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사서 SKT 유심 쓰고, 갤럭시S 사서 KT로 손쉽게 갈아탈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 '번호이동' 자유화 이후에도 통신사-단말기 패키지 선택을 암묵적으로 강요해온 '유심 이동 제한'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유심 락' 해제 의무화 2년 만에 '이동 제한 행위' 제동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 아래 방통위)는 10일 오후 휴대폰 가입자들의 자유로운 유심 이동을 막아온 SK텔레콤과 KT에게 각각 20억 원, 10억 원씩 과징금을 부과하고 시정 조치 명령을 내렸다.
정부는 지난 2008년 7월 유심(USIM : 범용 가입자 식별 모듈)만 바꾸면 자사뿐 아니라 타사 단말기에서도 자유롭게 통신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잠금장치(락) 해제를 의무화했다. 유심은 3G WCDMA 단말기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가입자 정보 칩으로, WCDMA 사업자가 아닌 통합LG텔레콤은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SKT와 KT는 단말기에 타인 유심을 쓰지 못하게 하는 '휴대폰 보호서비스'에 무단 가입시키는 한편, 최대 2개월 동안 유심 이동을 제한하는 등 자유로운 이동을 방해했다. 또 외국에선 활성화된 유심 단독 판매나 개통도 거부해 왔고, 외국에 나갔을 때 값싼 현지 통신사 선불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도록 단말기에 '해외 유심 락'을 걸었다.
이에 방통위는 "이는 유심 잠금장치 해제 의무화에 배치되고 이용자 이익을 저해하는 행위"라면서 "휴대폰 보호서비스 무단 가입 행위는 즉시 중지하고 유심 단독 개통과 해외 유심 락 해제는 3개월 내에 개선토록 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미 양사가 6월부터 자진 시정한 유심이동제한 기간 설정 행위는 시정명령 대상에서 빠졌다.
'해외 유심 락' 풀면 현지 통신 요금 1/5로 줄어이창희 방통위 시장조사과장은 "2년간 협의 과정에서 행정 지도로 이미 권고했음에도 사업자들이 이를 지키지 않아 직접 조사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방통위에서 올해 초 '휴대폰 보호서비스' 가입자를 표본 조사한 결과 SK텔레콤의 경우 77%인 624만 명, KT는 55%인 28만 명이 무단 가입된 것으로 추정했다. 휴대폰 보호서비스 가입시 유심 이동이 제한된다는 문제점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방통위는 "사업자가 국제로밍서비스 수익 유지를 위해 단말기 제조사에 '해외 유심 락' 설정을 요구해 이용자 이익을 저해했다"고 판단했다. 국내 단말기로 미국 내 통화시 SK텔레콤과 KT의 국제로밍요금은 각각 분당 1100원, 940원인 반면, 현지 선불 유심을 구입하면 188원으로 1/5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SKT-KT, 과징금 앞두고 '유심 이동 자유화' 뒷북지난 2월 방통위에서 '유심 이동 활성화 방안'을 발표한 뒤에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SKT와 KT는 최근 방통위 과징금 부과를 앞두고 갑자기 속도를 냈다.(관련기사:
아이폰-갤럭시A '유심' 바꿔 바로 쓴다 )
이날 방통위 회의에 참석한 김기천 SK텔레콤 상무는 "유심 이동 익월 말 유예는 지난 6월 4일부터 개선했고, 해외 사용은 7월 1일 출시 단말기부터 가능하다"며 "유심 단독 개통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김윤수 KT 상무 역시 "유심 이동 익월 말 제한은 6월 1일부터 풀었고 타사 이동은 7월 말부터 풀도록 준비하고 있다"면서 "유심 단독 개통은 올해 11월부터, 해외 유심 락 해제는 8월 말 이후 가능하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도 사업자들은 그동안 유심 이동 제한은 타인 무단 사용을 막고 보조금 떼먹기나 '폰테크', 단말기 해외 밀수출 등을 막으려면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 방지 효과보다는 대다수 일반 사용자들의 편의만 해쳤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단말기 따로 서비스 따로... 휴대폰 유통시장 변화 불가피
이창희 과장은 "유럽의 경우 락을 설정한 단말기와 설정하지 않은 단말기를 선택할 수 있고, 단말기를 통신 사업자가 아닌 유통점을 통해 구입할 수 있어 사업자에겐 유심만 사는 사례가 활성화돼 있다"고 밝혔다. 구글이 올해 초 스마트폰 '넥서스원'을 출시하면서 기존 통신사업자를 거치지 않고 유통점을 통해 직접 판매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이통사들이 자유로운 유심 이동에 거부감을 가져온 것은 지나친 보조금 경쟁으로 휴대폰 유통 시장이 왜곡됐기 때문이다. 이통사들이 보조금 경쟁의 주체라는 점에서 결국 이번 과징금은 자신이 만든 무덤에 스스로 빠진 꼴이다.
이번 방통위 조치로 이용자들은 앞으로 통신사에 상관없이 단말기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됐다. 외국처럼 자기가 원하는 통신사와 단말기를 따로 따로 선택해 가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다만 최근 출시되는 신형 스마트폰들이 워낙 고가인 데다, 대부분 2년 약정에 각종 보조금으로 묶여 있어 당분간 보급형이나 중고 단말기 거래에 국한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