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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선생님, 우리 그림책 읽어요

- 글 : 강승숙

- 사진 : 노익상

- 펴낸곳 : 보리 (2010.4.12.)

- 책값 : 15000원

 

 

 (1) 제도권 학교 교사들

 

요즈음 초등학교는 한 반에 스물∼스물다섯 즈음이라는 소리를 듣고 그리 놀라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 나라도 이런 숫자가 될 만큼 발돋움했으니까요. 그러나 담임교사 한 사람이 맡는 아이들 숫자는 줄었을지라도 교사 한 사람이 맡을 행정 일감은 그리 줄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맡아야 할 아이들 숫자가 줄었으면 그만큼 아이 하나하나한테 더 마음을 기울여 참되고 착하고 고운 배움을 나눌 수 있어야 할 텐데, 예나 이제나 대학바라기 배움터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오히려 더 끔찍한 대학바라기로 바뀌는 한편, 집과 마을이 학교와 함께 맡아야 할 몫을 놓거나 잃거나 잊고 있다고 느낍니다.

 

제가 국민학교에 들어간 1982년부터 고등학교를 마친 1993년까지, 학교에서 교과서 아닌 책을 읽어 준 분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세계사를 가르친 분 한 사람이 있었을 뿐, 열두 해에 걸쳐 시집이나 소설책이나 그림책이나 동화책 한 번 읽어 준 분이란 아무도 없습니다. 한 반에 예순 안팎이던 학교였고, 교과서 진도 나가기 바쁜 가운데, 날마다 쏟아내는 숙제를 살피어 몽둥이찜질로 열고 닫는 학교였던 만큼, 교과서 아닌 책을 들고 다니는 교사를 찾아보는 일부터 잘못일는지 모릅니다. 제도권 학교 열두 해를 다니면서 '교과서 아닌 책'은 '불온도서나 불온소지품'으로 여기던 학교였고, 국민학교 때이든 중고등학교 때이든 교과서와 참고서와 공책과 준비물 따위로 가방이 몹시 무거웠기에 '교과서 아닌 책'을 따로 챙겨 들고 다니는 동무란 거의 아무도 없었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적에 한둘 고작 있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 님과 서머셋 모옴 님 소설을 영어책으로 읽던 중학교 3학년 때에는 학교에서 미친놈 소리를 들었고, 신경림 님이나 신동엽 님이나 김현승 님이나 릴케 님 시집은 고등학교 때에 '불온도서 압수품'이 되곤 했습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교사들은 교사들대로 우리들을 닦달하고 숙제벼락 퍼부어 몽둥이찜질을 하며 '학교 밖 탈선을 막는다'는 큰일을 하시느라 몹시 바쁘고 힘에 겨워 가벼운 소설책 하나조차 손에 쥘 기운이 없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중고등학교 여섯 해에 걸쳐 우리들을 밤 열한 시까지 학교에 꽁꽁 가두어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시키자니, 교사들이 교무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낮잠이나 텔레비전 보기나 고스톱이지, 조용히 책읽기를 하며 당신들 마음닦이를 하실 수 없습니다.

 

아이들을 따로 불러 돈봉투를 내라 하지 않은 국민학교 적 교사들입니다만,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가, 또는 아침저녁 모임을 하면서, 때로는 골마루에서 큰소리로 외치듯 대놓고 돈봉투를 내라 하던 국민학교 적 교사들입니다. 스승날을 앞두고 반장과 부반장은 돈봉투에 넣을 돈을 얼마씩 모아야 한다며 닦달하듯 돈을 거두는 한편, 선물을 따로 챙겨서 교탁에 올려놓아야 했습니다. 선물을 챙기기 어려운 몹시 가난한 동무가 있을 때에는 마음 좋은 동무가 한 가지씩 나누어 주기도 했지만, 따돌림을 받는 동무라든지 자존심이 있는 동무는 선물을 내지 않고 '스승날을 기리며 스승한테 선물을 내지 않은 값'으로 종아리나 엉덩이를 두들겨맞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떠올리는 국민학교 여섯 해 나날 가운데 수업시간 이야기는 거의 없습니다. 어쩌다 몇 대목이 떠오르지만, 국민학교 적 이야기를 떠올리면 언제나 운동장이나 골마루나 교실 뒤쪽에서 뛰놀던 일이 떠오릅니다. 교실 안쪽 이야기 가운데에는 얻어맞거나 폐품 모으기하고 성금 내기하고 환경미화 하기에다가 날마다 한두 시간에 걸쳐 끔찍하게 해야 했던 청소가 떠오릅니다. 가뜩이나 날마다 '짧아야 한 시간'을 골마루며 창문이며 뒷간이며 책걸상이며 학교 구석구석을 쓸고 닦고 빛을 내느라 '밖에서 동무하고 놀 겨를'이 모자라 입이 뿌루퉁하게 나오며 쑹얼쑹얼거렸는데, 교육감이라는 사람이 찾아온다고 하면 한 주나 보름 동안 '한 시간 + 한 시간' 청소를 했고, 교육감이 들이닥치는 때에는 아예 수업을 안 하고 청소만 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어느 때에는 교육감이 찾아온다며 청소하던 일이 고마웠습니다. 왜냐하면 이날은 숙제가 너무 많아 다 못했기 때문에 그냥 수업을 했다면 숙제 안 한 만큼 흠씬 두들겨맞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가장 기뻤던 대목은 국민학생 때하고 견주어 학교에서 청소하는 시간이 1/3이나 1/2로 줄었던 한 가지입니다.

 

담임교사가 우리들 집을 찾아다니는 때에는 동네가 들썩들썩합니다. 다들 잘난 사람들이 아니라 못난 사람들인 터라 '가정방문 교사한테 돈봉투를 주고 밥과 술 대접' 하는 일이 힘에 부치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다들 이 집 저 집 다니며 돈을 꾸느니 먹을거리를 얻느니 반찬을 나누느니 하느라 부산했습니다. 그래도 어린 마음에 담임교사가 집에 들렀다 가면 담임교사는 여러 집을 거치기 때문에 우리 집에 좀 늦게 오면 다른 집에서 배불리 먹을 테니 우리 집에서는 잔칫상 같은 밥상을 얼마 손을 못 대고 남겨서 이 남은 좋은 먹을거리를 우리가 신나게 먹는 날이로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국민학교 4학년 때인지 5학년 때인지, 어머니가 옆집에서 돈을 꾸어 비싼 딸기를 한 소쿠리 내놓았으나 담임교사는 다른 집에서 벌써 잔뜩 먹었다며 거의 손을 안 대고 돌아갔습니다. 형하고 저는 이날 딸기를 실컷 먹었습니다.

 

 

.. 학교 어디에도 여자아이들이 모여 있을 만한 구석진 자리는 없다. 아름드리나무도, 아담한 뒤뜰도 없다. 그러니 자연 여자아이들은 화장실을 아지트로 삼는다 … 아이들과 같이 이 그림책을 보면서 산도 들도 빼앗기고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다시 생각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피시방에 간다고, 텔레비전에 매달려 산다고 아이들을 나무라기 전에 둘레에 아이들이 바라는 공간이 있는지 먼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  (31, 37∼38쪽)

 

국민학교 적 모든 교사가 나쁜 마음 몹쓸 마음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학교 2학년이었을 때에 담임을 하셨던 분은 여느 교사들과 달리 (몽둥이 아닌) 회초리조차 거의 든 일이 없었고, 무슨 일 때문에 일찍 다른 학교로 떠났는지 학교를 그만두었는지 하면서 예순이 넘는 우리들한테 선물을 하나씩 '저마다 좋아하는 것에 맞추어' 주었습니다. 저는 이때 그분한테 받은 '삼미슈퍼스타즈 야구수첩'하고 편지를 오늘날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에 교과서 아닌 <세계사 수첩>(민맥)이라는 책을 교과서처럼 삼으며 수업을 했던 분하고는 편지나 소식을 가끔가끔 주고받습니다.

 

 (2) 그림책 읽어 주는 교사들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강승숙 님이 낸 <선생님, 우리 그림책 읽어요>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강승숙 님은 지난 2003년에 <행복한 교실>이라는 책을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오늘날 교사 숫자는 수십만에 이르지만, 이 숱한 교사들 가운데 교사일기를 꾸준히 쓴다든지 학교 이야기를 틈틈이 적바림하는 분은 아주 드뭅니다. 교사일기와 학교 이야기를 틈틈이 쓴다 할지라도 가슴이 뭉클할 만한 삶자락을 보여주는 분은 다시금 손가락으로 꼽아야 합니다.

 

좋은 교사가 없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좋은 교사로 일할 만한 터전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교사라면 마땅히 교사일기를 써야지, 갖가지 자질구레한 행정서류를 쓸 노릇이 아닙니다. 교사라면 마땅히 학교 이야기를 생각하며 나누어야지, 부동산이니 자가용이니 여행이니 뭐니 하며 다른 이야기에 마음이 푹 빠질 노릇이 아닙니다. 학교 바깥에서 여느 사람으로 지낼 때에는 무얼 하든 마음껏 하면 됩니다. 다만 학교 안쪽에서 일할 때에는 학교를 생각하고 학생을 헤아리며 배움과 가르침이라는 이음고리를 살필 노릇입니다.

 

"책 한 권으로 아이들 마음이나 행동이 크게 바뀔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문제를 깊이 생각할 기회는 생길 것 같다(171쪽)."고 이야기하는 강승숙 님입니다. 틀림없이 책 한 권으로 아이들 삶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과서를 제아무리 잘 가르친다 할지라도 아이들 삶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교사들이 하루 내내 아이들 앞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보고 듣고 살피며 달라집니다. 아이들은 동네에서 동네 어른들이 하루 내내 아이들 앞에서 내보이는 모습을 보고 듣고 살피며 달라집니다. 아이들은 집에서 집식구들이 하루 내내 아이들 앞에서 드러내는 모습을 보고 듣고 살피며 달라집니다.

 

..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가까이에 마음을 달래 줄 자연조차 없는 곳에서 자라고 있다. 그래서 어른들이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려 주는 게 더 절실히 필요하다 … 2008년에 4학년 아이들하고는 이 그림책을 재미있게 보았다. 아이들은 그림책을 보는 내내 자기네가 사는 집과 식구들을 생각하는 듯했고, 불만도 솔직하게 표현했다. 보통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아이들은 멋진 아파트를 꿈꿀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식구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따뜻한 집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개들이 마중 나오고, 할머니가 마당에서 채소를 다듬거나 할아버지가 옥상에서 텃밭을 가꾸는 '만희네 집'을 몹시 부러워했다 … 그림책을 읽어 주는데, 넉넉하지 못한 주영이네와 그림책 속에 나오는 부유한 집안 풍경이 대조가 되어 읽어 주기가 민망했다. 집에 대한 주영이의 아쉬움은 <돼지책>을 읽을 때도 강하게 드러났다. 이 책에 나오는 피곳 씨 부인은 아들 둘과 남편의 도구 같은 존재였다. 밥해 주는 여자, 집안 정리해 주는 여자, 그 피곤함을 전반부에 잘 그리고 있다. 힘든 여자의 처지를 잘 이해했을 텐데도 주영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좋겠다. 집이 좋잖아요." ..  (63, 275, 296쪽)

 

슬기롭고 아름다이 거듭날 수 있는 아이들이지만, 어리석고 짓궂게 굴러떨어질 수 있는 아이들입니다. 착하고 참되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아이들이지만, 거짓되고 구지레하고 나뒹굴 수 있는 아이들입니다. 아이들 삶이란 둘레 어른들 삶에 따라 다릅니다. 둘레 어른들 스스로 당신들 삶을 먼저 슬기롭고 아름다우며 착하고 참되이 가다듬어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책 한 권 읽어 줄 겨를을 낸다면 더없이 고맙습니다만, 책 한 권 안 읽어 주거나 못 읽어 주어도 괜찮으니까, 부디 옳고 바르고 곱게 당신들 삶자락을 추슬러 주면 좋겠습니다. 어른들 옳은 삶이 아이들 옳은 삶으로 이어지니까요. 어른들 바른 넋이 아이들 바른 넋으로 옮아가니까요. 어른들 고운 말이 아니들 고운 말로 대물림하니까요.

 

.. <새앙 쥐와 태엽 쥐>, 나는 이렇게 마음이 따스해지는 그림책이 좋다 …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권정생 선생님이 쓴 글은 꾸밈없는 시골 아저씨 이야기처럼 담담하다. 기교를 부리지도, 형식을 실험해 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작품에 공감한다. 이야기 속에 들어 있는 진실의 힘, 또는 삶에서 우러나온 이야기의 힘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야기를 만들려고 애쓰는 데서 동화가 나오는 게 아니라 선생님을 둘러싼 삶의 아주 작은 구석부터 거대한 사회 흐름까지 놓치지 않고 살피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  (80, 153쪽)

 

교사 강승숙 님은 살아숨쉬는 배움터를 생각하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아주 자그마한 일인 '그림책 읽기'를 함께합니다. 먼저, 아이들한테 좋을 그림책을 찾는다기보다 당신 스스로 좋아하거나 당신한테 반갑고 좋을 그림책을 찾습니다. 꼭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읽어 주는 일을 한다기보다, 학급문고로 그림책을 갖추어 놓으면서 아이들 스스로 먼저 찾아 읽도록 하는 한편,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도록 그림책을 읽는 일을 거듭니다.

 

마땅한 소리인데, 그림책 읽기를 억지로 내세우거나 앞세운다면 이는 제도권 교과서 달달 털어내는 일하고 매한가지입니다. 제아무리 맛나고 좋은 밥이라 할지라도 아이들이 스스로 밥술을 들어 떠먹어야 하거든요. 수저질을 잘 못해서 밥알을 떨어뜨리더라도 아이들이 차근차근 손아귀힘과 손가락힘을 길러 스스로 밥을 떠먹어야 합니다. 학교에서 무엇인가를 배우든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좋다는 책 하나를 읽든, 아이는 아이대로 스스로 가장 기쁘고 신날 책 하나를 알아보고 찾아내어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 집에 가서 다시금 찬찬히 그림책을 보았다. 그리고 책 뒤표지에 붙어 있는 색종이를 접어서 고양이를 만들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읽어 주고 싶다는 마음이 차올랐다. 내가 감동하여 읽은 이 책을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 열 번도 넘게 보았지만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릿해 오는 <까마귀 소년>. 좋아하는 그림책을 보여줄 때면 아무래도 읽어 줄 준비를 더 잘하게 되나 보다. 늦은 밤 이불에 엎드려 그림책을 다시 보았다. 동무들과 선생님을 무서워하던 주인공 땅꼬마 아이를 보니 어릴 적 동무들과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생각났다. 지저분하고 공부 못한다고 놀림받던 명자는 늘 혼자였다. 명자는 늘 얼굴을 찡그리고 동무들이 노는 모습을 한쪽에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했다. 어른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해마다 명자처럼 동무 없이 지내는 쓸쓸한 아이들이 한둘씩 꼭 있었다 ..  (106∼107, 123쪽)

 

<선생님, 우리 그림책 읽어요>라는 책을 읽으며 강승숙 님네 아이들이 참 부럽습니다. 강승숙 님이 읽어 주는 그림책이 아이들한테 괜찮은 책이든 안 괜찮은 책이든 떠나, 아이들한테는 '숙제나 짐처럼 떠안기는 추천도서나 명작동화'가 아니라, 살과 숨과 목소리와 땀을 함께 느끼며 빠져드는 고운 이야기를 나누는 배움이거든요. 아이들은 저희하고 놀아 주는 교사가 좋지, 아이들한테 매섭거나 무서우며 '위에서 내려다보는' 교사가 좋지 않습니다. 메마르고 딱딱한 가르침이 아니라 부드럽고 따사로운 어깨동무가 좋은 아이들입니다. 무슨 지식조각이나 어떤 지식부스러기를 나누어 주지 못할지라도 함께 고무줄을 하고 같이 금긋기놀이를 하는 어른이 좋은 놀이동무요 일동무요 배움동무입니다.

 

예부터 스승이란 가르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르치며 배우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한테서 배우는 사람이지만 배우기만 할 뿐 아니라 배우면서 가르칩니다. 어른과 아이는 서로서로 가르치며 배우는 사이요, 어버이와 아이 또한 서로서로 가르치며 배우는 살붙이입니다. <선생님, 우리 그림책 읽어요>라는 책은 교사 된 사람들이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이렁저렁 읽어 주어야 좋다는 생각을 펼치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그림책을 꼭 읽히라고 외치지 않습니다. 그림책이든 동화책이든 아이들 앞에서 읽어 줄 때에 교육 효과가 크다고 떠벌이지 않습니다.

 

한 학급 숫자가 예순이나 여든일 때에도 얼마든지 그림책 읽기를 할 수 있었으나, 한 학급 숫자가 고작 스물이나 서른인 오늘날에는 누구나 그림책 읽기를 어렵잖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렵잖이 그림책 읽기를 할 수 있으니 이러한 일을 해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라, 아이들 삶에 더 깊숙하게 스며들면서 손을 맞잡고 어깨를 겯는 사랑스럽고 믿음직한 어른으로 우리 매무새를 다독여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강승숙 님은 이처럼 '사랑스럽고 믿음직한 어른 되기'를 그림책 읽기로 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른 분들은 저마다 다른 길과 흐름에 맞추어 아이들 앞에서 사랑스럽고 믿음직한 어른이 될 삶을 찾아 주면 넉넉합니다.

 

.. 문장을 보니 2학년 아이들한테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지'를 얼른 '땅'으로 바꾸어 읽었다. 그래도 이 문장을 들은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다. '생명의 불꽃'이라니, 무슨 말인지 얼른 다가오지 않는 모양이다. 설명하려다 화면을 넘겼다 … 그림책 만드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과감한 기법과 새로운 감각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그림책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한테는 <엄마의 의자>같이 삶이 묻어난 그림책, 소년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처럼 서민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도 필요하다 ..  (130, 287쪽)

 

<선생님, 우리 그림책 읽어요>는 제대로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줄거리나 모습을 섣불리 따라하면 안 되고, 이 책에 나오는 그림책들이 '모두 괜찮은 책'이라고는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그림책은 고작 백 가지가 안 됩니다.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한 훌륭하고 아름다운 그림책이 아주 많을 뿐 아니라, 이 책은 '좋은 책 추천하는 책'이 아닙니다.

 

그림책을 아이들한테 읽어 주기 앞서 어른인 우리 스스로 먼저 그림책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그림책 하나에 어떤 땀과 뜻이 서려 있는가를 헤아리자고 하는 목소리를 무엇보다 제대로 살펴야 할 <선생님, 우리 그림책 읽어요>입니다.

 

아무래도 책 짜임이 이 대목을 더 헤아리지 못하지 않았느냐 싶은데, 딱딱한 책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강승숙 님 모습과 당신 반 아이들 모습 사진을 많이 실었습니다만, 외려 이 사진들은 책읽기에서 자꾸 걸립니다. 책에 담긴 줄거리하고는 어울리지 않고 '그림만 좋은' 사진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 일곱 갈래로 나눈 책이니 일곱 갈래를 새로 여는 데에만 사진을 넣고, 사이사이에는 강승숙 님과 아이들이 아주 아끼고 사랑한 '그림책 어느 한 대목'을 제대로 보여주었어야 이 책을 읽으며 눈과 숨이 부드러웠겠다고 느낍니다. 사이사이 그림책 한두 대목이 들어가 있기는 한데, 정작 '이 그림책을 이야기하며 바로 이 그림이 좋았다'고 하는 흐름에서 '이 그림'이 없기 일쑤였습니다. '그림책 교육 지도서' 느낌이 안 나도록 하려고 이처럼 책을 엮었다 할 수 있는데, 좋은 글을 읽으며 좋은 '그림책 한 대목'을 함께 느낄 수 있으면 강승숙 님이 왜 아이들 앞에서 허리를 숙이며 같은 눈높이에서 그림책을 즐기고 있는가를 좀더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봅니다.

 

109쪽에 '도둑고양이'라고 적바림한 낱말은 '골목고양이'로 바로잡아야겠습니다. 도둑개나 닭둘기가 아닌 골목개요 골목비둘기입니다. 어설픈 사람 눈길로 뭇짐승을 깎아내리는 말마디가 어설피 튀어나오지 않도록 끝마무리를 단단히 여미어 주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선생님, 우리 그림책 읽어요 - 강승숙 선생님의 그림책 수업 일기

강승숙 지음, 노익상 그림, 보리(2010)


태그:#책읽기, #그림책, #교육책, #삶읽기, #제도권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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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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