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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봉 30주년 기념 전시회 청주 한국공예관에서 열린 전시회 속 컬렉션 작품들
▲ 이상봉 30주년 기념 전시회 청주 한국공예관에서 열린 전시회 속 컬렉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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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한국공예관에서 열린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의 30주년 기념식에 다녀왔습니다. 이상봉 선생님께서 직접 전화도 주신데다, 저 또한 작품 전체를 한 곳에 모아놓고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았던 만큼, 이번 전시를 자료화하기 위한 목적이었지요. 이번 전시의 주제는 <전통과 패션의 만남>입니다.

30주년 기념 전시회에서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 선생님
▲ 30주년 기념 전시회에서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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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알고 지낸 지 햇수로 3년에 접어들었습니다. <샤넬 미술관에 가다>가 막 출간되던 날, 저녁 인사동에서 선생님과 만났습니다. 책을 드렸더니, 독특한 책이라며 칭찬도 해주셨고, 책을 계기로 그날 새벽까지 전통찻집에서 열렬히 패션 이야기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때 당시를 떠올려보면, 새벽 3시가 넘어가자, 제 눈꺼풀은 무거워지는데, 패션에 관한 자신의 관점을 설명하는 디자이너의 눈빛은 여전히 반짝거렸지요. '거장을 움직이는 힘'은 바로 열정이구나란 생각. 패션(Fashion)은 곧 패션(Passion)이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30주년 기념 전시회 이상봉의 작품들
▲ 30주년 기념 전시회 이상봉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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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상봉의 옷을 가리켜 '전통과 현대미술을 패션에 접목한 작품'이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진부한 해석입니다. 패션과 미술, 한국 고유의 전통적 미를 결합한 디자이너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디자이너 설윤형, 오리지널 리(이신우), 진태옥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파리로 진출한 많은 디자이너들은 한국의 전통적 문양과 패턴에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답을 해야겠지요.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의 차이가, 파리를 넘어 세계가 그의 쿠튀리에 작업에 주목하는 이유가 뭔지 말입니다.

30주년 기념전시회 중 샤머니즘을 테마로 한 작품
▲ 30주년 기념전시회 중 샤머니즘을 테마로 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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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봉의 작품에는 전통의 샘에서 길어낸 청신함과 더불어, 함께 나누어 마시는 우물처럼 많은 이들의 상상력을 함께 녹여낸 장인의 손길이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도 철사를 엮어 파리의 오트쿠튀르 의상을 만드는 조각가 박승모, 브랜드를 몸에 문신처럼 새기는 사회를 표현했던 김준 선생님과 함께 작업을 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협업, 콜래보레이션입니다. 요즘 콜래보레이션이란 단어가 상종가입니다. 상상력 고갈의 시대에 까다로운 소비자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상이한 업종 간 디자이너나 예술가들이 함께 작업을 하죠. 문제는 지속성입니다. 잠깐 반짝하고 사라지는 일, 돈은 될지 몰라도 디자이너의 고유한 성격을 드러내는 일에는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죠.

그런 점에서 디자이너 이상봉의 지속적인 콜래보레이션은 내적인 통일성을 갖춘 언어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끊어지지 않는 열정이 만들어낸 디자이너 개인의 자신이 된 셈이죠.

30주년 기념전시 중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패션에 녹여낸 작품들
▲ 30주년 기념전시 중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패션에 녹여낸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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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적 반열의 패션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고집을 수십년에 걸쳐서 일관되게 부려온 장인들입니다. 파리를 강타한 일본 출신의 디자이너들이 그랬습니다. 오늘날 일본패션이 세계 속에 저패니즈 쉬크(Japanese Chic)를 심을 수 있었던 것도 여러 디자이너들이 통일성 있게 일본의 복식미학을 세계에 알렸기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국가의 전략적인 지원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비하면 한국의 패션이 세계속으로 파고들기 위해, 갈아엎어야 할 묵정밭은 너무나 넓고 깊습니다. 지원은 전무하고, 디자이너 혼자서 고군분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샤머니즘 시리즈나, 바우 하우스 시리즈, 큐브 시리즈는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의 작가로서의 성향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입니다. 현대미술의 다양한 상상력을 프린팅, 옷에 각인시키는 수준을 넘어, 한국의 전통적 패턴을 그대로 차용하기 보다,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새롭게 디자인 한 것이죠.

이상봉의 30주년 기념전시회 한글패션과 함께
▲ 이상봉의 30주년 기념전시회 한글패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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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째 파리를 강타한 한글패션은 이제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보자기와 청초한 소나무는 그가 즐겨쓰는 프린팅의 첫번째 소재이자 한국을 알리는 도상이 되었죠. 한글은 옷 뿐만이 아니라, 도예, 잡화, 문구 등 다양한 상품에 차용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로 활동한 지 이제 30년, 젊은 청년시절 연극에 빠져들었다가, 우연한 계기로 만난 바느질이 가장 행복한 일상의 모자이크가 된 남자.

그는 지금도 고집스럽게 한글과 한국 고유의 전통적 미감을 패션에 녹여내며, 세계를 오갑니다. 종종 전화 통화로 안부나 여쭙는 게 전부일 정도로, 바쁜 생의 일정들을 소화하는 선생님의 건강이 걱정되는 이유입니다. 이번 전시회 후 식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왔습니다. 선생님께서 청주까지 와줘서 고맙다며 꼭 껴안아주셨는데요. 제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패션 디자이너들의 전체 도록 하나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회, 예술가들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저장하는 예술 아카이브 하나 제대로 없는 나라, 바로 이곳에서 발품과 열정으로 지금까지 버텨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거장이라 말하는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 또한 이런 이들 중의 한명입니다. 그저 환한 박수 한번 밖에 드릴 게 없어 제가 죄송하네요.

헤어지는 길에 제가 말씀드렸죠? "선생님 이제 평전 쓰실 때가 되었다"고요. 그 책 제가 쓰겠습니다. 인터뷰를 100시간 넘게 해야 할텐데, 또 새벽을 지새우겠군요. 뭐 상관없습니다. 패션(Fashion)은 결국 패션(Passion)이 모여 잉태하는 열매일테니까요.


#이상봉#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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