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인가, 소설인가. '사실'이 담겨 있어야 할 신문지면에 정체불명의 '허구'가 똬리틀고, '진실'이 숨쉬어야 할 공간에 가공된 '거짓'이 넘실댄다. 건조한 '팩트' 대신 절제되지 않은 상상력이 판치고, '픽션'과 '넌픽션'의 경계가 허물어진 틈을 타서 음습한 환타지가 난무한다. 언론인의 양심과 자부심은 권력 앞에 내던진지 이미 오래. '포스토모던'보다 강력한 'MB시대'의 언론 풍경이 이렇다.
5월 6일, 동아일보는 <천안함 연돌서 어뢰 화약성분 찾았다>고 1면톱으로 보도했다. 천안함 침몰 원인을 규명하고 있는 민군 합동조사단이 "폭발 당시의 충격으로 함체에서 떨어져 나간 연돌(연통)에서 어뢰의 화약 성분을 검출"했고 또 "천안함 내부와 침몰 해역에서 수거한 알루미늄 파편들 가운데 일부가 어뢰 파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내용. 동아일보는 이를 토대로 "천안함 사건의 결정적 증거인 이른바 '스모킹 건(smoking gun)'을 찾은 셈이다"고 대대적으로 떠벌였다.
그러나 동아일보의 대특종은 금세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국방부가 "화약 성분은 나오지 않았다"고 손사래친 데 이어, 합조단의 고위관계자조차 당일 밤 오보라고 강력 부인하고 나섰기 때문. 그는 "화약성분도, 어뢰파편도 나오지 않았고 알루미늄은 정수기에도 사용된다"면서 "화약성분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거듭 확인했다.
보수신문이 먼저 치고 나가고 국방부가 뒤늦게 이를 부인하는 촌극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3월 31일, 조선일보가 "천안함 침몰 전후에 북한 서해안 잠수함 기지에서 북한 잠수정(또는 반잠수정)이 며칠간 사라졌다가 나타난 사실이 확인됐다"며 북한의 어뢰·기뢰 공격 가능성을 제기했을 때도, 정보 관계자는 이를 "완전소설"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오보 수준을 넘어선 완벽한 창작물 내지는 신개념 환타지도 곳곳에서 범람하고 있다. <북 잠수정, 해류 타고 남하 수중 매복해 기습 가능성>이란 제목을 단 4월 18일자 <중앙 선데이>의 기사는 말 그대로 한 편의 전쟁소설이라 할 만 하다.
"북한 서해상 ○○해군기지. 북한 정찰총국 소속 잠수정 수척이 항구를 벗어났다. 먼바다까지 나온 잠수정은 예정된 해역에 도착해 잠수한 뒤 엔진을 껐다. 잠수 상태에서 함은 해류에 실려 남으로 흘러갔다. 잠수정은 남한과 미군의 소나에 탐지되지 않고 백령도 인근에 도달했다. 이윽고 배터리로 엔진을 잠깐 켜서 천천히 이동한 뒤 잠수정은 수중 매복에 들어갔다…천안함이 나타났다…어뢰 공격…잠수정은 해류를 타고 북으로 돌아갔다."
천안함 침몰과 연관된 대표적인 환타지물을 꼽자면 조선일보가 창작해낸 '인간어뢰'가 단연 으뜸이다. 조선일보가 4월 22일자 1면과 4면 기사를 통해 "바다에서 어뢰처럼 생긴 수중 침투장비 앞부분에 폭발물을 싣고 사람이 직접 조종해 목표물에 접근, 충돌한다"는 '인간어뢰'를 소개한 이후, 네티즌들이 이에 영감받아 '물수제비 폭탄 개념도'를 내놓는 등 인터넷에 뜨거운 환타지열풍이 불었을 정도.
기자들의 창작의지는 최고권력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동정을 전하는 기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건군 이래 최초'(?)로 주재했다는 전군 주요지휘관회의 풍경을 스케치한 5월 5일자 한국일보 기사(<군기 바짝 든 220여개 '별'>, A3)는 기자의 건조한 펜끝에서 나왔으리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화려한 수식어를 자랑한다. 감상해 보시라.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이었다. 한 치라도 흐트러질새라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어깨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다... 이 대통령은 46명의 고귀한 생명을 잃은 슬픔을 억누르며 회한에 사무친 충고를 거침없이 쏟아냈고... 무엇보다 건군 이래 최초로 대통령이 군 지휘부를 소집했다는 중압감이 참석자들을 무겁게 짓누르는 듯했다... 참석자들은 마른 침을 삼켰고 회의실을 감돌던 팽팽한 긴장감은 터질 듯 고조됐다... 고해성사와 다를 바 없는 김 장관의 발언에 일부 참석자는 살짝 고개를 떨궜다..."
심지어, 대통령을 띄우기 위해 밝혀지지 않은 어린 시절 에피소드까지 끄집어낸 신문도 있다. 천안함 사태 와중에 뜬금없이 <이명박 대통령의 유별난 떡 사랑>(4월 7일)을 집중조명한 기사를 실은 <매일경제>가 바로 그 주인공. '이명박 위인전'을 방불케 하는 이 기사는 "1950년대 경북의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있었던 동화같은 이야기로 시작한다.
"...1950년대 경북의 어느 바닷가 마을. "오늘 아랫마을 기름집 큰딸 치우는 날이니 가서 일 좀 도와주고 오너라."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렇게 이르면서 한 가지 당부를 했다. "가거든 열심히 일하거라. 하지만 절대 물 한 모금도 얻어 먹어서는 안된다."
꾀죄죄한 차림으로 일하는 동안 주인아주머니는 그 소년을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 봤다. 예나 지금이나 잔칫집 찾아다니며 음식이든 돈이든 '슬쩍' 하는 사람들이 있었나 보다. 잔치가 끝날 무렵, 주인아주머니는 소년을 불러 세웠다.
"한 눈 팔지 않고 정말 열심히 일하더구나. 잔치음식 좀 쌌다. 가족들과 나눠 먹어라." 소년은 "어머니가 일만 돕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하고 돌아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배고픈 소년의 머릿속에는 정갈하게 담긴 떡의 영상이 떠나질 않았다.
그 소년이 바로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 떡을 유난히도 좋아하는 대통령이다...(후략)..."
이런 신문지들에게 '언론의 사명'을 상기시킨다는 게 어쩌면 '우이독경' 내지는 '연목구어'같은 헛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최소한의 부끄러움이라도 남아 있다면 이럴 수는 없을 터. "할 짓 없으면 기자질이나 해야겠다"는 네티즌들의 조롱이 유난히 아프게 꽂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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