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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청 편액
호위청편액 ⓒ 이정근

임금이 약방제조를 겸하고 있는 김자점과 의관(醫官) 박태원, 이형익, 유후성, 어의(御醫) 최득룡을 불렀다.

"열이 위로 치밀어 가슴이 답답하다."
"옥체를 너무 혹사하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니다. 독을 먹은 데서 오는 증상인 것 같다."
"내간(內間)에서 발생한 흉역(兇逆)의 변고는 지난 역사에서도 드문 일입니다. 여러 날 죄인을 신문하였으나 자백을 받아내지 못하여 통분한 마음을 가눌 수 없습니다."
좌상 김자점이 머리를 조아렸다.

"의관은 가까이 와서 살피도록 하라."

여자를 너무 가까이해서 생긴 병

선임 의관 박태원을 제치고 이형익이 무릎걸음으로 다가갔다. 인조의 손목에 손을 얹었다. 손목이라고 다 맥을 짚는 경혈이 아니다. 폐의 경맥과 연결된 손목 안쪽 요골동맥이 제자리다.

혈(血)의 흐름이 신통치 않다. 기(氣)가 허(虛)하기 때문이다. 맑고 깨끗한 기가 폐 속을 힘차게 드나들어야 기가 충만할 수 있다. 기가 받쳐주지 못하는 건강은 사상누각이다.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이는 과한 방사(房事)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의원이 환자의 병세를 알아보는 데는 네 가지 방법이 있다. 즉, 듣고, 물어보고, 만져보고, 살펴보기다. 이렇게 종합적으로 진찰할 것 없이 용안을 살펴보기만 해도 누렇게 뜬 모습이 황음(荒淫)에 빠진 폐인 같았다.

"독이 아직 남아 있어서 그렇사옵니다."
진맥을 마친 이형익이 주억거렸다.

"네가 과연 명의로구나! 어쩌면 이리 과인의 마음과 같으냐?"
"황공하옵니다."
이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던 소의 조씨가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해독제를 처방해 올리겠습니다."
의관과 어의가 물러가고 약이 들어왔다. 약재를 선별하고 달이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헌데 미리 준비하고 있는 약처럼 신속하게 대령했다.

부엉이 영역에서 소쩍새가 서식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창경궁의 밤이 깊어갔다. 매봉에서 부엉이가 울었다. 잠시 후, 소쩍새도 울었다. 짝을 찾는 소리다. 창경궁에서 소쩍새 소리는 짝짓기 철을 제외하곤 흔치 않은 일이다. 부엉이 영역에서 소쩍새가 서식한다는 것은 생명을 담보할 수 없다.

"전하! 전하의 옥체에 아직 독이 남아 있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임금의 품속을 파고들던 소의조씨가 사뭇 진지한 어투에 눈물을 그렁거렸다.

"의관이 처방한 해독제를 복용하고 있으니 괜찮아 질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온 몸이 떨리고 모골이 송연합니다. 필시 강씨의 소행이 분명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강상의 법이 지엄하다는 것을 만천하에 보이소서."
"나라의 체통은 법이고 법은 나라의 근간이니라."

며느리는 내 자식이 아니다

이튿날, 인조가 대소신료들을 불러들였다. 임금의 부름을 받은 영의정 김류, 좌의정 김자점, 우의정 이경석, 완성부원군 최명길, 판중추 이경여, 병조판서 구인후, 이조판서 남이웅, 예조판서 김육 공조판서 이시백 판윤 민성휘가 입궐했다.

"내간의 변(變)이 극도에 달하였다. 경들은 대대로 국록을 받은 신하로서 지위가 경상에 있으니 한마디 말도 없이 무사태평하게 세월을 보내서는 안 될 것이다."

"예로부터 흉역(兇逆)의 변이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습니까만 오늘날처럼 망극한 일은 없었습니다. 죄인들을 심문하였으나 끝내 자백을 받아내지 못하였으니 신들의 죄가 큽니다. 대궐은 더없이 엄중한 곳이어서 다른 사람이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고 독을 넣은 범인이 어주방에서 일하는 무리들 중에 있을 터인데 시종 형문을 참아내고 입을 다문 채 죽어가고 있으니 통분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영의정 김류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강씨는 궁중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고 죄악이 이미 드러났으니 신들이 군부를 위해 죄를 성토함에 있어 어찌 털끝만큼이라도 애석해 하는 마음이 있겠습니까. 다만 신들의 구구한 혈성(血誠)은 단지 옛날 성인이 변을 처리한 도리처럼 하시기를 전하께 깊이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공평한 마음으로 살피시어 해당 부서로 하여금 율문을 상고하도록 하소서."

이시백이 법과 원칙을 지키자고 말했다.

"예전의 제왕이 인륜의 변을 처리하는 도리는 하나뿐만이 아니었으며 아버지와 자식 간의  자애심은 어디에나 존재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막중한 처지를 일반적인 죄를 처리하는 것처럼 할 수는 없으니 성상께서는 깊이 생각해 잘 조치하여 은혜와 의리가 둘 다 온전하게 하소서."

천륜은 군신보다 상위개념이라고 최명길이 읍소했다.

"승지는 변을 잘 처리한 성인이 누구인가 살펴서 아뢰어라."

"예전의 제왕으로서 변을 처리하는 방도를 제대로 한 자는 당나라 태종이 있습니다. 태자 승건이 후군집과 반역을 꾀하다 발각되었습니다. 태종이 승건을 처리할 방도에 대해 묻자 내제(來濟)가 말하기를 '폐하께서 자애로운 아버지의 도리를 잃지 않고 태자는 제명대로 살 수 있게 된다면 좋을 것입니다.' 하니, 태종이 따랐습니다."

좌부승지 여이재가 보고했다.

"태종은 성인이 아니고 강씨는 내 자식이 아닌데 이렇게 말하니 이상하지 않은가?"

세자빈 강씨는 분명 강석기의 딸이다. 허나,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소현과 혼례를 올리고 원손을 낳았다. 씨는 비록 강씨이지만 종손을 낳았으니 내 자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자식이 아니라고 한다. 아니라면 아니다. 늘그막에 젊은 색시를 맞아들여 훗날 예송논쟁의 단초를 제공한 군주답다.

비상조치를 취하는 군주

난상토론이 이어졌으나 인조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갑론을박. 치열한 논쟁이 일었으나 임금은 갑(甲)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을(乙)은 갑의 졸이다. 대신들이 궐을 나선 시각이 1경(一更)이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인조가 여명이 밝아오자 좌, 우 포도대장을 불러들였다.

"인심이 흉악하니 이럴 때 일수록 기찰을 느슨히 할 수 없다. 순라(巡邏)를 엄중하게 신칙하고 경들도 자리에만 앉아 있지 말고 친히 순검(巡檢)하라."

포도대장을 내보낸 인조가 병조판서 구인후를 불렀다.

"요즈음 돌아가는 형편이 몹시 우려스럽다. 경은 잠시 동안 금중(禁中)에 머물러서 뜻밖의 사태에 대비하라."

병조판서를 궁궐에 머물게 한 인조가 김자점을 별도로 불러 호위청에 입직(入直)하라 명했다. 대궐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임금이 승정원에 하교했다.

"죄인 강문성, 강문명 등 강씨의 형제들은 지난해 세자의 상(喪)에 감히 간여하여 도감을 지휘하였다. 그때에 내가 이미 그들이 임금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나 경미한 과실만 적용하여 귀양 보냈다. 지금은 그들의 누이가 큰 죄를 범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먼 지방에 있기는 하지만 어찌 모를 리가 있겠는가? 급히 붙잡아 들여 전후의 범죄 사실을 엄히 국문하여 처리하라."

금부도사가 출동하고 파발마가 뛰었다. 진도에 있던 강문명과 흡곡의 강문두, 평해의 강문벽은 도사가 데려오고 제주에 있던 강문명은 제주목사가 압송해왔다. 한양에 도착한 그들은 가혹한 곤장을 견디지 못하고 모두 죽었다. 장살(杖殺)이다. 장살은 죄를 자백받기 위한 곤장이 아니라 죽이기 위한 수단이다. 강씨 형제가 국청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보고를 받은 인조가 명을 내렸다.

"강씨를 폐출하여 사사하라."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세자빈을 죽이라는 것이다. 죄명은 '전복구이에 독을 넣었다'는 것. 허나, 물증도 증인도 없다. 동궁전 나인을 잡아다 물고(物故)를 내었지만 증언도 없다. 이건 심증도 아니고 표적이다. 하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서릿발 같은 명을 내린 인조는 후원에 완공된 팔각정 준공식에 소의조씨와 참석하여 잔치를 즐겼다.

덧붙이는 글 | 의관(醫官)-어의로서 관작을 받은 사람
어의(御醫)-대궐안의 시의
내간(內間)-궁궐 내 부녀자들이 거처하는 곳
흉역(兇逆)-임금에게 불충하고 부모에게 불효하는 흉악한 짓
방사(房事)-성관계하는 일
황음(荒淫)-음탕한 짓
혈성(血誠)-참된 정성
1경(一更)-초경. 술시. 19시~21시
금중(禁中)-궁궐
물고(物故)-죄지은 사람을 죽이는



#강빈#금부도사#창덕궁#인조#소현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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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 <병자호란>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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