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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성 백양사 신록. 숲길도 물길도 온통 연둣빛이다.
장성 백양사 신록. 숲길도 물길도 온통 연둣빛이다. ⓒ 이돈삼

눈 닿는 곳마다 새잎 푸른 신록이 한창이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끝에도 신록이 묻어난다. 신록이 꽃보다도 아름다운 계절이다. 이 신록은 시간이 흐르면서 나무의 종류에 따라 색깔의 농도가 달라질 것이다. 지금은 같은 것처럼 보이나 나중은 다를 수 있다.

양심이 흐르는 신록을 찾아가 본다. 고불총림 백양사에서 가까운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신촌마을이다. 6년째 무인 양심가게가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마을주민들 모두가 서로 믿음으로 하나 돼 있는 마을이다.

신촌마을 사람들은 양심적이다. 이곳 숲도, 냇물도 양심적이다. 그 사이엔 신용이 흐르고 믿음이 감돌고 있다. 신촌마을은 그저 그런 농촌마을이다. 여느 농촌처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이다. 주민들이 주로 농사일을 해서 먹고 사는 아주 평범한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이 마을은 마을회관 옆에 있는 무인 양심가게덕택에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이 마을에 양심가게가 문을 연 게 지난 2005년 4월 5일. 벌써 5년 하고도 2개월이 돼 간다. 양심가게의 출발은 마을에 하나 밖에 없던 구멍가게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으면서부터 시작됐다.

 6년째 무인 양심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신촌마을 입구의 표지석. 주변은 물론 바위에 새겨진 글씨까지도 연둣빛이다.
6년째 무인 양심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신촌마을 입구의 표지석. 주변은 물론 바위에 새겨진 글씨까지도 연둣빛이다. ⓒ 이돈삼

크든 작든 구멍가게가 없어지자 가장 불편한 건 주민들이었다. 가까운 곳에 다른 가게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날 이후 마을주민들의 가게 심부름은 박충렬 이장이 도맡아 했다. 당시 이장은 직업상 날마다 도시를 오가고 있었다.

하여, 주민들은 이장한테 가게 심부름을 부탁했다. 라면 두 봉지만 사 달라, 소주 몇 병 사 달라, 담배도 좀…. 생필품 심부름을 이장이 다 했다. 그러나 한두 번도 아니고 이장의 입장에선 솔직히 번거로웠을 것. 그래서 생각한 게 무인가게였다.

이장의 제안으로 무인가게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처음 마을 주민들은 시큰둥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박충렬 이장은 시도라도 한번 해보자며 주민들을 설득했다.

가게 문을 열고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가 진열하는 것도 이장의 몫이었다. 박 이장은 일주일에 한두 번씩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가져다 놓고 일일이 가격을 적어 놓았다. 물건을 살 사람이 알아서 계산한 다음 돈을 놓고 가져가라는 뜻이다.

돈을 넣을 수 있는 나무금고와 외상장부도 한쪽에 비치해 놓았다. 외상도 아무나 마음대로 하고, 장부에 달아놓으라는 것이다. 나중에 갚으면 볼펜으로 찍-찍- 그으면 그만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가게가 잘 운영이 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신기하기도 하다.

 신촌마을 무인 양심가게. 동행한 예슬이가 과자를 고르고 있다.
신촌마을 무인 양심가게. 동행한 예슬이가 과자를 고르고 있다. ⓒ 이돈삼

 양심가게 금고와 외상장부. 신촌마을 주민들의 자부심이자 자존심이다.
양심가게 금고와 외상장부. 신촌마을 주민들의 자부심이자 자존심이다. ⓒ 이돈삼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심심찮게 이곳 무인가게를 찾는 이유다. 아직도 이렇게 서로 믿고 사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마을이 있다는 걸 어린 학생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아이들도 직접 과자나 음료수를 사고 돈을 나무금고에 넣으며 재미있어 한다.

이렇게 주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인가게는 결코 적자가 아니다. 오히려 주인이 없으니 장사가 더 잘 된단다. 마을주민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있어서다. 이익금도 쏠쏠하다. 주민들은 여기서 남은 이익금으로 불우이웃을 돕기도 한다. 효도여행이나 선진지 견학도 가고, 마을 운영비로도 쓴다.

뿐만 아니라 무인가게가 운영되면서 주민들 사이는 물론 마을 분위기까지도 좋아졌다. 주민들끼리 서로 우애도 돈독해졌다. 집안의 대문도 활짝 열어놓고 살다시피 할 정도다. 가게가 마을의 보배가 된 셈이다. 가게는 마을사람들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가게 주인이 따로 없지만 마을사람 모두가 주인이기도 하다. 누구랄 것도 없이 주민 모두가 가게를 내집처럼 아끼고 있다. 요즘은 농번기 철이어서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지만, 농한기 때면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양심가게(무인가게)에 모여 소일을 한다.

술도 한잔씩 주고 받으며 집안의 대소사를 협의한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나눈다. 서로 믿고 사는 사회의 본보기가 따로 없다.

 무인 양심가게. 과자 두 봉지를 고른 예슬이가 과자값을 나무금고에 넣고 있다.
무인 양심가게. 과자 두 봉지를 고른 예슬이가 과자값을 나무금고에 넣고 있다. ⓒ 이돈삼

 백양사도 온통 신록이다. 돌다리 뒤 연못에 비친 쌍계루 모습도 운치 있다.
백양사도 온통 신록이다. 돌다리 뒤 연못에 비친 쌍계루 모습도 운치 있다. ⓒ 이돈삼

양심가게에 들렀다가 백양사로 발길을 옮겨본다. 백양사는 이곳 신촌마을에서 가깝다. 자동차로 10여 분이면 거뜬히 닿는 거리다. 백양사는 가을철 단풍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단풍터널로도 유명하다. 이 단풍터널이 지금 온통 연녹색으로 물들었다. 비 내리는 날엔 연둣빛 물이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만 같다.

이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돼 있다. 그 중에서도 앞자리에 설 만큼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숲길엔 거목이 무성하다. 그 길을 지나 절 어귀로 접어든다. 왼편으로 연못 하나가 보인다. '일광정'이다. 그 위를 가로지르는 아치형 나무다리가 운치있다. 자연스럽게 휘어진 나무다리가 신록과 어우러져 한껏 멋을 뽐내고 있다.

신록은 쌍계루 주변도 짙다. 쌍계루는 고려의 충절 정몽주가 임금을 그리는 애틋한 시를 썼다는 곳이다. 나무들은 연녹색 그림자를 쌍계루 연못에 드리우고 있다. 흡사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는 듯한 형상이다. 그 형세를 따라 물 속을 들여다 본다.

이 연못은 가을에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물들던 곳이다. 물길을 가로질러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는 재미도 별나다. 사찰에 왔다기 보다 공원에 온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선사한다.

 백양사 이팝나무. 연둣빛 풍경 사이로 하얀 꽃을 피운 이팝나무가 이채롭다.
백양사 이팝나무. 연둣빛 풍경 사이로 하얀 꽃을 피운 이팝나무가 이채롭다. ⓒ 이돈삼

백양사는 숲길만 유명한 게 아니다. 비자나무 숲도 아름답다. 이곳 비자나무 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비자나무는 사철 푸른 빛깔을 곱게 유지한다. 그 향도 진하다. 백양사의 공기가 한층 맑은 것도 이 덕이다. 오래 묵은 갈참나무도 백양사 숲의 품격을 더 높여준다.

쌍계루 앞에 수령 700년 된 이팝나무도 하얀 꽃을 활짝 피워 장관이다. 비에 젖은 꽃의 모습이 더 '쌀밥' 같다. 쌍계루에서 천진암으로 오르는 길도 아름답다. 계곡의 물도 생기를 머금고 있다. 천진암 가는 길은 백암산 숲의 생태를 체험할 수 있는 숲길이다. 식물마다 이름과 특징을 써 놓은 설명판이 세워져 있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날씨만 좋다면 백암산에 한번 올라도 좋겠다. 백양사를 품고 있는 백암산은 산세가 비교적 험한 편이다. 그러나 기암괴석과 백양사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최고의 산행지로 사랑받고 있다. 체력과 여건에 따라 산행코스를 조정할 수도 있어서 가족끼리 찾아도 좋은 산이다.

 홍길동 우드랜드. 편백나무 숲길이 아름답다.
홍길동 우드랜드. 편백나무 숲길이 아름답다. ⓒ 이돈삼

 장성호 풍경. 날씨는 흐려도 펼쳐지는 풍경은 시원하다.
장성호 풍경. 날씨는 흐려도 펼쳐지는 풍경은 시원하다. ⓒ 이돈삼

홍길동 우드랜드도 신촌마을에서 가깝다. 우드랜드는 담양 대치 방면으로 자동차로 10분 정도 가면 월성저수지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홍길동 우드랜드는 면적이 10㏊ 정도 되는 숲이다. 편백나무가 많고 참나무, 소나무, 국수나무, 참나무, 때죽나무 등이 우거져 있는 삼림욕장이다.

편백나무는 다른 어느 나무보다 스트레스 해소 효과가 높은 수종이다. 피톤치드를 맘껏 호흡하기에 좋다. 뉘엿뉘엿 얘기 나누며 산책하기에도 좋다. 숲이 정말 예쁘단 생각도 절로 든다.

우드랜드에는 쉴 만한 편의시설도 돼 있다. 산정 능선부에 휴식과 조망을 겸한 전망대가 있다. 군데군데 벤치, 탁자 같은 휴식시설도 갖춰져 있다. 레일 타기, 산성 오르기 등을 할 수 있는 각종 탐험시설도 설치돼 있다. 아이들 뛰놀기에도 좋다. 그런데도 이용요금이 따로 없다.

해질녘 장성호반 드라이브도 그만이다. 장성호를 따라 가는 도로 경치가 빼어나다. 주변 풍경이 아름답다. 시원한 호수도 바라볼 수 있다. 보트, 제트스키 같은 수상 위락시설도 운영되고 있다. 임권택 감독 조형물이 있는 장성호 수변공원도 잠시 쉬어갈 만하다. 하루 나들이 코스로 이만한 곳이 없다.

 장성호. 종일 내리던 비가 잠시 그친 사이 풍경이다.
장성호. 종일 내리던 비가 잠시 그친 사이 풍경이다. ⓒ 이돈삼


#양심가게#신촌마을#백양사#홍길동 우드랜드#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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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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