가를 말하라."
"예에. 살빛은 당연히 누런빛을 띠고 희지가 않습니다. 눈은 감고 입은 다물었으며 양손가락은 약간 구부린 상탭니다."

"복부는 어떤가?"
"팽창하지 않습니다."

어디 그뿐인가. 몸에 상흔이 있으며 손톱 틈엔 모래와 진흙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 구타를 당해 피살된 사람은 물이 깊으면 복부가 팽창하고 얕으면 그렇지 않다.

"살았을 때 물에 빠진 시체라면 어떤가?"
"남자는 엎어져 누웠지만 여인은 위를 보고 눕습니다. 머리와 얼굴이 위를 향하고 두 손과 두 다린 앞을 향합니다. 입은 다물고 눈은 뜨거나 감기도 합니다."

"일정하지 않다?"
"그렇습니다. 이때 양손은 주먹을 쥐었으며 복부는 팽창해 소리가 납니다."
"두 발바닥은 어떤가?"

"쪼글쪼글 주름 잡히고 허옇게 되지만 부어오르진 않았습니다. 손톱과 발톱 틈이나 혹 신발 안에 모래와 진흙이 들어있고 입과 코 안에 물거품과 약간 맑은 핏자국이 있습니다. 긁힌 상처로도 보인 이것은 살았을 때 물에 빠진 증겁니다."

"이 여인을 손으로 눌러 빠져 죽게 한 증거가 안 보이느냐?"
"그런 경운 아니라고 봅니다. 이 여인은 몸에 상처가 없고 얼굴빛이 붉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물에 빠진 뒤 오래 있다 죽으면 어찌 되는가. 안색은 약간 붉고 입과 코에선 진흙 물거품이 나온다. 특히 복부가 약간 팽창하면 이것은 빠진 지 오랜 후에 죽은 경우다. 그러나 질병으로 죽은 경우는 다르다. 주검(屍)을 누군가가 물에 던지면 어찌 되는가? 입과 코엔 물거품이 없고 배 안에 물이 없으므로 팽창하지 않을 건 당연하다.

여인의 주검을 관아로 옮겨 자세히 살폈다. 보기와는 달리 나이는 마흔이 못 돼 보였는데 손끝이 매끄러운 것으로 보아 험악한 일을 한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고 여염집 아낙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관에서 일하는 쉰쯤 돼 보이는 관매파가 고갤 갸웃거렸다.

"이 아낙은 집주름 일을 하며 지낸 것 같습니다. 처음엔 방물장수였을 것이나 어떤 인연을 집집마다 방문하며 소란떨 일을 만들어 제 잇속을 차렸을 것이오. 손이 매끄럽다는 건 허접한 일을 안 했다는 것이고, 그런 아낙일수록 부산떠는 게 정한 이치니 그런 것으로 본다면 이 아낙은 집주름 일을 하는 것과는 달리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오."

보는 시각이 맞았다. 사체의 임자는 그런 여인이었다. 본시는 방물장수 아낙이었는데 다방골 취선루(翠扇樓) 주인이 사헌부에 행방불명이 된 여인을 찾아달라는 건의를 몇 차례나 올린 적이 있었다. 취선루는 기방(妓房)이지만 항간에 알려진 것과는 유형이 달랐다. 비록 장악원에 악생을 공급하지 못해도 사대부가의 선비들을 꽉 틀어쥔 것으로 본다면 가히 어느 곳과도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녀의 옷을 뒤적이다 속곳에 붙은 조그만 주머니를 찾아냈다. 안에 든 건 육의전(六矣廛) 미곡상의 어음으로 백미 서른 가마 가격으로 수결(手決)한 이는 이종수(李宗洙)였다.

얘기는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안동 김문은 세력을 잃었어도 혀와 귀는 서슬이 시퍼랬다. 그러다보니 쇠락한 김씨 일문의 장녀였지만 아들이 없다보니 세력의 가지를 치는 이씨 일문에 손을 넣어 혼사를 성사시켰다. 열두 해가 더 지난 그해 가을은 나라 안에 흉년이 들어 먹고 살기에도 피폐한 상태였다. 혼사를 진행시킨 중매장이 아낙은 안동 땅에 내려와 그런 얘길 했었다.

"이봐요 아가씨, 이씨 문중의 강구(康究) 도련님은 책을 너무 가까이 해 한양 땅의 행세깨나 하는 집안에 초청을 받아 공자님 말씀을 강설한답니다. 생긴 건 얼마나 잘 생겼다구요. 칠척장신의 훤칠한 키에 미목이 수려해 천하에 둘도 없는 대장부라고요. 그런 가문과 통혼하게 됐으니 그 아니 복입니까. 아가씨는 복 중의 복을 잡은 셈이지요."

생긴 게 왜가리 같아 사내 구경을 못하고 이제 서른에 들어섰지만 이렇듯 마음에 맞는 분이 원하는 상대를 찾아 짝을 이루는 걸 보는 게 더 없는 기쁨이라 떠들어댔다. 신랑감은 집이 삼개나루 가까이지만 그게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일이라고 추임새 놓는 걸 다소곳이 들을 뿐이었다.

안동 김문에 사는 자신들도 내세울 게 없는 처지라 그 댁에서는 앞뒤 가릴 새도 없이 이씨 문중에서 보내온 혼서(婚書)를 받아 접수하고 딸을 가마에 실어 시집보냈다.

"아가씨 도련님은요, 학문이 높아 사대부 집안에선 사윗감으로 눈독을 들입니다만, 한 가지 걸리는 건 시어머닙니다. 평소엔 그러지 않았는데 요즘 갑자기 먹는 걸 그렇게 밝힌다지 뭡니까. 그게 한가지 흠이라면 흠입지요."

사람이니 먹을 것 밝히는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집을 가 첫날밤을 맞이한 다음날 시어머니의 이상한 투정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에이구, 이것들아 니놈들만 밥쳐 묵냐? 그래, 날 굶겨 죽이려는 게냐?"

악을 버럭 버럭 쓰며 된소릴 해대는 바람에 우선 먹을 걸 내놓았는데 그건 그때 뿐이었다. 먹을 게 있으면 조용하고 그게 떨어지면 있는 소리 없는 소릴 꿍얼댔다. 그렇다보니 이웃사람들은 갓시집 온 새색시가 시어머닐 괄시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마른 쑥떡 한 조각이라도 갖다 주면 헹그르르 웃는 낯으로 좋아하지만 먹을 것만 떨어지면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악담을 퍼대기 일쑤였다. 남편은 글을 읽는 지 뭘 하는 지 잠깐씩 왔다 갈 뿐이었다.

어떤 때는 쌀이며 고기를 가져오지만 다른 날은 술에 고주망태가 되어 걷기도 힘들만큼 휘적거리며 투정에 여념없었다.

"아하하하, 나는 이씨 문중의 종손으로 편안할 강(康)에 궁구할 구(究)를 쓴다. 그러니 어쩔래. 장안의 사대부가에 내 씨가 자라고 있는 걸 아느냐 모르느냐? 으흠 꺽! 이것들이 나를 몰라보고 무시를 하다니."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을 널레절레 갖다부치며 횡설수설 해대니 김여인은 시집 온 석달만에 남편의 주사를 치루기까지 이만저만한 곤욕이 아니었다. 그래도 학문의 줄기는 머리에 남은 게 있어 꾸역꾸역 꺼내는 염담(艶談)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보오 부인. 삼고육파(三姑六婆)란 걸 아시오? 이건 말이우다 끄윽, 명나라 초기에 간행된 <철경록(輟耕錄)>에 나온 말이우. 게나 고동이나 사람이 사는 집안에 이것 하나라도 있으면 간도(姦盜)를 불러들인다고 경계했다오. 간도, 그 간도가 뭔 줄 아우?"

"서방님, 그런 얘긴 방에 들어가서 하세요. 오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잖습니까."

"있거나 말거나요. 이보오 부인. 삼고란 여승을 나타내는 니고(尼姑), 여도사를 나타내는 도고(道姑), 점쟁이 여자인 괘고(卦姑)랍니다. 그러면 육파는 뭐냐? 방물장사인 아파, 중매장이 매파, 무당인 사파, 뚜쟁이 여편네인 건파(虔婆), 여의사인 약파, 산파인 온파요. <철경록>의 저자가 아홉 부류인 삼고육파를 분란의 싹으로 여긴 건 아주 잘한 일이에요. 아암, 잘하고 말고!"

이강구는 그 뒤로도 뭔가 얘기를 더 할 것 같았는데 술기가 치솟은지 곯아떨어져 버렸다. 그런데 이레가 지나기 전 김여인은 흉측한 소식을 들었다. 이강구가 어느 대감댁 담을 넘다 그 댁 하인이 휘두른 몽둥이에 맞아 정신을 잃고 달구지에 실려온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그리 궁금한 지 이강구는 삼개나루 근처를 부지런히 오가며 집안일은 뒷전이었다. 그야말로 장돌뱅이가 따로 없었다. 집안엔 꽃같은 색시가 있는 데도 무엇이 그리 바쁘고 궁금한 게 있는지 식전부터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참견하기 일쑤였다.

자식이 무엇을 하건 말건 한쪽 귀까지 먼 시어머니는 하루종일 군것질에만 관심이 팔려 고구마 삶은 것만 주어도 그걸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갓 시집 온 며느리가 무슨 일을 얼마나 해 남편과 시어머닐 먹여 살릴 것인가. 그런 데도 김여인은 아무런 불평없이 손바닥만한 채마밭을 일구거나 품앗이 일을 해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 아무리 봐도 희망없는 일이었으나 새색시는 식구들을 위해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남편이 왈자패에게 흠씬 얻어맞고 반송장이 돼 업혀온 것이다. 집안을 불구덩이 지렛대로 들쑤셔 놓은 것이지만 아는지 모르는지 시어머니는 배고푸다는 투정이 한창이었다.

"이년아 밥 줘! 니년만 밥 쳐먹고 나는 왜 안 주는 거야!"

남편이 반송장이 돼 누웠던 다음날부터 소란은 일어났다. 그래도 품을 팔아 먹을 것이 있어야 모닥숨이나마 내쉴터인데 남편은 운신이 어려운 데다 입만 살아 소리소리 고함치는 게 일이었다. 누군지 모를 상대를 향해 바드득 바드득 이를 갈며 악담을 퍼부어댔다.

"이놈들, 오냐 이놈들 두고 보자! 날 이용해 먹을 대로 이용해 먹구 이꼴로 만든 네놈들이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볼 것이다!"

거기에 맞춰 시어머니의 악다구니도 한자릴 차지했다. 무엇이 그리 흥겨운 일인지 살가운 추임새를 놓는 일까지 벌어졌다.

"아이구, 그럼 그렇지. 네 놈이 날 놔두고 맛있는 닭다릴 다 먹어치웠으니 이런 일을 당하지. 그래 에미가 먹을 건 내일 도착하냐?"

"시끄러워요!"
"오호호호, 그래 그래. 알았다 내일 음식 도착하면 너한테도 날개 하나쯤 주마."

정신없는 시어머니는 그저 먹는 것 타령으로 시도 때도 없이 입맛을 다셔댔다. 서방은 그런 어머니가 맘에 안들었는지 다른 쪽으로 가라고 소릴 질러댔으니 그걸 바라보는 김여인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주]
∎물에 빠뜨린 경우 손은 벌리고 눈은 약간 뜨고 복부는 팽창한다. 투신의 경우, 손은 주먹을 쥐고 눈은 감고 복부는 팽창한다.
∎혼서(婚書) ; 혼인 때 신랑집에서 신부 집에 보내는 편지
∎집주름 ; 부동산 소개업자


#추리,명탐정, 정약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