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님, 안녕하세요.
2004년, 심상정님이 민노당 국회의원이었던 시절 부유세를 관철시키고자 함께 고민하고 속을 태웠던 윤종훈입니다. 기억하시죠?
저는 지금 정치권에서 한발 뒤떨어져 15평 남짓한 조그마한 짬뽕 가게에서 하루 13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자영업자로 지내고 있습니다. 천안함 사건이니, 지방선거니 하는 굵직한 일들을 멀리 바라보며 하루 하루 고단하게 살고 있지만, 심상정님의 경기도지사 후보 사퇴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벅차 올라 한 마디 하고자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심상정의 사퇴 그리고 모택동의 '국공합작'
MB 정권이 출범한 뒤 독재정권의 본질을 드러내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고민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진보진영의 정치적 행보가 이대로 가도 좋은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하하고 한미FTA를 밀어붙일 때 누구 못지 않게 앞장서서 여당(현재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을 비판하고 미워했습니다. 신자유주의라는 잣대를 들이대면서 한나라당과 하나도 다를 게 없으며, 오히려 양의 탈을 쓴 늑대로 겉과 속이 그냥 늑대인 한나라당 보다 더 해로운 존재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MB정권이 신자유주의라는 단어 조차 사치스러울 정도로 파쇼정권의 본색을 보이면서 '신자유주의 = 민주당 = 한나라당'의 공식이 옳은지 혼란스러워 저 혼자 도서관에서 모택동의 모순론과 중국공산당사를 다시 꺼내 읽으며 생각을 정리한 적이 있었습니다. 중국공산당의 정책 노선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한줌도 안 되던 세력이 어떻게 그 큰 중국대륙을 통일하였는지 그 전략과 전술을 다시 공부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가장 감동을 준 것은 '국공합작' 전략입니다. 모택동은 '국공합작' 전략을 관철시키기 위해 '모순론'을 새롭게 내세웠습니다. 당시, 정통 막스레닌주의에 의하면 모순은 근본적 모순과 부차적 모순으로 나뉘어졌습니다. 근본적 모순은 모든 모순을 규정하는 것으로 계급적 모순이 근본적 모순이었습니다.
근본적 모순의 기준에 따르면, 당시 중국에서 국민당과 일본제국주의는 다를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둘 다 대지주와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력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당시 중국공산당은 국민당과 일제 둘 다 적으로 규정하고 싸우는 것이 정통 막스레닌주의에 합당한 노선이었습니다.
그러나, 모택동은 모순론에서 '주요모순'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등장시켰습니다. 근본적 모순(=계급적 모순)을 밑바탕에 깔면서도 각 나라의 정세에 따라 '주요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당시 중국의 주요모순은 민족적 모순으로 규정했습니다.
이 이론에 근거해서 국민당과 일제는 동일한 적이 아니라 분리되었고, 오히려 공산당은 국민당과 함께 연합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되었습니다. 공산당은 국민당의 제8로군으로 편입되어 '민족해방전쟁'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정치적 물리적 기반을 하나씩 쌓으면서 중국통일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물론, 모택동도 모순론을 내세울 당시 당내 정통 막스레닌주의자에 의해 수정주의자이니, 변절자니 하는 비판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이러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이 '국공합작'의 정신을 배울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그 포문을 공개적으로 연 것이 심상정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최악' 막기 위해 '차악'과 손잡을 때제 개인적인 정책 노선은 진보신당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보편적 복지'를 내세우는 복지국가 노선의 기준에 따르면, 과거 여당 시절의 민주당 및 국민참여당과 현재 한나라당의 차이점이 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와 이상은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자신의 세력이 약할 경우에는 적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정치적 행보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적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는 이상이 다른 세력과도 웃으면서 손잡을 수 있어야 진정한 정치세력, 진정한 정당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저는 그동안 진보진영의 정치적 행보를 볼 때 마다 마음 한구석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보수진영이 움직이는 기준은 한 가지입니다. '자신의 이익에 맞는가?' 하는 것이죠. 따라서, 자신의 이익에 맞으면 과거에 원수였던 사람과도 언제든지 웃으면서 손잡을 수 있는게 보수진영의 본질입니다. 너무도 간단한 기준이라 변화무쌍하고 신속하죠.
반면, 진보진영은 다른 세력,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마다 따지는 게 너무도 많습니다. 과거의 생각과 행적, 궁극적인 이상, 현재 국면에 대한 전략 전술적 판단 등등 판단 기준이 너무 많아 이중 하나라도 틀리면 토론하다 날 새우고 감정 상하는 일들이 반복됩니다. 정당과 정치는 배짱 맞는 사람끼리만 모이는 동호회가 아닙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누구의 정책이 더 좋은지, 누구의 이상이 더 바람직한지'를 따질 한가한 상황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최악을 막아야 할 긴박한 상황입니다. 최악을 막기 위해서는 차악과도 손을 잡아야 합니다. 과거 모택동의 국공합작 정신이 간절히 필요할 때 압니다.
진보정치는 이상만 갖고 키워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터전이 필요합니다. 엄격한 신자유주의 잣대에 의하면 민주당 및 국민참여당과 한나라당이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보다는 참여정부 시절이 진보정치가 뿌리 내리기에는 훨씬 좋은 환경이 아니었을까요?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날지 모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심상정님의 결단에 찬성하며 나중에 큰 역사적 평가가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제가 현재 진보신당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과거에 깊은 연이 있어 그 분위기는 대략 짐작이 갑니다. 심상정님이 결단을 내리기 까지 얼마나 깊은 고민이 있었을까, 앞으로 얼마나 시달릴까를 생각하면 제 가슴이 답답합니다.
지금은 생계문제로 이런 저런 깊은 생각을 못하지만, 가끔은 몇 년전 부유세 문제로 함께 고민하고 보수정당과 치열하게 싸웠던 심상정 님의 모습이 그립기도 합니다.
상황이 안정되고 마음이 추슬러지시면 언제 한번 저희 가게에 들르십시오. 따뜻한 짬뽕 한 그릇 대접하고 싶습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윤종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