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아니 뜨거웠던 첫 '락페'의 추억 이후 기자의 몸은 봄날만을 기다린다. 이삼 년 전만 해도 야외에서의 락페스티벌은 여름이 제 시즌이었지만 인디씬, 디제이씬의 붐이 일어나고 음악축제가 전성기를 맞으며 이제는 봄부터 가을까지 대한민국은 내내 축제다. 그중에서도 제일 재미있는 축제가 뭐냐 하면, 단연 올해로 4회째인 월드 DJ 페스티벌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눈치챘겠지만 '락페'란 락페스티벌의 준말이다. 그래도 생소할 사람들을 위해 좀더 풀자면 말 그대로 축제, 축제다. 무대위의 밴드는 락음악을 연주하고 관객은 음악에 맞추어 춤추고 흔들고 '떼창(관객들이 한목소리로 곡을 따라 부르는 것)'과 '슬램(Slam, 관객들이 둥근 원을 만들고 서로 몸을 부딪히며 어울려 노는 것)'과 기차놀이를 일삼는 그런 거대한 축제의 향연이다.
올해 월드 DJ 페스티벌(이하 '월디페')은 한강공원 난지지구에서 열렸다. 5월 8일 낮 2시에 시작해 9일 새벽 6시까지 이어졌다. 마니아들은 부르기 쉽게 락페라고 지칭하지만, 월드 DJ 페스티벌은 엄밀히 말해 단순한 락페스티벌이 아니다. 그냥 축제, 라는 이름이 가장 걸맞을 것 같다. 네 개의 스테이지에서 락을 비롯하여 힙합과 일렉트로닉, 디제잉, 실험적인 퍼포먼스들이 어우러진다.
기자가 도착한 4시 무렵에는 상당한 마니아층을 보유한 랩퍼 UMC/UW의 라이브가 끝나 가고 있었다. 길고 긴 입장줄을 기다려 입성한 공연장. 이미 맥주 한 캔씩을 끝내고 온 기자와 사진기자는 냅다 주 무대인 글로벌 스테이지로 달려갔다.
이어진 본격 락 공연! 전통적으로 월디페의 사회는 '인디 속 밴드 이야기'라는 카페를 운영하며 실력 있는 밴드를 발굴해내는 것으로 유명한 김민정 기자가 당일 공연하는 밴드 멤버 중 한 명과 함께 맡는다. 올해는 강건너 비행소녀의 보컬 나종서씨가 함께했다.
모던록계의 떠오르는 샛별 메이트에 이어 실력파 밴드 문샤이너스가 등장하자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이어 올해 제7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신인, 최우수 록 노래 부문 수상에 빛나는 국카스텐의 차례가 되자 관객들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재미있는 축제?
한편에서 둥근 원이 만들어지고 있을 때, 관객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갈래다. "이거 뭐야?" 락페에 처음 온 사진기자의 반응이다. "오예, 신난다!" 슬램을 즐기는 락페 마니아인 기자의 반응이다.
덩치 큰 남성들이 주축이 되어 커다란 원을 만들고 몇몇 사람들은 어리둥절, 몇몇 사람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무대 위의 음악이 한껏 시끄러워지면 모두 원 안으로 뛰어들기 시작한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생판 남이라도 상관없다. 축제, 축제에서는 모두가 하나니까! 원 안으로 돌진한 관객들은 서로의 어깨와 어깨, 등과 등을 부딪히며 신나게 즐긴다. 안경이 날아가기도 하고, 신발이 벗겨지기도 한다. 머리는 죄 산발이 되고, 한껏 치장한 옷매무새도 화장도 엉망이 된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즐거운 축제, 축제니까!
밴드공연이 전부가 아니지! 월디페를 물로 보지 마!한참이나 미친듯이 슬램을 하고서 탈진이라는 단어의 뜻을 몸소 체감한 후에, 내귀에 도청장치와 이상은이 나오거나 말거나 기자는 스테이지를 빠져나와야만 했다. 노는 것도 좋지만 야외에서 축제를 즐길 때는 항상 화상과(상단의 사진을 참조해주길 바란다) 탈진에 주의해야 한다. 또한 신발끈은 미리 꼭 조이고 부서질 만한 물건이나 귀중품은 아예 소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동행한 사진기자는 슬램을 하다가 헤드폰이 망가졌댔다.
물과 맥주를 사 마시고 한 숨 돌리며 공연장을 이모저모 뜯어보니, 락페 마니아임을 자처하는 기자의 눈에 월디페의 탄탄한 기획이 들어왔다. 주 무대에서의 공연 외에 보조 무대에서도 신나는 클럽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가설 건물로 어둑어둑한 클럽 분위기를 조성한 블랙존에서도 신나는 힙합음악이 흘러나왔다. 이너트립 스테이지라고 명명된, 또하나의 무대에서는 밴드나 디제잉 외에도 다양한 퍼포먼스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클럽문화는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 락밴드의 공연을 주로 하는 라이브 클럽과 힙합과 디제잉, 일렉트로닉과 하우스 음악으로 이루어지는 '노는' 클럽이 상당히 이원화되어있는 것. 락페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라서, 공연기획자들은 관객이 다양하게 즐기는 것을 바라겠지만, 한참 밴드공연이 이어지다가 디제이가 나와서 하우스 음악을 틀어주면 곧바로 쉬러 가 버리는 이들이 많다. 주 무대 이외에 힙합이나 일렉트로닉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아도 텅텅 비어있기 일쑤다.
그런데 월디페는, 역시 단순한 락페가 아니었다! 모든 무대와 모든 부스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락밴드의 공연에도, 디제잉에도, 힙합에도 관객들은 시종일관 열광했다. 한쪽 부스에서 크게 틀어놓은 스피커 앞에도 관객들은 몰려들어 제멋대로의 춤을 췄다. 커다란 무대에 비하면 시시해보일 수 있는 이너트립 스테이지에조차 사람들이 있었다. 월디페의 슬로건 중 '관객 0%, 참여자 100%'라는 것이 있다. 어디든지 선 자리에서 그대로 축제를 만들어버리는 이 참여자들을 보니 그 슬로건은 실현된 것 같다.
왜 일 년에 한 번밖에 안 해?! 락페의 계절은 이제 시작이에요
월드 DJ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행사장을 찾은 외국인들이 굉장이 많았다. 여타 락페에 비해서도 그 비율이 훨씬 높았는데, 어림으로 30% 이상은 되어 보였다. 한낮의 락, 힙합과 밤새도록 이어진 디제이 파티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개성껏 즐겼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재미있는 축제, '인증'이다!
"이런 즐거운 축제를, 왜 일 년에 한 번 밖에 안해?"사진기자와 서로 아쉬워하며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월디페는 끝났지만, 락페의 계절은 이제 시작이다. 당장 5월 21-22일의 그린플러그드페스티벌, 6월 4-5일의 타임투락페스티벌 등 '착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락페스티벌이 많다. 특별히 외국 아티스트의 공연에 관심있는 게 아니라면, 하루치 티켓이 십여 만 원을 호가하는 메이저 락페가 아니라도, 굳이 유명 페스티벌을 쫓아 영국이나 일본까지 넘어가지 않더라도 좋을 것이다. 축제는 자기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그대, 올 여름은 락페와 함께 뜨겁게 보내 보자. 참, 자외선 차단제는 세 시간마다 꼭꼭 덧바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