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째, 4대째 가업 잇는 '인천탁주'업계인천시민들에게 친숙한 막걸리인 '소성주'를 빚고 있는 인천탁주 합동회사(부평구 청천동 소재)는 11개 양조회사가 모여 만든 회사다. 1974년 정부가 양조장을 통합하는 조치를 시행하면서 11개에 달하던 양조장은 인천탁주(합)로 모이게 된다.
인천 막걸리 역시 대부분의 양조장처럼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식민지 시절 양조장은 대부분 일제가 운영하던 곳이었다.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대화주조와 인천양조는 각각 1936년과 41년에 일본인이 운영하던 것을 조선 사람이 인수해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
11개 주조회사의 사장들은 인천탁주(합) 설립 후 번갈아 가면서 대표를 맡기로 했다. 12년째 대표를 맡고 있는 정규성(54) 사장은 "대화주조의 사업자 등록증을 보면 1936년으로 돼있는데 사실은 그보다 더 오래됐다. 내가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데, 4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인천양조도 있다. 나머지 9곳은 다들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고 설명했다.
11개 주조회사가 모여 인천탁주(합)를 74년 설립한 후 인천탁주는 '소성주'라고 하는 막걸리를 선보이며 인천시민들의 애환을 달랬다. 인천탁주는 그 뒤 1990년 국내 탁주업계 최초로 '쌀 막걸리' 개발에 성공해 탁주업계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인천탁주가 인천을 대표하는 막걸리의 이름으로 '소성주(邵城酎)'라고 한 것은 인천의 옛 지명 중 하나가 소성현(邵城縣)이었기 때문. 문헌 기록을 살펴보면 발해와 신라의 남북국시대인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 신라는 행정제도를 개편하면서 고구려시대 인천의 지명인 매소홀(買召忽)현(=백제시대 미추홀)을 소성현으로 개칭했다.
현재 인천탁주는 하루 평균 6~7톤의 밥을 지어 750㎖병 20개가 들어가는 박스 2000~2500개(=3만~3만 7500리터)에 달하는 막걸리를 인천지역에 공급하고 있다. 모두 40여명이 일을 하고 있는데 대를 이어 일하다보니 60대가 8명이나 되고, 50대가 대부분이며, 30~40대는 5~6명에 불과하다.
"쌀 부족 시대엔 쌀 사용했다간 큰일... 밀가루가 주 원료" 인천탁주가 국내 탁주업계 최초로 쌀 막걸리를 선보일 때까지 국내 대부분의 양조장은 밀가루를 원료로 사용했다. 사실 쌀을 막걸리 원료로 사용한다는 것은 양조업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천탁주가 쌀 막걸리를 개발한 것도 실은 시대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정규성 사장은 "양조장은 원료를 선택해 본 적이 없다. 밥을 먹기 어려운데 쌀을 술의 원료로 사용한다는 것은 당시 금기사항이었고 이를 정부에서도 강하게 통제했다. 그래서 옥분(=옥수수 가루)이 많이 나오면 옥분을 쓰고 대부분은 밀가루를 원료로 막걸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또 "지금은 쌀 막걸리가 95%이상이지만 예전 밀가루 막걸리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밀가루 막걸리는 소량이라 병에 담지 않고 말통에 담아 공급하고 있다. 현재 일부 식당 같은 곳에서 처음부터 주전자에 담아 내놓고 있는 게 바로 밀가루 막걸리"라고 덧붙였다.
인천탁주 역시 수입쌀을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이 역시 인천탁주가 선택했다기보다 정부의 정책과 맞물렸다. 쌀 수입 개방이후 비축한 수입쌀이 해마다 쌓여갔다. 정부로서도 수입쌀을 어떻게든 처리해야만 했던 것.
그렇게 해서 수입쌀이 대부분 양조장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인천탁주가 90년 최초로 쌀 막걸리를 개발했지만, 국내 탁주업계가 쌀 막걸리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게 된 것은 96년을 전후해서다. 그 무렵 정부가 양조장에 수입쌀 사용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인천탁주가 사용하는 수입쌀은 크게 두 종류다. 하나는 자포니카 쌀로 우리 쌀과 종이 같은 중국 쌀과 미국 쌀이며, 다른 하나는 안남미 쌀로 주로 태국 쌀과 인도 쌀이 이에 해당한다.
정규성 사장은 "술밥을 지은 후 누룩과 효모를 섞어 발효시키면 막걸리가 나오는데 보통 15일정도 시간이 걸린다. 중국 쌀이나 미국 쌀은 우리 쌀과 비슷해 큰 차이가 없는데 안남미는 밥을 두 번 짓는다"라고 한 뒤 "누룩과 효모는 같이 들어가기 때문에 밥에서 술맛이 차이가 나지만 일반인들이 봐선 큰 차이가 없다. 다만 밀가루 막걸리와는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는데 밀가루 술이 더 신맛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막걸리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발효 온도다. 그 옛날 집에서 술을 담글 때는 옹기 항아리자체가 발효온도를 27~28도 내외로 일정하게 유지시켜줬다. 그런데 양조장은 대량으로 생산하니 그런 방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발효하면 부글부글 끓는데 30도를 넘어간다. 지금은 냉각수 전산시스템으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지만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지하수를 끌어와 온도 유지하느라 애태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우리 쌀' 막걸리 올해 출시 예정 지난해 막걸리가 붐을 이루면서 인천탁주 역시 큰 신장을 기록했다. 2008년에 비해 매출이 무려 70%이상 증가한 것. 덩달아 인천탁주의 고민도 깊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와인시장과 일본 술 정종시장이 커지면서 막걸리시장은 더욱 위축됐다. 그러다가 지난해 막걸리가 변비와 피부미용, 당뇨 등에 좋다고 하면서 여성을 중심으로 젊은 세대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일대 붐을 형성했다.
이를 두고 정 사장은 "당분간 막걸리 유행은 지속될 것 같다. 한 번은 찜질방에 갔는데 아줌마들이 '난 막걸리'라고 하기에 내 귀를 의심했다. 그전엔 내 친척들도 나더러 '막걸리가 있긴 하냐?'라고 할 정도였으니 막걸리의 인기를 실감했다"고 전했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두렵다고 했다. 그는 "돈이 된다고 하면 큰 손(=대기업)들이 달라붙는데 우리 같이 영세한 사업장은 투자할 여력이 마땅치 않다. 광고와 마케팅, 영업망에서 경쟁이 안 된다"라고 한 뒤 "막걸리가 붐을 이루면서 우리 쌀 막걸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난 기업가다. 우리 쌀은 사실 단가문제가 있다. 인천탁주도 곧 우리 쌀 막걸리를 출시할 예정이긴 한데, 솔직히 두렵다"고 했다.
정 사장이 두려워하는 것은 시장의 반응이다. 보통 막걸리 한 병의 소매가격이 1200원 내외다. 우리 쌀을 사용하게 되면 여기서 150~200원 정도가 더 들어간다.
정 사장은 "모든 시스템을 우리 쌀 막걸리 생산시스템으로 바꿔 우리 쌀 막걸리를 출시했는데 정작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에서 밀리게 되면 인천탁주는 사실상 폐업과 다름없다. 변비에 좋고, 당뇨에 좋고, 피부에 좋다고 해도 시장의 반응은 냉정하다. 공장 33명의 직원과 공급 유통업자 45명의 생사가 여기에 달려있다"고 했다.
그는 또 "인천 막걸리라고 하면 강화 쌀이나 최소 김포 쌀을 써야하는데, 그 쌀 좋지만 비싸다는 것 알지 않느냐? 그래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물론 술 하나 만큼은 자신 있다. 우리 쌀과 막걸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좋은 여건이다. 현재 개발 중이니 이르면 올 중순 무렵 우리 쌀 인천 '소성주'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사장은 끝으로 인천 사람이 아닌 그 누가 먹어도 '이 술은 좋은 술'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술을 빚고 싶다고 했다. 그는 생 막걸리와 일반 막걸리를 궁금해 하는 '소성주' 애주가들에게 "생 막걸리라 함은 일반적으로 모든 막걸리가 다 생 막걸리다. 살균처리를 하지 않았다는 뜻에서 생 막걸리라고 한 것이고, 살균처리를 하면 살균탁주(=살균 막걸리)다. 인천 시민들이 있어 인천탁주가 있는 만큼 인천사람들이 좋아하는 좋은 술을 빚겠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