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을 소재로 한 장시 4편을 의정사에 상재합니다. 우리의 선조는 시로 정치를 뽑고, 시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족적을 남겼으며, 국민과 역사와 소통하였습니다. 저는 시를 정치의 장에 불러오고 의사장에 앉히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4대강 앞에서 우리가 저지른 일들을 겸허하게 반성하며, 대자연 앞에서 겸손한 자세를 갖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5대 국회에서 일어난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 때 '1996년 12월 26일 새벽 6시'라는 시를 발표하고, 지난 2003년 이라크 전투병 파병 땐 '불타는 바그다드의 어머니'라는 시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낭송한 국회의원이 있다. 정몽헌 현대회장이 이 세상을 떠났을 땐 '금강산의 소나무 한 그루'라는 시를 발표한 시인이 있다.
그가 바로 김영환 시인이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 서거 때에도 '평화의 땅 하늘나라에 사자별 되소서'라는 조시를 발표했다. 시로 정치를 뽑고, 시를 통해 정치를 말하며, 시를 통해 국민과 마음을 하나로 묶기 위해서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굴삭기 삽날 아래 악악 피뿜으며 죽어가는 4대강 짙푸른 물결 위에 핏방울로 구르는 시를 썼다.
이 시는 4대강 사업으로 창자까지 몽땅 다 드러난 아픈 생태환경이자 4대강에 몸과 마음을 섞으며 푸르른 강물이 되어 한반도 산천 곳곳에 아름다운 생명을 심고 싶은 아프고도 아름다운 바람이다. 그는 이번 시에서 4대강을 생태환경뿐만 아니라 우리 전통과 역사로 드넓혀 마침내 시와 정치를 하나로 묶는다.
우리는 강물 앞에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일 뿐
"4대강을 돌아보며 참으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일을 막지 못하고, 기껏해야 시나 쓰고 있다니... 차라리 몸을 던져 예산안 통과를 막았어야 할 것을... 이토록 아름다운 산하를 누가 마음대로 능욕한단 말인가! 우리 모두가 흐르는 강물 앞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일 뿐인데..." - '글을 열며' 몇 토막
조계종 문수 스님이 이명박 정부가 불도저와 굴삭기로 마구 짓밟고 있는 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하며 소신공양(부처에게 공양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것)을 해, 엄청난 너울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소신공양은 특히 6.2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어 2MB를 심판하는 이번 선거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 정국이 이렇게 역풍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김영환(민주당 의원) 시인이 한반도 젖줄인 4대강, 한강과 낙동강, 금강, 영산강을 직접 둘러보고 적은 장시를 엮은 <돌관자여, 흐르는 강물에 갈퀴손을 씻으라>는 르포 시집을 펴내 화제다. 여기서 '돌관자'란 '돌파와 관철을 신념으로 지닌 사람'을 뜻한다.
이 시집은 국회 국토해양위 소속 3선 의원으로 18대 국회 후반기 지식경제위원장 후보에 오른 김 의원이 올해 들어 4개월 동안 우리나라 4대강으로 불리는 한강과 낙동강, 금강, 영산강을 직접 발품 팔아 돌아다니며 쓴 시들로 가득하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쓰러지고 있는 우리 자연과 환경, 시민운동가, 정부와 건설사 관계자, 지역주민을 직접 만나며 피부로 느낀 '살떨림'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겨울 한강에 촛불을 들라' '돌관자들이여, 낙동강에 갈퀴손을 씻으라' '제발 금강 비단물결을 흐르게 하라' '영산강에서 전봉준을 만나다'가 그것. 아름다운 4대강을 찍은 예쁜 칼라사진(사진작가 박용훈)까지 실려 있는 이번 시집 곳곳에는 4대강 삽질로 멀쩡했던 바위, 나무, 모래밭, 꽃, 짐승, 벌레, 물고기 등이 마지막 숨을 헐떡이며 '살려달라' 애타게 부르짖고 있다.
김영환 시인은 지난 23일(일) 영등포 교보문고에서 열린 팬 사인회에서 "4대강을 돌면서 아름다운 산하가 토막 나고 없어지는 것을 보며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며 "4대강은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후손과 역사의 문제이기 때문에 꼭 잘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국민적 관심을 호소하고자 펜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제 시집은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4대강 사업에 대해 불교계와 천주교계가 강하게 반대하고 국민의 의지를 결집하는 시점에서 나왔다는 데 매우 큰 의미가 있다"며 "르포 시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공존, 역사와 전통이 남겨져야 하는 공감대가 형성돼, 4대강 논쟁에 '마침표'를 찍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못 박았다.
나이 어린 강이 시인데, 그 시를 죽이려 하다니...
나이 어린 江(강)이 詩(시)가 되는 것은
무덤 없는 이들이 그곳에 몸을 풀었기 때문이다 - 9쪽, '서시' 모두
김영환 의원(경기 안산 상록을, 3선)은 정치인이기에 앞서 "따라오라 시여", "똥 먹는 아빠" 등 시집 7권을 비롯해 수필집, 평론집 등을 펴낸 우리시대 뛰어난 시인이다. 김영환 의원이 이번에 펴낸 4대강 시집은 요즘 문학이 현실에 제대로 맞서지 못하는 것에 대해 정치인이자 시인으로서 4대강을 정치와 사회로 매듭지었다는 점에서 뜻이 더욱 깊다.
그는 2010년 2월 한강에 나가 생명이 흐르는 강이 허파가 찔리고, "남은 수변공간조차 점차 물에 잠기게 될 것"이란 우려스런 목소리를 듣는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밀어붙이는 한강 복원작업은 복원이 아니라 백사장 나루터를 없애고 "거대한 콘크리트의 바벨탑"(2010년 겨울, 한강 르네상스)을 세움에 다름 아니다.
밤섬을 지켜온 쌍바위는 "1968년 폭파되어 / 강 건너 윤중로의 제방이 되었"고, "우리가 버린 밤섬은 / 쌍바위의 부서진 뼈마디와 살점을 기억하며 / 이름 없는 풀꽃과 황조롱이를 껴안고"(사라져버린 이야기들) 꺼이꺼이 울고 있다. 한강이 이처럼 팔 다리가 잘려 앉은뱅이가 되어 숨을 겨우 헐떡이고 있는데도 서울시는 "어머니인 강을 능욕"하고 있다.
한강은 곧 뿌리(강바닥)마저 파헤쳐질 것이지만 한강 가슴을 짓누르는 유람선을 탄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밤섬의 철새에게 손을 흔든다". 시인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지닌 밤섬을 바라보며 "한 줌의 폭약으로 날려버린 우리들의 손을 씻어야 한다"고 외친다. "밤섬의 수양버들에 목 매달아야 한다"고 목청 터지게 울부짖는다.
강은 우리들 어머니이자 우리들 역사
숭례문을 태우는 일보다 더 엄청난 재앙이
낙동강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모래와 자갈이 한꺼번에 파 뒤집어지고
강변에 서식하던 달뿌리풀, 갈대, 버드나무 군락이
뿌리 뽑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쓰나미는 지나갔고,
아이티에서는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과학도 포크레인의 갈퀴손도
이 엄청난 자연 앞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 41쪽, '낙동강이 타고 있다' 몇 토막
시인은 굴삭기 앞에서 살갗 같은 모래바람을 뿌리며 죽어가고 있는 낙동강 앞에 서서 "숭례문과 낙산사를 태운 우리들 앞에 / 낙동강마저 처절하게 토막 내는 / 돌관자의 갈퀴손"을 숨 막히게 바라본다. 생명이 흐르는 낙동강에 "1300리 척추에 여덟 개의 철심을 박고 / 지천과 본류가 만나는 관절 마디마디에 낙차공 95개의 족쇄를 채우는"(낙동강 프롤로그) 그 피 묻은 손을 어찌 씻을 수 있느냐는 투다.
시인은 굴삭기 앞에서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는 낙동강을 돌며 임하댐 앞에서 소나무가 죽어가고, 주민들이 기관지 천식으로 콜록거리며 관절염에 시달리는 모습도 가슴 깊숙이 새긴다. '4대강 살리기'는 '4대강 죽이기'이자 생태계를 무너뜨려 마침내 낙동강만 죽는 것이 아니라 그 강을 끼고 살아가는 삼라만상, 사람까지도 모조리 죽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연 생태계의 자연법을 거스르고, 붉은 완장을 차고 / '하면 된다'를 외치며" 낙동강 죽이기에 "속도전을 펼치고 있는" 못된 정부를 향해 이렇게 외친다. "강은 모래다. 강은 산이다. 강은 어머니다. 강은 역사다"라고. 시인은 그리하여 왜가리와 청둥오리에게도 발언권을 주고, 뱀장어와 모래무지에게도 투표권을 줘야 한다고 여긴다.
낙동강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수천 년을 이곳에 살아온 세상을 떠난 조상들"에게도 물어봐야 하고, "수억 겁을 살아갈 후손들"에게도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강바닥의 자갈과 모래 진흙과 수초들도 / 참견할 권리가 있"으며, "나는 새와 곤충, 기는 짐승과 서서 걷는 짐승"에게도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이 흐르는 물길 위에 적은 뜨거운 시
"전국의 4대강이 파헤쳐지는 현장을 돌아보면서 밤잠을 설친 적이 많았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나는 아직도 왜 돌파와 관철을 신조로 하는 돌관자들의 갈퀴손이 이토록 졸속으로, 이토록 무자비하게, 이토록 광범위하게 우리의 강을 파헤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 김영환
문화사학자이자 강 답사가 신정일은 "온갖 것을 다 심어도 사람은 백 년도 못 산다. 강물은 세세천년을 우장하게 흘러간다"라며 "우리를 살게 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생명의 강이 지금 아프다. 그런 강을 바라만 보지 않고 노래한 사람이 김영환 시인이다. 시인의 시를 읽다가 보니, 문득 김수영 시인의 한 구절이 예리한 칼끝처럼 파고 든다"고 평했다.
치과의사이자 3선 국회의원인 김영환 시인이 펴낸 <돌관자여, 흐르는 강물에 갈퀴손을 씻으라>는 지금 굴삭기 삽날에 마구 찢기며 죽어가고 있는 4대강, 그 생명이 흐르는 물길 위에 적은 뜨거운 시다. 이 시집이 있어 우리 민족을 보듬은 어머니인 한강과 낙동강, 금강, 영산강은 생명이 흐르는 젖줄로 목마른 산천 실핏줄 하나하나까지 쉼 없이 흐를 수밖에 없다.
김영환 시인은 1955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1986년 <문학의 시대>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따라오라, 시여> <지난날의 꿈이 나를 밀어간다> <꽃과 운명> <똥 먹는 아빠> <불 타는 바그다드의 어머니> <물왕리에서 우리가 마신 것은 사랑이었다>가 있으며, 과학 동시집 <방귀에 불이 붙을까요>, 수필집 <그대를 위한 사랑의 노래> <홀로 선 당신이 아름답습니다>, 평론집 <덧셈의 정치, 뺄셈의 정치>를 펴냈다.
시인은 민주화운동으로 20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으며, 옥을 나온 뒤 5년 동안 자격증 6개를 가진 전기 기술자로 일했다. 15~16대 국회의원, 과학기술부 장관,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정책위 의장, 최고위원 등을 맡았으며 2009년 10월 재선거로 당선되어 지금 안산시 상록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녹색정치인상' '남녀평등정치인상' '여성생명과학상'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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