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부처님 오신 날, 전국 사찰들은 인산인해를 이뤘을 겁니다. 본격적인 봄이 오는 길목에서 봄의 전령사 '봄바람'과 '봄 꽃'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은 산이나 들을 찾았겠지요. 우리나라에서 봄이 가장 아름다운 곳을 추천하라면 저는 '전북 고창'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고창군은 특별히 꽃으로 유명하지도 않고, 높은 산이나 화려한 관광지가 있는 곳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 곳을 가면 사람을 끌어들이는 뭔가가 있습니다. 오히려 색깔이 고운 꽃보다 서늘한 바람에 몸을 맡기며 산들거리는 '청보리'가 있습니다. 전국 최대 규모의 청보리밭은 매년 5월 초에 '축제'를 합니다.
그렇지만 축제 때는 너무 복잡해 오히려 축제 분위기가 한 풀 꺾이는 지금이 딱 좋습니다. 또 고창에는 5월말부터 6월 중순까지 열리는 '복분자'가 그 자태를 뽐냅니다. 그야말로 이 둘은 봄이 아니면, 고창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거기에다 우리나라 석기시대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고인돌'도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부산 사람으로 전라도의 음식과 경관, 그리고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여유가 있고 해학이 있고, 재미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가슴이 따뜻합니다.
경상도를 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전라도보다 좀 더 산업화가 되면서 공장과 사람들은 많이 늘었는데, 오히려 사람들의 인심은 참 매말라 버린 역효과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역으로 '귀농' 바람이 불기도 하지만요.
어쨌거나 전라북도 고창군은 그렇게 '봄'이 좋은 고장임이 틀림 없습니다. 마침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서 고창으로 떠났습니다. 무작정 가 보기로 했습니다. 가면서 "부처님 오신날에는 절에 가서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침 <1박2일>에서 은지원과 김종민이 '템플스테이' 체험을 했던 '선운사'가 떠올랐습니다. 오전에 선운사에 도착해보니 저녁 예불을 준비하느라고 벌써부터 분주합니다. 이윽고 정오가 되자 '공양'시간이라며 밥을 준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그것도 '개신교'인입니다. 그런데 절밥은 참 좋아합니다. 또 여행을 좋아하면서 우리나라 사찰들을 자주 갈 기회가 있어서인지 절이 그렇게 낯설지 않습니다. 또 제법 유명한 스님들에게서 글씨를 선물 받기도 하고, 때로는 절에서 잠을 자기도 합니다. 참 인심이 좋습니다. 교회에서는 상상을 못할 일이라 더 그렇게 느껴지는가 봅니다.
청보리밭, 온 천지가 웰빙식탁
선운사를 떠나서 곧바로 '청보리밭'으로 향했습니다. 드넓은 보리밭 사잇길을 거니노라면 연인들과 가족들의 행복한 표정이 보는 이의 기분을 좋게 합니다. 군데군데 보릿단이 쓰러져 흉한 모습을 하기도 하지만 곧 노랗게 변할 보리밭은 그렇게 또 많은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 줄 영양식을 품고 있습니다.
빠르면 초여름이면 보리추수가 시작되겠지요. 땅은 이렇게 우리를 위해서 해마다 빠짐 없이 양식과 곡식을 제공하는데, 우리는 땅의 소중함을 너무 모른 채 살아가는게 미안해집니다.
청보리밭 뿐 아니라, 고창읍성과 고인돌 유적지도 볼 만 합니다. 고창읍성은 돌을 머리에 이고 세 바퀴만 돌면 영생한다는 전설이 있는데, 옛날 사람이면 몰라도 현대인들은 감히 시도를 못 할 것 같습니다.
고인돌 유적지는 지금 한창 공사 중입니다. 물론 출입은 할 수 있는데, 내부에 석기시대를 재현해 놓은 세트를 정비하고 있고, 요즘 늘어나는 관광객들을 위해서 편의시설 일부도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고창을 가면 꼭 사 와야하는것이 바로 '복분자'입니다. 안타깝게도 6월 하순이 돼야 올해 첫 복분자를 수확한다고 해서 맛은 보지 못했습니다. 영농조합에는 복분자 원액과 작년의 냉동 복분자를 판매하고 있어서 이것을 온라인으로도 주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철의 복분자 맛을 보려면 한 달 기다렸다가 6월하순에 가면 맛있는 복분자를 먹을 수 있습니다.
쓰고보니 고창 특산물 홍보하는 것 같군요. 어쨌든 봄이 아름다운 '고창군'은 우리에게 향수를 자극하고, 봄바람을 타고 오는 '보리밭'의 사각거리는 부딪침을 선사하며, 석기시대 한반도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고, 복분자의 활력을 한 보따리 안겨주는 풍성한 어머니와 같은 고장임이 틀림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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