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것이 왜 여기에 있는가! 이것은 우리 것이 아닌가?' 한쪽 벽면 전체를 장식한 송학도에는 어른 키보다 큰 학들이 나전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길이는 어림잡아 7미터는 족히 되어 보였다. 작품 속의 학들은 주름질, 꺾음질 같은 조선 나전 기법의 세례를 듬뿍 받아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비록 세월에 부대껴 낡고 초라해졌지만 그 솜씨는 오롯하게 살아 있었다. 한국 선배 장인들의 땀과 정열, 칠 예술이 이 방에 모두 녹아 있었다. 그런데 작품의 한쪽에 죽파(竹波)라는 일본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고 그 밑에 깨알 같은 글씨로 광신(光信)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광신이라는 이름은 죽파라는 일본 화가가 도안한 그림에 자개를 새겨 넣은 조선의 무명 장인임에 틀림없었다.-<한국인 전용복> 중에서우연한 기회에 일본의 국보급 연회장 '메구로가조엔'의 밥상 1천여 개를 수리하게 된 전용복은 일본에서의 첫 전시회 직후 메구로가조엔에 정식 초대를 받는다.
메구로가조엔에 들어서자마자 만난 작품은 천마도. 말의 탄력 있는 근육과 은은한 구름을 나전기법으로 표현했는데, 자개의 결을 살려 꿈틀대는 듯한 운동감을 드러내는 기법이 그동안 무수히 보아왔던 우리 선조들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천마도에 대한 감동과 탄식도 잠시. 이어서 이처럼 한쪽 벽면을 장식한 거대한 송학도와 마주하게 된다.
그는 훗날 이날 만난 천마도와 송학도를 복원하게 된다. 일본의 내로라하는 옻칠장인들 모두 복원할 수 없다고 포기한 작품들인데 말이다.
전용복이 초대받아 방문한 메구로가조엔은 1931년에 건립된 도쿄의 호화 연회장으로 연건평 8천여 평에 객실 수만 200여 개, 바닥 길이만도 2킬로미터에 복도 길이만 3백미터라고 한다.
전용복의 옻칠세계와 함께 우리에게 잘 알려진 메구로가조엔이 유명한 것은 이처럼 큰 규모 때문이기도 하지만, 완성될 당시 활동하고 있던 에도 시대 예술가들의 예술품으로 건물 내부가 장식됐기 때문이다. 예술품들만 5천여 점에 달한다고 한다.
당시 최고의 건축가들이 참여해 지은 메구로가조엔의 벽과 천장 등 구석구석을 가득 채운 수많은 예술품들은 조선의 장인들이 없었다면 결코 존재할 수 없었던 것들이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송학도처럼 일본인 예술가가 도안을 그리고 조선의 장인들이 자개와 옻칠을 채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옻칠은 반만 년 동안 유유히 흘러온 우리 민족의 정기였고, 메구로가조엔은 이 땅에서 건너간 옻칠로 일본인들이 피워 올린 옻칠문화의 불꽃이었다. 그 메구로가조엔의 옻칠 작품을 위하여 숱한 조선의 장인들이 나라 잃은 울분을 삭이며 피와 땀을 흘려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6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낡고 훼손돼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복원 작업을 해야만 했다. 나는 목숨을 걸고 그 작업을 따냈고, 나와 무명의 한국 장인들은 선배 장인들의 넋을 기리겠다는 일념으로 치열하게 연구하고 노력한 끝에 복원 작업을 성공적으로 해냈다."-책속에서<한국인 전용복>(전용복 지음, 시공사 펴냄)은 옻칠장이 전용복의 이야기로, 그가 메구로가조엔을 복원하는 과정을 자세히 적고 있다.
메구로가조엔 측이 제시한 공사 규모는 최소 1조 원, 그리고 연인원 10만 명. 그는 3000명에 달하는 일본 최고의 옻칠 장인들과의 경쟁 끝에 복원 공사를 맡게 된다. 그는 한국에서 데려간 장인 300명과 함께 3년 만에 완벽하게 복원해 낸다. 이때 사용한 옻칠이 무려 10톤이란다.
이후 예정에도 없던 작품들까지 그의 손길이 더해져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메구로가조엔의 3분의 2는 단순 복원이 아닌 그의 창작품으로 채워진다. 그의 기술과 예술성에 일본인들이 탄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은 그에게 끊임없이 귀화 요청을 한다. 하지만 스스로 '조선의 옻칠장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그는 '조선의 옻칠'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결의만으로 자신의 이름을 지키게 된다.
옻칠공예품은 내구성이 강해 보존만 잘하면 만 년을 견딘다. 실제로 일본 홋카이도에서 93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옻칠장신구가 발견되었으며, 고구려 벽화나 팔만대장경도 옻칠로 도장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 없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영광스럽게도 부분적이긴 하나 직접 반야심경판을 옻칠로 복원한 적이 있다. 그때 다른 경판들도 모두 옻으로 도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책속에서<한국인 전용복>은 옻칠장이 전용복의 개인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옻칠의 나라 일본인들이 탄복하는 그의 옻칠 기술들은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고 혼자 터득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 기술들의 바탕은 우리 조상들의 옻칠문화이다. 책에는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식음을 전폐하며 밝혀내는 우리의 옻칠기술 그 과정들이 자세하게 소개된다.
책속에서 만난 옻칠과 우리의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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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칠에서는 인체를 보호하는 원적외선이 뿜어져 나온다. 이미 산업자원부에서는 옻칠에 함유된 앙암효과 등의 약리작용을 발표한 바 있다. …옻칠 방에서는 어린아이들이 감기에 잘 걸리지도 않고 두뇌를 항상 맑은 상태로 유지시켜준다. 또한 숙면을 취할 수 있고 피로도 말끔히 풀린다. 더구나 신체의 아픈 부위를 알려주기도 한다. … 옻칠이 된 그릇이나 가구아 있는 곳에서는 음식이 잘 상하지 않고 음식의 바쁜 기를 제거해 준다. 제대로 된 옻칠에서는 은은한 살구향이 나며 악취제거에도 탁월하다. 또 옻나무가 자생하지 않는 곳에서 자란 사슴의 뿔은 녹용으로써 약효가 없다는 보고도 있다. - 책속에서 간추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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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우리 조상들의 우수한 문화임에도 우리 땅에서 외면받는 실정에 대한, 우리 땅에서 옻칠 문화가 다시 살아났으면 하는 그의 바람과 열정이 오롯하게 녹아 있다.
책은 불우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이어 자기에 옻칠을 입히는 와태칠과의 만남, 메구로가조엔의 수많은 예술품들을 복원하며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식음을 전폐하다시피하고 밝혀내는 옻칠세계의 비밀들, 8400만 원짜리 옻칠 시계를 만들어내기까지, 한국에서의 옻칠문화발전시도와 칠예 박물관 설립 등에 관한 것들이 그려진다.
이 책에는 또한 천마도와 송학도를 비롯한 메구로가조엔의 예술작품 일부와 그의 최근 작품들의 도판이 수록되어 있어 옻칠작품을 맘껏 감상할 수 있다.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옻칠은 밥상 혹은 옛 가구들에나 칠해지는 밤색의 염료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책을 통해 만나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옻칠 세계는 놀라웠다.
"나는 이런 옻칠이야말로 우리 선조들이 남기신 혼의 정수이자 영원불멸의 유산이라고 확신한다. 그 사실을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땅에서 깨우칠 수 있었다.…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옻칠예가 다시금 한국 땅에서 사랑받고 기반 있는 전통으로 다시 설 수 있도록 부족한 한 몸을 던지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조상들에 의해 유용하게 사용되어 온 옻칠의 재건을 다짐하고 수없이 도전해왔다. 그 노력들이 내 나라 땅이 아닌 일본 땅이었기에 수많은 시련에 부딪쳤지만 그 시련의 중심에서 휘청거리고 있을 때도 가슴 한구석에는 자긍심과 뿌듯함이 존재했기에 나는 오늘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책속에서 전용복 덧붙이는 글 | 한국인 전용복|전용복 (지은이) | 시공사 | 2010-05-06 |정가 : 13,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