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마산YMCA가 주최하는 제 46회 아침논단이 개최되었습니다. 부산대학교 로스쿨 차정인 교수가 '대한민국 법치주의를 말한다'를 주제로 발표하였습니다.
이날 차정인 교수는 이른바 낙동강 소송(하천공사 시행계획 취소 소송)에 관한 이야기로 발표를 시작하였습니다. 2차 공판이 지난 5월 7일에 열렸고, 현재까지 소송이 진행 중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이날 발표 내용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였습니다.
차정인 교수는 학생들과 함께 지난 4월 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개최된 낙동강 소송을 5시간 동안 방청하였다고 하더군요. 그는 "법률가로서 재판을 방청하면서 이 소송에서 원고측(4대강 사업 위법, 위헌 심판을 위한 국민소송단)이 승소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고 합니다.
5시간 동안 이어진 원고 측과 피고 측의 변론을 들어보아도 피고측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거나 신빙성이 낮아 보였고, 반면에 원고측 주장은 정확한 근거와 자료를 제시하여 4대강 소송의 위법성과 부당성을 제대로 주장하더라는 것입니다.
법률가의 눈으로 볼 때 4대강 공사는 "하천법, 환경영향평가법, 문화재보호법, 국가재정법 등을 위반하였다는 것이 명백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원고 측 주장이 제대로 받아들여지면, 판결이 이루어지기 전에 '공사 중지 가처분'이 이루어질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하였다고 하더군요.
그는 실제로 소송을 통해 공사를 중단 시키려면 '공사의 부당성'만으로는 공사를 중단시킬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낙동강 소송을 방청석에서 지켜보면서 "공사의 부당성 뿐만 아니라 하천법, 환경영향평가법, 문화재보호법, 국가재정법 등을 위반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4대강공사, 하천법, 환경영향평가법, 문화재보호법, 국가재정법 위반
재판에 제출된 여러 가지 증거 자료를 종합해 보아도 정부 측에서 주장하는 홍수피해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는군요. 실제로 우리나라의 홍수피해 중에서 4대강 본류에서 일어나는 홍수피해는 2%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아울러 정부가 주장하는 수질개선이라는 것은 "가만히 두면 깨끗한 강물을 보를 만들어 물을 가둔 후에 화학약품을 풀어 수질을 개선하겠다고 하는 터무니없는 계획이더라"고 합니다.
검사와 변호사를 거쳐 로스쿨에서 후배 법률가를 양성하고 있는 차정인 교수는 낙동강 소송을 일컬어 한 마디로 "상식을 가진 사람들과 상식 없는 자들의 싸움이다"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차정인 교수는 4대강 공사가 추진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이명박 대통령 한 사람, 최고 통치권자의 생각이 이렇게까지 일사분란하게 적용되고 있는가?" 하는 것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의문을 품고 쭉 지켜보았더니 4대강 사업과 관련된 정책결정 라인에 공무원들이나 관련 전문가들이 모두 (4대강 공사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최고 권위자이다. 대통령이 최고 전문가이다"하고 '판단의존'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전문가, 공무원 모두 대통령에게 '판단의존'
그는 대통령의 판단에만 의존하는 공무원과 전문가들을 보며 스탠리 밀그램 교수의 실험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스탠리 밀그램 교수의 실험은 '문명국가 독일에서 어떻게 유태인 대학살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풀기 위한 실험이었습니다.
"몇 명의 정신 나간 사람들에 의해서는 이런 거대한 범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독재 권력의 전횡에 참가하거나 방관할 때에만 비로소 국가라고 하는 괴물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 김두식 교수가 쓴 <헌법의 풍경> 중에서
차정인 교수가 김두식 교수가 쓴 책 <헌법의 풍경>에서 인용한 스탠리 밀그램 교수의 실험을 조금 자세히 소개해 보겠습니다
예일대학의 뛰어난 사회심리학자였던 스탠리 밀그램 교수는 '징벌에 의한 학습효과'를 측정하는 실험 지원자 약 1000명을 모았습니다. 지원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선생 역할 1명과 학생 역할 1명을 짝을 짓도록 하고, 학생 역할을 맡은 사람을 의자에 묶어 전기충격장치를 연결하였습니다.
선생 역할과 학생 역할 사이를 칸막이로 막고 단어를 암기하여 테스트 하도록 하였습니다. 선생 역할을 맡은 사람은 틀릴 때마다 15볼트씩 전압을 올려서 충격을 주도록 지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짜 실험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학생 역할을 맡은 사람은 모두 연구원들이었고 전기 충격 역시 거짓이었으며, 선생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인간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450볼트까지 전압을 높이는지를 관찰하는 실험이었던 것입니다.
실험을 주관하는 (권위자)가 "걱정 말고 전압을 높여라.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말로 격려하고, 실험과정에서 전압이 높아질 때 선생 역할을 맡은 사람이 주저하는 기색이 있으면 "계속해요. 책임은 모두 내가져요"라고 압력을 행사하도록 하였습니다.
중간에 얼마든지 "나는 그만두겠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험참가자 중에서 무려 65%가 450볼트까지 전압을 높였다는 것 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실험을 중도에 포기한 35% 중에서도 아무도 실험의 부도덕성이나 위험을 항의하거나 따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실험을 중간에 거부한 사람들조차도 실제로는 부당한 권위에 복종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가공할 만한 국가의 범죄에 참여한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괴물들이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이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사회 속에서 늘 칭찬을 받으며 윗사람 말에 잘 순종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른들 또는 권위자들이 시키는 일이라면 '왜?' 라고 묻지 말고 그냥 '예'라고 말하라는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 김두식 교수의 <헌법의 풍경> 중에서
차정인 교수는 스탠리 밀그램 교수의 실험 결과를 4대강 공사와 관련하여 생각해보면 "이명박 대통령을 최고 권위자, 최고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권위자에게 판단을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상식으로 판단하면 말도 안 되는 공사가 계속 추진되는 것도 정책 결정라인에 있는 공무원들과 관련 전문가들이 최고 권위자인 이명박 대통령에게 '판단의존'을 하고 있기 때문에 4대강 공사가 계속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는 다행히 사법부와 낙동강 소송 재판을 맡은 재판부에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판사는 누구에게도 판단의존을 하여서는 안 된다. 교육과정에서도 판사들은 판단의존을 하지 않도록 교육과 훈련을 받는다. 판사는 늘 독자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그래서 판사는 어렵고 힘이 든다. 4대강 소송에서도 사법부는 판단의존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과연 토목, 건축 최고 전문가인가?
차정인 교수의 발표가 끝난 후 자유로운 토론 시간에 참석자 중 한 분이 4대강 공사와 관련하여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최고 전문가, 최고 권위자라고 하는 판단의존이 일어나는 인식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회장을 지냈기 때문에 토목과 건설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고 최고 전문가라고 하는 주장은 참 우스운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건설 회장을 지냈기 때문에 건설회사의 성공한 경영자로서 권위와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기술 분야의 최고 전문가라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현대건설과 같은 큰 건설회사에는 기술 부문 사장이 따로 있다. 토목과 건설 분야의 최고 전문가는 바로 이 사람들이지 이명박 대통령이 아니다. 그런데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건설, 토목분야의 최고 전문가라고 믿고 있는 것이 정말 문제다."
결국, 4대강 공사와 관련하여 최고 전문가도 최고 권위자도 아닌 이명박 대통령에게 정책 결정라인에 있는 많은 공무원들과 관련 전문가들, 그리고 상당수의 일반 국민들도 모두 '판단의존'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대통령이 공무원들에게 '최고 권위자'로 인식되는 것은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치더라도, 전문 기술자들과 일반 국민들은 권위자에게 '판단의존'을 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장하는 4대강 공사가 '정말 강을 살리는 일인지, 죽이는 일인지' 권위자의 판단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으면 결국 히틀러에게 판단을 의존하여 나치에 협력하였던 독일 사람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지요.
4대강 공사가 정말 옳은 일인지 스스로 판단해 보신 적이 있는지요? 진실에 눈감고 거짓을 묵인하면서 부당한 권위에 복종하고 있지는 않으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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