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 새벽 5시 20분경, 새벽 3시가 넘도록 1위를 달리던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는 오세훈 후보에게 1만 7천여 표를 뒤지고 있었다. 얇은 옷 속을 파고드는 광장의 새벽바람은 차가웠다. 개표는 85.4%가 끝난 상태로 15.6%를 남겨놓은 상황이었다.
한밤을 꼬박 새우고 첫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면서 '아직도 뒤집을 기회는 있을 거야"라고 나를 위로했다.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돌아와 물으니 끝까지 개표를 해봐야 안다고 했다. 쌓인 피로로 잠시 눈을 붙인 뒤 일어나 보니 2만6천 표 차이로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고 했다. 순간 지난 13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편 가르고 업무 미루고... 선거 캠프 맞아?
나는 어느 정당이나 여성단체도 속해 있지 않은 '게릴라 아줌마'다. 그런데 이번에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서 13일간 선거 사무원으로 일했다. 13일간 배운 게 50여 년 이상의 세월 동안 배운 것보다 많았다.
선거 캠프는 선거 기간 동안 잠시 꾸려지는 조직인데도 늘 계보를 묻고 편을 갈랐다. 서울 시민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선거 사무원으로 일하는데 왜 계보가 필요할까? 특히 초기에 어려움이 많았던 것은 내가 단체나 조직에서 온 사람이 아닌 그저 시민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결정을 하는 데 반나절을 꼬박 회의로 보내거나 관장 부서나 조직이 달라 서로 미루는 일도 있었다. 공은 서로 다투고 허물은 서로 남 탓으로 돌리는 일이 캠프라고 다를 리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퍼렇게 멍든 한명숙 후보의 손... 나도 못 잡아봤네
차츰 캠프가 자리잡아 가면서 광화문에서 촛불집회와 유세장을 돌며 밑바닥 민심을 듣는 한 후보에게서 희망의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적 촉박함에서 오는 안타까움도 많았다.
내가 맡은 분야는 전화 홍보였는데 오세훈 후보가 두 번씩이나 다녀갔다는 관악구 복개천에 한명숙 후보가 한 번이라도 유세를 와 줄 것을 당부해 보고서로 올렸지만 그런 요구들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 내 경로당에서도 한 후보의 유세 방문을 간절하게 요구했지만 유세 일정에 들어 있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유세 마지막 날인 6월 1일 아침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지점이라는 석수에서 아침 7시에 출근자들을 향한 '서울·경기 합동 유세'가 있었다. 유시민 경기도지사 후보와 한 후보가 합동 유세를 마친 후, 한 후보는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다음 기자 회견장인 서울광장을 향해 갔다.
출근길 지하철은 만원이었고 자리도 없어 후보는 문간에 서 있어야 했다. 두어 정거장 지난 뒤 자리가 생겨 앉은 후보는 잠시 눈을 감고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출근을 하는 젊은이들과 학생들이 한 후보를 알아보고 자기들끼리 소근거리다가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거나 내리면서 "한명숙 후보님, 힘내십시오!"라고 인사를 건넨 뒤 내리기도 했다.
동대문 두타나 명동에서 사람들은 어찌하든 한 후보의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려 아우성이었고 한 후보는 그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었다. 두 손으로 한 후보의 손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는 어르신과 하루에 수도 없이 하는 악수로 손등에 멍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악수할 기회가 있어도 뒤로 물러서 있었다.
그렇게 인터넷에서 늘상 떠들었던 10-20%p 이상 뒤진다는 무슨 조사 결과와 달리 실제 만남에서 보여지는 민심은 너무나 달랐다. 노회찬씨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온 노원구에서조차 이번에는 "한명숙에게 투표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반응을 접하며 시민들의 바람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진정한 민심의 현장이었던 셈이다.
민주당, 시민들만큼 절박했나요?
하지만 선거 기간 동안 좌충우돌하며 안타까웠던 점과 아쉬움도 무척 많다. 우선 후보가 원하는 곳마다 유세를 할 수 없었던 시간적 촉박함이다. 전화를 해보면 한 후보의 정책을 제대로 모르거나 자기들이 사는 동네는 후보가 한 번도 다녀간 적이 없다는 이야기가 들려와 안타까움을 더하게 했다.
유세차를 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왔다. 사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한명숙 후보의 선전과 투표에 보여진 결과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한명숙 후보는 최선을 다해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했으며 시민들은 최선을 다해 투표로 한 후보에게 답해주었다.
솔직히 실제로 시간과 여건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은 조직의 책임이지 시민들이나 타당 후보의 책임이 아니다. 그럼에도 공은 내 것이고 과는 너의 탓이라며 부질없이 입싸움이나 하고 있다. 그것은 시민들의 바람을 또 한 번 거스르는 일일 것이다.
발전을 위한 건강한 비판이나 되돌아봄은 자신에게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이제 남 탓 그만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최선을 다했는지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생각해 보자. 시민들이 야권에 힘을 실어주고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겸허한 자세로 최선을 다해 시민들의 바람에 함께 해야 할 것이다.
7월에 보궐선거가 또 있다. 야권에 힘을 실어 자리를 만들어 준 시민들은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 잠시 동안 캠프에서 조직을 지켜본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묻고 싶다.
"정말 당이나 조직이 시민만큼 절박했습니까?"
"밥그릇 챙기기와 내 표 챙기기가 아니고 서울시장 후보에게 부끄러움 없이 마음을 모았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