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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여왕, 모란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모란꽃은 목단(牧丹)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모란꽃은 꽃의 키가 높은 꽃. 약 높이 2m가량까지 자란다고 합니다. 5월에 피는 꽃으로 꽃받침조각은 5개이고 꽃잎은 8개 이상이라고 합니다.

 모란
모란 ⓒ 김찬순

모란꽃 뿌리의 껍질은 한방재로 쓰이는데, 주로 소염·두통·요통·건위·지혈 등에 좋다고 합니다. 꽃말은 '부귀'라고 합니다. 요즘 모란꽃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흔한 꽃은 아닌 듯합니다.

제 어릴 적 기억으로는 고향집 뜨락에 모란꽃이 오월이면 흐드러지게 피었지요. 그리고 어머니와 누나들이 이 후덕한 모란꽃을 베개잇이나 이불깃에 수를 놓는 것을 많이 보며 자랐습니다. 가장 잊히지 않는 모란꽃 자수는, 고등학교 입학 선물입니다.

멀리 시집간 큰누나는 자수를 곱게 놓아서 내게 책상보로 입학 선물을 했습니다. 나는 누나가 네 명이나 되는데 나를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큰누나였습니다. 큰누나는 막내인 나를 아기 때 업고 키웠습니다. 그 큰누나는 몇 년 전 저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란
모란 ⓒ 김찬순

이 모란꽃의 밑그림으로 누나 네 명이 거의 매일밤 수를 놓았지요. 그때만 해도 가정에서 혼수품을 만들었는데, 섬세한 동양 자수는 시간이 많이 걸려 누나들은 시집갈 때까지 늘 바느질하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우리집 누나 네 명은 사실 초등학교만 나와 집에서 나의 어머니에게 시집가면 살림사는 법과 시집 갈 혼수준비를 했습니다. 요즘 세태에는 정말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 30-40년 전에는 당연한 일인 듯 행해졌으니 말입니다.

우리집 누나들과 동네 누나들이 함께 모여 앉아 한땀 한땀 정성껏 자수를 놓아 시집 갈 때 가지고 가던 그 부귀의 상징, '모란꽃'을 오늘 새벽 산책길에서 만났습니다. 정말 먼 옛날 여왕의 웃음처럼 활짝 만개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모란꽃은 선덕여왕의 설화로 유명한 꽃입니다. 선덕여왕은 어릴 적부터 아주 총명하였다고 합니다.

 모란
모란 ⓒ 김찬순

중국의 당 태종이 선덕여왕에게 모란의 그림과 그 씨앗을 보낸 일이 있다고 합니다. 그때 선덕여왕은 그림에 나비가 없음을 보고, 모란에는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6일) 새벽 산책길에 만난 모란꽃은 향기가 비교적 짙었습니다. 그러니까 당 태종이 그 그림을 보내 온 까닭을, 선덕여왕이 배우자가 없음을 놀리기 위함이라고 풀이했다는 설이 맞을 듯합니다.

모란은 그런데 화단에 많이 피는 여름꽃 맨드라미와 함께 '길화'로 대접받는다고 합니다. 조선 시대에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사람의 서재에는 닭과 함께 이 맨드라미가 많이 그려졌고, 모란꽃은 부귀와 공명을 바라는 뜻에서 수탉과 함께 많이 그려졌다고 합니다.

 모란
모란 ⓒ 김찬순

또한 시인들이 좋아하는 꽃으로 알려진 이 모란꽃. 특히 김영랑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처럼 모란꽃의 애상을 미학적으로 표현한 시는 없을 듯합니다. 김영랑 시인의 이 '모란이 피기까지는' 시는 1934년 <문학> 4월호에 발표된 시라고 합니다.

활짝 핀 모란꽃을 만나고 돌아서는데, 문득 저세상으로 간 큰누나가 보고 싶어 약간 기분이 그랬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모란꽃이 뚝뚝 떨어지고 나면, '삼백예순날 한양 섭섭해 운다'는, 김영랑 시인의 '찬란한 슬픔'이란 표현은 어쩌면 이런 기분이 아닌가 합니다. 모란꽃처럼 후덕한 큰누나의 미소가 내 가슴에서 모란꽃 자수로 새겨져 있는 듯합니다. 이 마음에 새겨진 누나의 모습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듯합니다.

 모란
모란 ⓒ 김찬순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든 내 보람 서운케 무녀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한양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모란#김영랑#봄#목단#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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