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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한 새벽을 비질 소리로 여는 이들이 있다. 미화노동자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난 2009년 10월부터 시작된 공공노조의 구상을 시작된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 캠페인이 널리 알려지고 여러 대학 미화노동자들의 투쟁이 벌어지면서 부터다. 여기에 쏟아진 연대는 희망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얼마 전 화제가 된 소위 '패륜녀' 사건은 학생들과 노동자들의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씁쓸하게 각인시켰다. 이번 사건을 접하며 미화노동자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5월 26일, 고려대 미화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공공서비스 연맹 서경지부 고려대 분회 사무실을 찾았다.

이영숙 분회장이 따뜻하게 반겨주셨다. 인터뷰 시작 전, '데이트는 안 하냐', '00은 어떻게 지내냐'며 미화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을 돕던 학생들의 안부를 묻는 그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을 통해, 우리가 잘 몰랐던 하지만 알아야 할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노조는 필히 있어야, 노조 있으면 함부로 못해"

ⓒ 진실을알리는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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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노동자에게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를' 캠페인 등으로 미화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세상에 다시금 알려진 것 같아요. 고려대 미화 노동자들의 일상은 어떤가요?
이영숙 분회장(이하 이영숙) : "근로계약에는 오전 6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이지만 실제로는 더 빨리 나와야 해. 학생들 수업 듣기 전에 강의실 청소도 해야 하고, 교수님들도 일찍 출근하시니까 연구실 청소하고 그러려면 보통 새벽 5시 전에 출근해. 새벽 3시 반쯤 집에서 나오는 노동자들도 있어.

그런데 퇴근은 꼭 4시에 해야 해. 5분이라도 일찍 퇴근하려하면 미리 담당자에게 허락을 받아야해. 지금 시급 4110원을 받는데 사실 이 걸로는 저축, 문화생활은 꿈도 못 꿔. 사람들은 우리를 낮은 신분으로 보지만 우리도 밥도 먹고, 청계천 같은 곳에서 옷이나 신발도 사고 그래야 하잖아. 최저임금 자체가 올라야 해."

- 그래도 고려대는 건물마다 미화노동자들 쉼터도 있고, 다른 곳들에 비해서는 처우가 좋은 편인 것 같은데그 이유는 뭘까요?
이영숙 : "그야 노조가 있어서 그렇지. 또 학생들이 자신들의 공간을 우리에게 준 덕에 이렇게 사무실도 쓸 수 있는 거야. 지금은 여기서 밥도 직접 해 먹고 어떤 건물에서는 작업복 빨래도 할 수 있어(벽에 붙어있는 '따뜻한 밥 한 끼' 포스터를 가리키시며).

저기도 붙어있지만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아. 노조는 필히 있어야 해. 지금 동덕여대에서는 노동자들이 해고 위협을 받고 있거든. 업체가 바뀌면서 노동조합에 가입된 사람들을 자르려고 하나 봐. 사실 우리도 작년에 본관에 들어가고 그러면서 고용승계 따낸 거잖아. 우리도 노조 없을 때 회사 사람이 "너 애 보러 갈래? 집에 가라" 이런 막말도 자주 했었지. 이제는 노조가 있으니 그렇게 함부로 못하지."

- 연세대도 체불임금을 다 받았다고 들었어요. 고대도 그렇고 노조가 있는 곳은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영숙 : "연대는 1년 동안 상여금을 30만원 받게 됐어. 식대도 올렸고. 그러니까 이대도 영향을 받은 거야. "연대도 따냈다. 우리도 하자" 이러면서. 그래서 임금도 시급 4200원으로 올리고 상여금도 땄어. 뭉치면 된다니까. 큰 대학에서 잘 싸우면 그게 다 본보기가 돼. 다른 대학들도 노조를 만들 수 있도록 교육도 하면서 우리도 노력하고 있어."

"처음엔 우리가 학생들 피했는데..."

 공공서비스노조 고려대 분회 이영숙 분회장님
공공서비스노조 고려대 분회 이영숙 분회장님 ⓒ 김지윤
- 고대에서는 노동조합을 언제, 어떻게 결성하시게 된 건가요?

이영숙 : "2003년 가을부터 준비해서 2004년 7월에 출범하게 됐어. 학생들이 노조 결성하는데 큰 도움이 됐지. 당시에 학생들이 많이 달라붙었어. 우리는 처음에 무서워서 노조 만들고 이런 거 못했지. 학생들이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사실 처음엔 우리가 학생들을 피했어. 그런데 학생 셋이 와서는 "월급 65만 원으로 어떻게 생활하세요? 아이들 학비는 어떻게 내시는 거예요?" 그런 질문들을 하면서 실태조사를 했지. 그러면 우리는 대답해주고. 퇴근하고 나서 노동자들이 돌아가면서 학생들에게 우리의 요구를 이야기하고 그런 일들이 계속됐지.

근데 2003년 당시 한 처장이 미국에서는 3교대 근무를 한다며 이걸 시도하려 한 거야. 그렇게 되면 휴일도 다 없어지는 거였어. 우리도 집에 가면 엄마고, 휴일에 경조사도 있고 한데 3교대를 한다니 화가 났지. 그래서 근로조건이 더 열악해지는 것 때문에 노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원래는 연봉에 퇴직금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노조를 만들고서 곧바로 따로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걸로 따냈어. 전임자 임금도 따냈고.

내가 지회장이 됐는데 회사는 처음에 나를 눈엣가시로 여기면서 해고한다고 위협하고 그랬어. 상근을 시작했는데 사무실이 없으니 건물 대기실을 돌면서 조합원들 만나고 그랬지. 조합원들 반응도 반반이어서 반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피하는 사람도 있고 그랬거든. 처음엔 참 힘들었어. 근데 당시 분회장이 "우리는 뺏길 것도 잃을 것도 없다. 지금 우린 땅바닥에 있다. 그러니 땅에서 치고 올라갈 일 밖에 없지 않겠냐"고 그러더군. 그 말에 힘을 얻었어. 힘들어도 끝까지 노조 활동을 하겠다고 맘을 굳게 먹었지."

- 학생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네요.
이영숙 : "그럼. 학생들 덕을 많이 봤지.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 이 방 -사무실은 이공계 학생들의 과학생회실, 동아리실이 모여있는 학생회관 1층에 자리하고 있다- 은 당시 생명대 학생회장이 만들어 준 거야. 처음에 이 공간 쓴다고 하니까 학교 총무과에서 학교 건물 쓴다고 막 화를 내더라고. 학생회장이 공문을 써서 전달하자 잠잠해졌어.

지금은 시설 문제가 생기면 학교에서 고쳐주고 그래. 연세대나 이화여대도 마찬가지야. 학생들이 노동자들에게 컴퓨터며 한글이며 가르쳐 주고 있어. 풍물도 노동자들이 배우고 있어. 앞으로 이런 게 계속 이어지는 게 중요해. 새내기들이 이런 일을 많이 접했으면 좋겠어. 일상적 소통이 많아져야지. 투쟁이 없더라도 말이야."

- 제가 출교됐을 때도 도와주셨잖아요. 후원금도 주시고, 계절마다 보양식도 해주시고요. 정말 큰 힘이 됐어요. 고대 분회는 이제까지 학생들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같이 싸워 오신 것 같아요.
이영숙 : "출교 때 정말 우린 최선을 다했어. 나중에 그게 도움이 됐다고 하니까 참 기쁘더라고. 학생들과 우리는 떨어질 수가 없어. 학교의 주인은 학생들이잖아. 그러니까 학생들과 잘 지내야지. 우리가 그냥 돈을 받고 청소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나름 학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게 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학생들보면 동지애를 느끼기도 하고. 학생들이 없으면 우리는 허수아비야. 학생들이 우리 권리 찾아주고, 억울함도 풀어줬는데 보답해야지. 학생들이 문제가 생기면 도와주고 싶고 그런 마음이 들어. 등록금 인상 반대 집회에 가서 연설도 하고 그러는데 그러면 학교 관계자들은 안 좋아하는 것 같아. 집회 장소 근처에서 무섭게 지켜보는 걸 봤어."

"학생들과 일상적 소통했더라면 패륜녀 같은 사건 없었을 것"

- 학교 밖에도 연대를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매체에 실리는 집회 사진들 보면 우리 고려대 노조원들 사진이 정말 많아요.
이영숙 : "학생들하고 부산대까지 가서 싸운 적도 있고 청주대, 경희대 의료원도 갔었지. 하여간 안 간데 없이 다녔어. 연대하러 갔다가 용역 깡패들한테 끌려나온 적도 있어." 

- 노조 처음 만드셨을 때도 그렇고 분회장님 뚝심이 대단하세요.
이영숙 : "그래? 허허. 분회장하면서 그리 됐지."

- 그런데 혹시 일하시면서 경희대 막말 사건 같은 일들은 없으셨나요?
이영숙 : "아휴, 그런 일은 없어. 스트레스 받은 학생들이 휴지를 둘둘 말아서 물에 적신 후에 벽이나 천장에 막 던지기도 하고 세면대에 휴지를 막아놓고 그러기도 해. 학생들도 인간이니까 스트레스 받으면 그러겠지. 그래도 인사하는 학생들도 많고 학생들이 우리를 깍듯하게 대해."

- 지난해 '폐종이 전쟁'은 많은 학생들에게 감명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후배들 몇몇도 본관 점거도 하고 집회도 가면서 생각을 깊게 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본관에서 해 주신 음식도 정말 맛있었다면서 투쟁하니까 밥도 더 잘 먹게 된다고 농담도 했었고요.(웃음)
이영숙 : "그래, 그때 학생들이랑 노조원들이랑 분임토론도 하고. 같이 고기도 구워먹었잖아(웃음). 학생들하고 노동자들 사이에 일상적인 소통이 많아져야해. 경희대 그 학생도 만약에 일상적으로 노동자들과 소통하고 자주 접했더라면 그렇게 대하지 않았을 거야. 노동조합이 있으면 학생들과 접점도 더 만들기 쉽고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봐. 앞으로도 큰 투쟁이 없을 때라도 학생들과 자주 만났으면 좋겠어. 노조를 처음 만들 때는 학생들이 더 많고 관심도 컸던 것 같아. 이제 새내기들도 많이 보고 하면서 계속 소통을 이어갔으면 좋겠어."


#고려대#미화노동자#노동조합#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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