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30일 앞으로 다가온 6·2 지방선거, <오마이뉴스>는 서울시장 민주당 예비후보로 뛰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를 두 번 만났다. 지난 달 28일 서울 마포 미래발전연구원 회의실에서 40분간 대화했고, 30일에는 아침부터 오후까지 그의 일정을 따라다녔다. 이 인터뷰는 한 전 총리가 지난해 검찰조사를 받은 이후 언론사로서는 첫 대면인터뷰다. [편집자말] |
"아유 박 변호사님, 제가 이제 그 심정을 알겠어요."
지난 2월 22일 <오마이뉴스> 창간 10주년 기념 행사장에서 박원순 변호사를 만난 한명숙 전 총리는 먼저 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박 변호사가 자신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한창 나돌자 불출마를 예견하듯, 훌쩍 영국으로 떠나버리기 얼마 전의 일이다. 마치 박 변호사가 벗어던진 짐을 느닷없이 한 총리가 받게 됐다는 볼멘소리처럼 들렸다.
평소 한 전 총리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서울시장 출마를 고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첫째는 재정, 둘째는 건강이다. 무엇보다 본인은 후배들을 위한 울타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를 수수했다는 의혹으로 검찰조사를 받으면서 입장을 바꿨다. 서울시장 출마 쪽으로 생각이 기운 것이다. 그래서 한명숙 캠프를 책임지고 있는 이해찬 전 총리는 "검찰이 한명숙 선거대책본부장"이라고 했다.
<오마이뉴스>는 한명숙 전 총리가 서울시장 출마로 입장을 굳힌 뒤 여러 경로를 통해 인터뷰를 타진했다. 서울시장 후보로 적합한지, 부드러운 여성 리더십으로 알려진 게 사실과 같은지, 무엇보다 '인간 한명숙'이 궁금했다. 그의 이름 앞엔 늘 '여성 최초'라는 수식이 달려서 범접하기 어려운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가옥주도 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쫓겨나는 군요"지난달 30일 <오마이뉴스>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그의 일정에 동행할 수 있게 됐다. 차 안에서 이뤄진 일종의 '로드인터뷰' 형식이다. 이날 한 전 총리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왕십리 재개발 현장이었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추진된 '청계천변 도심형 장기전세주택'. 서울 성동구 왕십리뉴타운 내 하왕십리에 지하 4층~지상 25층 규모로 지어진 '주상복합형 장기전세주택'은 흙더미가 된 왕십리뉴타운의 상징처럼 우뚝 서 있었다.
마침, 다 무너진 왕십리 뉴타운 공사지역 한 가운데서 아직도 살고 있는 주민들이 마중을 나와 주었다.
"저기 보이는 노란간판 빌딩이 우리 집이에요. 저게 우습게 보여도 10억~20억 가는 건물입니다. 그런데 제가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됐어요. 관리처분 인가가 떨어지니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어요. 전기, 가스, 수도에 제약이 있고 인터넷도 안 됩니다."딱 3채 남은 집 가운데 한 집에 살고 있다는 여성주민이 안타까운 현실을 전하자, 한 전 총리가 말을 이어갔다.
"가옥주인데도 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내쫓겨야 할 대상이 된 거로군요."감색 수트에 검정 운동화를 신은 한 전 총리는 성큼성큼 재개발 공사현장이 보이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연배의 여성이라면 남성이나 보좌진을 앞세우고 자신은 뒤서거니 하겠건만, 제일 먼저 난간에 섰다.
다 뜯겨진 창문, 흙더미로 변해버린 집들, 바람에 달랑달랑 간판만 나부끼는 헌 건물들. 한동안 물끄러미 현장을 바라보던 한 전 총리가 말을 꺼냈다.
"제가 오늘 제대로 봤어요."왕십리 재개발 현장에서 만난 가옥주들은 한 전 총리에게 자신들의 상황을 상세히 전달했다. 성동구청은 "도대체 얼마를 원하는 것이냐"고 주민들에게 묻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원주민 청소가 아니라 원주민 정착"이라고 몇 차례 강조했다. 건설사들의 이익을 위한 놀음에 최소한 구청은 끼어들지 말고 주민 편에서 행정절차를 지켜야 하는 게 아니냐고 성토했다.
한 전 총리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인 뒤 "아이들 감기 들까 걱정"이라며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
한명숙의 도시락
4월답지 않게 날씨는 맵찼다. 이명박정부가 4대강을 파헤쳐 강신이 노한 게 아니냐는 우스개에 한 전 총리도 맞장구를 쳤다. 한 전 총리가 탄 차량은 왕십리를 거쳐 '유령단지화' 하고 있다고 비판받고 있는 문정동 가든파이브 현장으로 옮겨졌다.
시계는 점심시간인 12시를 지나고 있었다. 슬쩍 개인사가 궁금해졌다.
- 식사는 어떻게 하세요?"전 가급적 도시락 싸갖고 다녀요. 언젠가 우리 남편이 15일간 연속으로 도시락을 싸준 일이 있었는데, 반찬은 매번 멸치볶음과 오이지. 한 번도 안 바뀌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생이 와서 반찬을 좀 해놓고 가면, 그걸 매번 똑같이 싸줬던 거예요."
- 요즘은 어떻게 하세요."동생이 싸줘요. 택시로 10분 거리에 사는데 매일 우리 집에 와요. 어느 때는 새벽 5시 30분에도 오고, 주로 내가 나가는 시간에 맞춰 오죠. 애들 다 컸으니까 도와주는 거예요. 어떤 날은 도시락 두 개도 싸줘요. 식당에서 먹으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조미료도 그렇고, 주로 도시락을 먹어요. 시간 없을 땐 이렇게 차 안에서도 먹고."
동생 선숙씨가 싸주었다는 '한명숙의 도시락'이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됐다. 글라스락 통에 국물 뺀 김치찌개, 불고기, 오이지 그리고 잡곡밥과 물. 디저트로는 노랑 파프리카를 쌌다. 배를 좋아해서 동생이 매번 배를 싸주는데, 배가 떨어져서 파프리카를 싸줬노라고 수줍게 말했다. 보온도시락이라 밥이 따뜻하다는 한 전 총리는 머쓱해하며 홀로 식사를 시작했다.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식사하는 게 민망했던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밥이 많게 느껴지지?"하면서 웃었다. 기실 요즘 일하는 여성들은 결혼해도 친정식구나 시집 도움 없인 살 수 없는 게 현실인데, 한 전 총리도 마찬가지로 느껴졌다. 육아와 가사에서 남편의 도움은 받았을까.
"가사노동과 육아문제로 저도 남편과 엄청 많이 싸웠어요. 서로 이해관계가 상충되니까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아이 보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남편은 그 시간에서 자유로워지는 거니까요. 우리 심각한 수준으로까지 싸웠더랬어요."
"부부가 함께 일한다면 가사와 육아는 늘 싸움의 대상"- 박성준 교수님은 나름 진보 아니에요?"진보 보수 떠나서 남녀가 함께 일하는 경우에는 누구에게나 이 문제가 자기 문제로 나타날 수밖에 없어요. 상대적으로 우리 남편이 진보이기 때문에 머리와 가슴으로는 이해해도 손발이 움직이는 게…, 제가 보기엔 좀 더 수준이 높아졌으면 좋겠는데 남편 입장에서는 상당히 노력하고 있는데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상처받고 힘들어하고 그랬죠."
- 요즘도 가사노동 분담 때문에 싸우세요?"이미 많이 편해졌고, 모든 걸 나눠서 하는 게 체화 됐어요. 설거지통에 씻을 그릇이 있으면 씻곤 하지요.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개고 너는 것은 제가 직접 해요. 그런데 일이 많을 때는 집안 살림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요. 누가 좀 해줬으면 하지요. 특히 오늘 저녁엔 뭐 해먹나, 이게 제일 큰 걱정이지요."
- 혹 육아문제로 아이를 하나만 두신 건가요?"일하면서 아이 키우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저는 정말 강도 높은 일을 했잖아요. 그리고 제가 마흔에 첫 아이를 얻었는데 너무 늦었었고, 그래도 더 낳으려면 더 낳을 수도 있었겠지만 솔직히 하나 키우는 것도 버거웠어요."
- 요즘 저출산 문제가 사회적 화두인데요."솔직히 아이를 더 낳아라, 그런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이 낳아 기르는 조건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육아비용 뿐 아니라 사회 전체 인프라가 아이 낳아 기르기 힘든 조건이잖아요. 육아수당 늘려줄 테니 애를 더 낳아라? 이건 말이 안 되는 거라고 봐요. 시민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육이나 주거, 일자리, 노후 등 종합적인 기반이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그런 차원에서 출산율은 급격히 늘지 않는다고 봐요."
"제가 참 밑바닥에서 별별 고초 다 겪었어요"
- 박 교수님은 서울시장 출마한다고 할 때 반대 안 하셨어요?
"남편이 싫어하고 좋아하고를 떠나 이건 운명이에요. 형이하학적으로 왜 하려고 그러느냐 이렇겐 말 안 하죠. 굉장히 형이상학적으로, 우리는 지금 인생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인데 자꾸 정치에 얽매이면 끌려 다니면서 살게 된다, 그러니 잘 생각해보라.
남편 말이 100% 맞지요. 물론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남편은 내가 하는 일을 존중하지만, 내 일에 자기가 개입하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아주 철저하게 개입을 안 하지요. 누가 찾아와도 선을 딱 긋고. 요즘은 늘그막이 일을 시작해서 재미 붙이고 있지요."
얘기가 끝날 무렵 문정동 가든파이브 현장을 거쳐 지하철 2호선 대림역 부근에서 열린 '민주당 구로구 당원대회' 현장에 닿았다. 차에는 홀로 도시락을 든 한 전 총리만 남겨둔 채 모두 늦은 점심밥을 먹으러 다녀왔다. 한 전 총리는 30분여 남짓 연설문을 다듬으며 차안에 있었다.
한참 뒤에야 비서진들이 오니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저 화장실 좀 가야겠어요.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이잖아요."예순여섯에 불편한 것까지 참고 있으려니 정치가 쉬운 일은 아닌 듯 느껴졌다. 그가 화장실을 다녀온 뒤에 민주당 구로구 당원들이 쏟아져 나와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박영선 의원과 이인영 전 의원이 마중 나왔다. 여러 당원 가운데 제일 먼저 포토라인에 선 이들은 다름 아닌 구청장 후보, 시의원, 구의원 후보들이었다.
한명씩 한 전 총리와 자신의 플래카드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선거용이다. 그 뒤 수백 명의 환호를 받으며 행사장에 입장했다.
"저 한명숙, 살아 돌아왔습니다!"박수갈채가 터졌다. 화장실을 못가 뾰로통해진 얼굴은 간 데 없고 화색이 다시 돌았다. 그는 힘주어 연설했다. 70년대 구로공단 이미지에서 디지털단지로 변모시킨 변화와 혁신의 바람을 몰고 온 힘으로 6·2 지방선거에서 혁신을 이룩하자고 다짐했다.
"저 여자분 누구세요?"
곧바로 차를 또 탔다. 이동이 시작됐다. 이번엔 대학생들의 유권자 참여운동을 독려하는 '대학생 정치참여 선언대회'였다.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야외 행사에 참여한 한 전 총리는 피곤이 어깨를 누르는 듯 고단해보였다. 그는 또 연단에 섰다.
"왜 이렇게 서울에 봄이 안 올까요? 대학생 여러분은 변화의 바람을 이끌 주인공입니다. 방향을 잃고 국민과 불통하는 이명박정부가 국민들의 진정한 행복권을 찾아줄까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6월 2일 지방선거에 투표 참여합시다." 그의 발언이 이어지자 남자 대학생 둘이 기자에게 다가왔다.
"저 여자분 누구예요?"
한명숙 전 총리라고 귀띔하니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탄성을 질렀다. 새내기 대학생인 이들에게는 한 전 총리의 얼굴이 낯설었던 모양이다. 그들에게 살짝 물었다.
- 6월 2일 투표하실 건가요?"네."
- 누구 찍을 거예요?"글쎄요. 한나라당은 아니겠죠?"
대학생들은 기자와 몇 마디 주고받은 뒤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한 전 총리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목이 쉬어 있었다. 그리곤 다음 일정 장소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으로 출발했다. 아침나절 반짝반짝 빛이 나던 그의 얼굴엔 고단함이 뚝뚝 묻어났다.
마포-왕십리-문정동-구로-여의도-광화문. 그의 하루 일정은 바빴고 힘들었다. 고단한 하루 일정을 소화하는데 동행하는 친구는 비타민B와 비타민C였다. 보약 같은 것 없느냐는 물음에 "간단하니까"라고 일축한다.
김대중 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정치에 입문한 뒤 일평생 처음 일산에 큰 아파트를 갖게 됐다는 한 전 총리는 늘 이렇게 큰집에서 살아도 되나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도로 작은 집에서 살게 됐다.
서울시장에 출마하면서 서울 마포 인근에 82.64㎡(25평)로 터전을 옮겼다. 작은 집에 살게 돼 그는 좋아졌다고 했다. 다들 큰 아파트에 못 살아 안달이 난 세상에서 그는 왜 작은 집이 좋다고 하는 걸까.
"우리가 그 집을 4억 원도 안 주고 샀어요. 물론 융자 1억 원을 끼고. 그때 그걸 분양 받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살다보니 그 집이 북향이고 여러 가지로 그렇더라고요. 무엇보다 청소 한번 하려면 너무 힘들더라고요. 155.37㎡(47평)이거든요. 내가 이렇게 큰 집에 살아도 되나 늘 걱정이 됐어요. 지금 25평에 사는데 너무 편하고 좋아요. 걸레질 한번 쓱 하면 다 끝나고. 짐도 기본적인 것들만 있고."정장차림에 운동화, 한약 대신 비타민B와 비타민C 한알씩, 식당 대신 도시락. 한눈에 알아차렸어야 했다. 오랜 민주화운동 속에서 겉치레 없이 살아온 터라 간단하고 명쾌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