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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나쁜 놈들이 언제라도 될 수 있는 우리. 내가 그것을 알지 못하면 세상은 변하지 않을 수 있다.
 그 나쁜 놈들이 언제라도 될 수 있는 우리. 내가 그것을 알지 못하면 세상은 변하지 않을 수 있다.
ⓒ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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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은 노동자입니까.

노동자가 아니라면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일하는 사람은 노동자입니다. 근로기준법에 근로자의 정의는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로 되어 있습니다.

월급을 받는 사장도 은행에 다니고 있어도, 프로그래밍을 하는 이도, 대기업에 다니는 사무원도, 공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이거나 비행기를 운전하는 기장도 신문사의 기자도 방송사의 피디도 모두 '노동자'입니다.

다 같은 노동자의 처지이니(재벌 총수님들을 제외하고) '우리'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이 한마디와 손끝으로 회사를 움직이고, 일과 사랑을 담뿍 담은 일상을 보내는 것이 진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겠지요. 남들을 위한답시고 자신의 공명을 위해 불법과 탈세를 일삼는 자들을 제외하고 말이지요. 남을 감찰해야 할 직업임에도 유흥과 향락을 특정인에게 정기적으로 제공받는 자들도 포함시키지 말까요.

여기 이 책에 조선소용접공, 택배기사, 농부, 자동차 브레이크 '라인', 배송기사, 핸드폰 조립라인, 미싱사, 일용잡부, 목수, 중공업생산직, 의류회사 직원, 구두수선공, 은행원 등과 그의 아내들이 쓴 글들이 모였답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담아오던 작은책에서 모은 글들 중(1995~1999) 좋은 글들을 모아 한 권에 담았다고 합니다.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노동자가 글을 쓰냐고?

무슨 노동자가 글을 쓰냐고 할 겁니다. 기계를 다루고 연장을 만지고 물건을 들어나르는 것이 일인 사람들이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들고 빠듯해서 무슨 글을 쓰느냐고 할 겁니다. 그럴 겁니다. 이거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 할 때 쓰는 것'이 글이랍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런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이야기, 동생, 이웃,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내가 당했던 억울함을 호소할 곳도 없고 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말로만 듣던 일을 직접 당하게 되면 당황해서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재해를 당하거나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받기도 했답니다. 손가락이 잘리거나 다리가 부러지거나 허리가 삐끗하거나 할 수 있습니다.

느닷없이 백혈병에 걸려서 꽃다운 나이에 죽음을 맞아야 하기도 합니다. 우린 이런 사실들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서로 같은 경험을 하거나, 혹은 경험을 하지 못했더라도 내가 언젠가 당할 수도 있음에 대한 본보기로 삼고 싶습니다. 여전히 사회는 개인의 어려움은 돌보아주지 않을 자세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복불복'인가요. 바꿀 수 있음에도 움직이지 않는 제도. 그래서 이렇게 책으로 남기고 널리 읽히는 것이 중요할 겁니다.

왜 쓰는가? 한마디로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다.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그 소중한 삶의 세계, 마음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 삶을 지키고, '말'을 지키고, 겨레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밥을 먹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일하지 않는 사람은 글도 쓰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방안에 앉아 밤낮 글만 쓰고 있는 삶이 쓴 글이 무엇을 얘기하고 무엇을 보여주겠는가? - 이오덕 아동문학가, 1995년 5월 중

조금 과격하게(?) 쓰신 것 같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습니다. 아픔과 고통을 동반하지 않은 무경험의 글은 껍질이 가볍습니다. 살짝 들어내도 알맹이가 없는 속이 없는 글로 사람들의 진심을 열게 만들기는 불가능합니다. 다소 서투르고 형식이 어긋나고 철자가 틀리더라도 진심을 순수하게 담은 글이라면 여럿을 울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옆에 있는 이들, 가족들이 쓴 글은 가슴을 짠하게 만듭니다. 가난하고 배고픈 것이 죄는 아닐 것인데. 가장의 어깨는 더 무겁습니다. 손을 뻗고 몸부림을 쳐봐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을 원망합니다. 여럿이 함께 사는 세상에서 돈을 벌고 남보다 월등하게 우위에 서게 되는 것을 개인의 역량으로 치부해버리면 나머지들은 아무것도 되질 않습니다. 경쟁을 통해서 전체의 능력이 조금씩 나아질 수는 있지만 경쟁의 방식과 그 결과가 가져올 여럿의 삶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픕니다. 이 글들은 우리가 백년 넘게 아니, 수천 년을 이어온 역사 속에서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방식이 한 치도 나아지지 못했음을 증명합니다. 여전히 고통 받고 상처받고 괄시받는, 과거 천민으로 여기는 지금의 노동자의 지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뀔 수 있습니다. 모두 힘을 다해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하면 됩니다. 내가 그 위치에 서서 바라보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마치 내가 당한 것처럼 아파할줄 알면 됩니다. 아니, 그렇게 아프지는 않더라도 아플 거라고 이해해 줄 수 있으면 됩니다. 어떤 것이 다수의 행복에 한걸음 다가서는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습니다. 같은 노동자이면서 아닌 척 하지 않고 나의 동지라 생각할 수 있으면 바뀝니다. 세상이 '사람 사는 세상' 같아 질 겁니다.

여기 절절한 심정으로 끓어오르는 가슴 누르며 쓴 글이 있다

주변을 잘 돌아보세요. 시위가 있습니다. 회사를 살리고 죽이는 한 사람의 손에서 수천 명의 생계를 좌우합니다. 회사가 어렵다고 수백 명이 이루 말로 못하는 고통 속에 살도록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 (같은 노동자로서) 살기 위해, 굶지 않기 위해 싸우는 이들을 이해하려 노력해 보셨습니까. 당장 내가 내일 해고 통지를 받는다면 (그럴 리 없다고 자위하지 말고) 내 심정이 내 가족이 어떻게 될지 상상이라도 해 보셨나요.

여기 절절한 심정으로 끓어오르는 가슴을 누르며 쓴 글들이 있습니다. '일 다녀온 홀어머니의 새카맣게 탄 얼굴을 보며'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는 10대와 '그저 더러운 세상을 원망하고 자신의 팔자를 한탄하며 쓴 소주잔으로 아픔을 달래는 게 고작'인 듯 직장인들과
소장님의 더러운 심부름들에 치를 떠는 연구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파업에 동참하지 못하는 노조원의 솔직한 심정 등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
배고파 밥 달라고 하는 우리들한테
회사를 말아먹을 나쁜 놈들이래.
우리가 일해 놓으면
알맹이는 깡그리 챙겨가고
우리에게는 빈껍데기만 남겨주면서
주는 대로 받고 고분고분 일하지 않는다고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

언제는 한 가족 한 가족 하면서
일만 곱빼기로 부려먹고
최소한의 생계비라도 보장해달라면
우리들은 모두 나쁜 놈이래.
회사 망쳐놓을 빨갱이 세력들이래.
텔레비전에서도 신문에서도
우리들은 모두 나쁜 놈들이래.
뼈 빠지게 일해서 우리들은 먹지 말고
저들에게 갈퀴로 걷어가는 이익을 주는
충실한 종이 아니라고
우리들은 모두 나쁜 놈들이래.
우리들은 모두 나쁜 놈들이래.

개자석들…

- 대우기전노조 조합원, 1996년 3월

덧붙이는 글 |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 작은책 엮음/ 작은책/ 9,500\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

작은책 편집부 엮음, 작은책(2010)


#작은책#윤구병#근로자#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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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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