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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주인되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민주주의는 그래서 어렵다.
스스로 주인되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민주주의는 그래서 어렵다. ⓒ 난장

민주주의(democracy)는 민중(demos)과 통치(kratos)의 합성어이다. 주민이 주인이 된 자치. 지금 민주주의는 대의제로 운영되어 정착되었다. 선거를 통해서 자신들의 의지를 대신할 사람을 뽑는다. 그럼 그가 여러 사람을 대신해 입안하고 행정한다. 잘 되고 있는가.

 

지금 민주주의는 훌륭하게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그냥 '좋은 의미'에 취해있는 것은 아닐까. 그저 투표한번 하고 그것으로 민주국가에 산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못하다면 민주주의가 아닌 통치시스템에 있는 것인가. 올바른 민주주의로 바로세우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가. 민중이 주도적으로 개선하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사실 일반인은 별로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정치가들의 몫, 행정가들의 몫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십만, 수천만 명을 대변하는 일인을 주기적으로 재선출하거나 재신임하는 행위가 이 땅의 민주주의의 정착과 발전에 얼마나 도움을 주고 있을까.

 

"훌륭한 통치는 통치하길 욕망하지 않는 평등한 자들의 통치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통치하기 위한 사회도 아니고, 사회에 대한 통치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이 통치 불가능한 것이다. 모든 통치는 결국 자신이 이 통치 불가능한 것 위에 서 있음을 발견해야 한다."-다니엘 벤사이드의 글 중

 

과연 통치하길 욕망하지 않는 자들이 통치하는 시대가 가능하기나 한 이야기인가. '불가능위에 놓인 민주주의'가 아닐까. 좀 더 낙관적으로 생각해봐도 별로 실현 가능한 대안이 나오기는 힘들다.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민중은 개혁을 주도해왔고 그럴 때마다 사회적 변화가 있었다. 설사 그것이 고대문명 이래로 어떤 일정 부분의 관계나, 계급, 의식을 바꾸지 못했다손 치더라도 민중의 삶과 저변에 깔린 밑바탕을 서서히 높은 곳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민주주의)은 인민의 통치가 실행되기 위해서 어떤 권력을 나눠야 하는지, 이 통치가 어떻게 조직 되어야 하는지, 어떤 제도나 보충조건에 의해 그것이 수립되고 확보되어야 하는지 상술하지 않는다.       

-중략-

 

첫째, 기업권력이 인민의 정치적 지배라는 약속과 실천을 침식시켰으며, 이 과정은 이제 전례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가령 학교, 군대, 감옥에 이르기까지 국가기능이 광범위하게 아웃소싱 되고, 투자은행가와 CEO가 장관이나 각종 정부위원회의 수장이 되며, 국가가 금융자본의 상당지분을 은밀하게 소유하고 있다.

둘째, 민주주의의 (피상적이긴 해도) 가장 중요한 아이콘인 '자유'선거는 정치자금을 마련하는 스펙터클에서부터 표적 유권자 '동원'에 이르기까지 마케팅과 경영의 서커스가 되고 있다.

셋째, 신자유주의는 입헌주의, 법 앞의 평등, 정치적·시민적 자유, 정치적 자율성과 보편주의적 포함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비용/수익 비율, 능률, 수익성, 효율성 같은 시장의 기준으로 대체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전면적으로 공격했다. - 웬디 브라운의 글 중

 

정치도 마케팅화되고 이미지로 먹고 사는 연예인과 다를 바 없는 정치인들의 언행에 심드렁한 대중들이 대부분이다. 사글세에 끼니는 거르는 '천민'의 의식까지 침투한 신자유주의가 기업이 국가를 경영에 간섭하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선거는 신성한(?) 민주시민의 축제가 아니라 야합과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진흙탕 싸움처럼 되어 버렸다.

 

데모스의 권력은 주민 전체의 권력도, 다수의 권력도 아니다. 오히려 아무나의 권력이다. 아무나는 지배받는 자의 명칭이자 지배하는 자의 명칭이다.―크리스틴 로스의 글 중

 

글을 읽고 민주적 삶을 포기하는 것은 이르다. 지나친 번역 투의 문장과 학술적 전문어들이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 책은 도발적 제목에 맞는 각 석학들의 의견들을 요약하여 충실하게 담고 있다.

 

파리드 자카리아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경제선진국들에서만 '유행'할 수 있는지 지적한 바 있다. 만일 개발도상국이 "성급하게 민주화된다"면 그 결과는 경제적 파국과 정치적 전제로 귀결되는 포퓰리즘이 될 것이고, 그러니 오늘날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제3세계 국가들(대만, 한국, 칠레)이 권위주의 지배 이후에야 완전한 민주주의를 채택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슬라예보 지젝의 글 중

 

역사적 사실에 대한 반박이 쉽지는 않지만 꼭 민주주의와 경제번영이 비례의 그래프를 그리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인 경제지표수준은 낮더라도 훨씬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의 민주주의를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의심하라. 진보는 의심하고 사유하는 자들이 손잡고 이루는 것이니까.

덧붙이는 글 |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아감벤, 바디우, 벤사이드, 브라운외/ 난장/ 11,800\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 새로운 논쟁을 위하여

다니엘 벤사이드 외 지음, 김상운 외 옮김, 난장(2010)


#민주주의는죽었는가#민주주의#주민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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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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