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키워준 고향에 대한 조그마한 보답이랄까요. 그동안 발품을 팔고 돈을 모아서 마련했던 자료와 경험이 우리 지역을 위해 활용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놓았습니다."
고향마을 도서관에 소장도서 3700여 권을 내놓은 이가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전남도청 문화예술과에 근무하는 김희태(53)씨. 그는 지난 4일 개관한 장흥 정남진도서관에 소장도서 3790권을 기증했다. 이는 도서관에 책을 기증한 기관과 단체, 개인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이다.
전라남도 장흥군이 세운 정남진도서관은 장흥읍 건산리에 들어섰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1층엔 어린이 열람실, 2층엔 일반 열람실을 두고 있다. 보존서고, 종합자료실, 디지털 자료실, 세미나실 등도 갖추고 있다.
"기증할 책을 고르는 게 정말 어렵더라고요. 앞으로도 계속 봐야 할 것도 있고 저자가 직접 서명해준 것, 이런저런 메모가 돼 있는 것, 발간 때 자문을 했던 책 등을 골라내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더 나이 들어서 한꺼번에 기증했으면 덜 번거로웠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는 기증할 책을 고르는 일이 "전쟁"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전쟁 치르듯 두세 달 동안 골라서 60여 상자를 포장, 도서관에 보냈다. 몇 권인 줄도 몰랐는데, 나중에 도서관에서 3790권이었다고 알려 왔다고.
그가 내놓은 책은 지역의 연혁을 알 수 있는 시·군지(市郡誌), 마을 유래지 등 지역에 관한 자료가 특히 많다. 이것만으로도 향토학 자료센터를 꾸미고도 남을 정도다. 도서관에서는 이 기증도서를 별도의 책장에 전시하고, 도서의 안쪽에도 기증자의 이름을 고무인으로 찍어 비치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책을 기증할 생각이었어요. 그동안 수십 권씩 여러 대학과 문화재연구원 등에 내놨는데 그것만도 2000여권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참고해야 할 게 많고, 공부도 더 해야겠고, 한편으론 어떻게 모은 책인데 하는 생각과 함께 아까운 마음도 들고…."
그러던 지난해 고향에 도서관이 들어선다는 얘기를 듣고선 결심을 굳혔다. 언젠가 내놓을 책이라면 고향에 내놓는 것도 보람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장흥은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등 이름난 문인을 배출한 고장답게 문학과 문화가 어우러진 도서관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그렇게 빼냈는데도 집안 정리가 안 되고 있어요. 기회가 되는대로 더 많은 자료들을 솎아내 필요한 곳에 내놓을 생각입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고요. 이것이 고향과 우리지역을 위해 제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전남도청에서 문화재 연구와 문화재 지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김희태씨는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사료 조사위원, 한국향토문화진흥원 이사, 문화재청 동산문화재 감정위원, 전남대학교 대학원 문화재학 협동과정 강사, 문화유산 해설사 전문 강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