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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엔 원(苑)이 있다. 궁궐 북쪽에 위치하니 후원이지만 왕실의 전용공간이니 누구나 들어올 수 없는 금원(禁苑)이다. 창경궁을 그린 동궐(東闕)에도 후원은 있기 마련으로 상감은 좁다란 길을 산보하며 정무로 어지러운 머릴 식히곤 했었다.

이곳에 규장각(奎章閣)이 있어 항상 '민국(民國)'이란 이상정치를 실현하려는 산실이지만 가까이엔 부용지(芙蓉池)가 북으로 네모나게 자릴 잡았고 취병(翠屛) 사이엔 어수문(魚水門)이 다솟곳이 서 있다.

학문을 좋아하는 조선의 선비들이 당신 가까이 다가오길 바라는 마음은, 물고기가 물을 사랑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학문의 바다를 맘껏 헤엄치며 이상의 꼬리를 파느작거리는 이곳의 계단을 오르면 2층 건물과 만나는데 이곳이 종부시(宗簿寺) 자리다.

연전에 숙종 대왕이 종친의 업무를 보았던 곳으로 왕은 별도의 건물을 세우고 역대 국왕의 어제나 어필을 보관케 하였으니 이때는 왕립도서관 기능뿐이었다. 숙종의 어필을 가져와 현판을 단 게 규장각이나 1층은 '각(閣)' 2층은 '누(樓)'로 그곳에 주합루(宙合樓)가 자리잡았다. 주합루(宙合樓)란 현판 글씨는 상감이 쓴 것으로, 문예부흥과 개혁정치를 꿈꾸며 아래층에서 학자들을 맞았다면 2층은 쉼이 있는 장소였다.

두 달 전이었을 것이다. 경술년(庚戌年) 추석 뒤끝이었으나 그 해 일어난 여러 일들을 생각하면 가벼운 것만은 아니었다.

정약용을 해미현에서 풀어준 게 3월이고 배다리 프로젝트를 열기 위해 주교지남(舟橋指南)을 정했는가 하면, 7월엔 유구국(琉球國) 배가 표류한 걸 왜적이 침입한 것으로 오인해 그 얼마나 수선을 떨었던가. 그런데도 9월엔 <영조실록(英祖實錄)>과 <국조보감(國朝寶鑑)>을 태백산사고에 봉안했으니 참으로 적지 않은 일이 이뤄진 한 해였다.

찬바람이 나기 시작했을 때, 대전(大殿)의 박상궁은 불끈 화가 치솟아 나인들을 꾸짖었다. 그녀 앞엔 여덟 명의 나인이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너희들이 나무토막이 아닌 바에야 어찌 전하의 심기 하나 추스르지 못한단 말이냐. 상감이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는 건 후사를 멀리한 것이니 그것처럼 큰 일이 어딨느냐!"

모두들 묵묵부답이었다. 보위에 오른 지 열네 해가 지나는 동안 알게 모르게 노론의 머리들이 떨어져 나갔다. 혀끝에 칼날을 단 문숙의가 교살당하고 궁 안 역시 신진사료들로 바뀌었으니 내명부라고 예전과 같겠는가.

그러나 대비전엔 선대왕의 계비(繼妃) 정순왕후(貞純王后)가 도사리고 있었다. 나경언을 이용해 영빈 이씨(李氏) 소생 사도세자의 비행을 상소해 서인(庶人)으로 폐위시키고 뒤주에 갇혀 죽게 한 노론 벽파 김한구(金漢耈)의 딸이다.

정순왕후는 상감이 보위에 오른 뒤에도 시파(時派)를 미워하고 벽파(僻派)를 옹호한 탓에 그녀의 전각엔 한직으로 밀려난 원로중신들이 시시때때로 모여들어 자신들이 되살아날 계책을 강구했었다.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어요. 주상은 제 아비가 뒤주에 갇혀 죽었다고 벽파를 몰아치지만 나라고 아무 일 없었습니까. 딸이 대비지만 아버진 파직 당하고 오라빈 죽음을 당했어요. 그래도 한마딜 못하고 피울음을 삼켰으니 한의 깊이는 달라도 나 역시 가슴에 묻고 있어요."

대비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지나간 일이지만 아직도 한이 남았다는 증거였다.
"박상궁, 지금 주상이 하는 걸 보세요. 가난한 자 헐벗은 자를 구휼한다고 나섰어요. 그건 핑계에요. 지난 갑술년(甲戌年)엔 채제공(蔡濟恭)일 우의정 삼아 시전을 엄호하여 칠패시장이 흥성하더니 종이 밀무역이 일어나 한양의 난전에도 그 피해가 적지 않지요?"

"아, 예에."
"세상 사람들은 주상이 시정을 고루 살펴 살기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 들떠있어요. 그 흐름을 타고 수족같이 부리던 자를 궁 밖에 내보내 양반들을 감찰한다지 않소. 더구나 주상은 장악원에 계집들을 집어넣으려 서관을 운영케 하는 방책을 마련했소. 내금위장 신득수란 자에게 그 일을 시켰는데 여러 해 만에 그 자가 궁에 들어온다지 않소."

"예에?"
"젊은 계집을 이용해 속알머리 없는 중신들에게 올가미를 씌웠으니 나 역시 이대론 있을 수 없네. 그 자가 계집을 이용해 원로중신들의 허리춤을 잡아챘다면 우리도 같은 방법을 쓸 수밖에 없지 않는가."

박상궁은 생각이 깊어졌다. 그녀의 심중엔 갈레갈레 나뉘어진 여러 생각들이 쭈뼛쭈뼛 고갤 내밀었다.

'지금으로선 손과 발이 잘렸으니 방법이 없다 본 것이야. 섣불리 계책을 논하는 것도 위험하다 본 거겠지.'

그러나 방법은 있었다. 상감은 칼날을 휘두르는 장용위를 곁에 둬 자신을 보호했지만 상감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위치는 오히려 겨드랑이 가까이다.

"박상궁."
"예에."

"요즘도 주상은 규장각에만 계시는가?"
"규장각에 각신(閣臣)이 들어온 후 그들과 담론하는 게 길어졌습니다."

"주야로 머릴 맞댄다?"
"그러하옵니다."

"밤낮으로 정치 개혁이니 뭐니 하여 벽파(僻派)를 때려잡을 궁리를 하겠지. 서출 놈들을 궁에 들이는 것도 과람한데 개혁의 칼을 잡게 해요? 허어, 이러다간 나라가 망합니다."

"대비마마, 전임 사헌부 장령을 지낸 오대감께서 대비마마의 고충을 풀어줄 방책을 마련 중에 있으니 잠시 기다려 보옵소서."

"일이란, 늘어지면 안 되네."
"서두르고 있나이다."

"일을 하기 전에 주상의 호윌 맡았던 내금위장의 명줄부터 자르게. 그리해야 다음 일을 추진하기가 쉬울 게야."
"알겠나이다."

박상궁은 다소곳이 물러나와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다. 이 나라 조선에선 주상을 하늘이라 했고 중전이나 후궁을 땅이라 했다. 그렇다보니 주상이 땅을 불러 방사를 치르는 건 사적인 일이 아니라 공적인 업무였다.

주상이 땅을 불러 방사를 치르면 내관은 병풍 뒤에 귀를 곧추 세운 채 숨죽이고 들으며 여사(女史)의 작업이 순조로워지길 기다린다. 하늘과 땅의 공사가 온전히 끝나면 주합루에 매단 종을 울리며 천지의 신께 고한다.

'뎅그렁, 뎅그렁!'

이것은 환희의 소리이자 막힌 숨통이 트이는 생명의 소리였다. 어떤 일이 있다 해도 손이 귀한 왕가에선 이틀에 한 번은 울려야 했다. 주상의 잠자리 시중으로 뽑힌 나인을 발가벗겨 봐도 흠 하나 없는 매끄러운 피부들이다. 명문사대부가의 여식들인데다 <여논어(女論語)>를 달달 외운 처지니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중전마마가 병이 들어 모처럼 좋은 기회라 여겼는데 이레가 지나도록 주합루 종이 안 울린다는 게 말이 되는가. 어찌  종이 울리지 않을꼬?'

박상궁의 머리는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사내의 손에 길들여지지 않은 나무토막 같은 계집들, 그런 계집을 주상은 좋아했다. 원빈(元嬪)과 같은 여인으로 젖가슴이 한주먹에 들어오고 발가벗긴 몸을 머리에서 아래쪽까지 단숨에 쓸어내릴 정도의 여리디 여린 나인들.

그런 계집이 침전에 들면 주상은 날새도록 귀찮게 사분질했다. 그래서 예전엔 날이 밝을 때까지 주합루의 종이 세 번이나 뎅그렁 거렸다. 그런데 주합루 종이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는 건 박상궁에겐 달갑지 않은 소식이자 경고일 수 있었다. 정순왕후가 그랬지 않은가.

"우리쪽 대신들이 곤욕을 치르는 건 자네도 알 것이라 보네. 그러니 이 나라 종사가 자네 손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야. 믿을 건 씨밖에 없네. 우리쪽 아이가 합금을 통해 잉태를 해야 다음을 생각할 수 있잖은가. 이보게 박상궁."

"예에."
"자넨 어찌 그리 둔한가. 아무리 주상께서 풋과일을 즐기신다지만 날이면 날마다 그런 과일만 내놓으면 입맛이 나시겠는가. 때론 몸이 뜨거워 주체하기 어려운 것들을 들여보내라 그 말이네."

"오늘 전하를 뫼실 아이는 다르옵니다."
"방법이 있다?"

"그러하옵니다."
"그렇다면 어디 두고 보세. 오늘이야 천침(薦枕)할 아이가 정해졌다니 두고 보겠네만 내일 밤에도 주합루 종이 울리지 않는다면 자네 허물을 크게 따질 것이야. 아시겠는가? 그렇게 장승처럼 서 있지 말고 기력이 쇠한 벽파(僻派)가 회생할 방책을 마련하게."

박상궁은 가볍게 고갤 숙이고 물러나왔지만 지금 생각해도 귓불이 확확 달아올랐다. 그 동안 잠자리 시중으로 들어간 나인이 몇인가. 행적을 따져봤지만 이상한 점은 없었다.

'전하께서 주합루 종 치는 걸 만류하신 것인가?'

그런 생각을 곱씹다가 소격서에 봉직하는 무녀들 춤을 보던 게 휘그르르 떠올랐다. 답답한 마음에 불러들인 것이지만 무녀(巫女)는 마흔 살 어림으로 양손에 붉고 푸른 조화를 나눠든 채 천천히 걸어나와 인사를 올렸다. 그녀는 여덟 명의 나인을 보고  놀라운 듯 흠칫거렸다.

"어여 시작하게!"
박상궁의 채근이 떨어지자 모둠발로 선 무녀는 은분같은 사설을 뿌려댔다.

사녀는 구름처럼 가죽신이 꽉 차고
출입하는 자들은 어깨와 머리 부딪친다
소곤거리는 말은 새소리 같은데
늦어질듯 하던 말은 다시 급하다

나는 듯 휘는 듯 무녀의 걸음이 떼어지며 버들가지같은 허리가 휠 때마다 늘어선 나인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호기심으로 눈알을 번들거렸다. 춤사위는 괴이했다. 토악질하듯 뱉어낸 사설도 의미심장하긴 마찬가지였으나 사설이 계속되는 순간 나인들의 몸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온 몸이 근질거리고 몸이 배배 꼬였다. 희미한 불씨가 하초에서 일어나더니 마른 덤불에 번지듯 전신으로 옮겨붙자 호흡마저 가빠졌다. 늘어선 나인들이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자 박상궁이 빼액 고함 질렀다.

"그만!"
팽이처럼 핑그르르 돌아가던 무녀의 춤사위가 멈췄다. 그녀는 손에 든 조화를 내려놓고 사분거리며 걸어왔다.

"항아님, 어떻습니까?"
"무슨 춤이 그 모양인가. 내 숨이 막힐 뻔했네."

"항아님께서 보신 건 사람을 살리는 춤이지요. 닫혀있는 여덟 대문을 열고 들어가 환생꽃을 찾아오는 대목이니 어찌 기쁨과 환희가 없겠습니까."

"춤 이름이 뭔가?"
"신월뭅(新月舞)니다. 흔히 초승달 춤이라고 부르지요. 보는 이의 혼백을 들었다 놓는 건 춤 동작에도 이유가 있습니다만 기실은 쇤네 소매 속의 음향 때문입니다."

"음향?"
"만약 이 자리에 남정네가 있었다면 당장 목이 달아나더래도 항아님을 사랑하려 했을 것입니다."
"저런 망측하게스리."

곱씹어보니 춤사위가 특별했다. 동작 하나에 남녀가 얽히는 이불 속의 행위와 비슷했다.
센바람처럼 밀고 들어오는 사내의 힘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여인네 모습이 한 치 반 푼 깎이지 않은 영락없는 그 모습이었다. 배꽃이 피어나듯 무녀는 말갛게 웃었다.

'과연 신기로세. 어찌 저런 재주가 있을꼬.'

박상궁은 그녀를 곧 구석방으로 데려갔다. 춤사위를 보려는 이유만이 아닌 듯, 목소리가 더욱 가늘어졌다.

[주]
∎취병(翠屛) ; 꽃나무의 가지를 틀어 문이나 병풍처럼 만든 물건
∎갑술년(甲戌年) ; 1788년으로 보위에 오른지 12년이 되는 해
∎주액(肘掖) ; 주액(肘掖)은 옆구리를 낀다는 뜻이니 곧 액정서(掖庭署)를 가리킨다.
∎합금(合衾) ; 섹스
∎천침(薦枕) ; 잠자리 시중
∎여사(女史) ; 상감의 방사를 기록하는 섹스 기록관. 내명부의 벼슬아치


#추리, 명탐정,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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