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배가 부르다."
'지방선거 승리'의 결과를 한 눈에 확인한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말이다. 배가 부를 법도 하다. 민주당은 서울시의원 106명 중 79명을 당선시켰다. 그 79명이 '민주당 8대 서울시의원 의정개원준비 워크숍'을 위해 11일 한 데 모였다. 워크숍에 참석해 의원들을 마주한 정 대표의 뿌듯함이 포만감으로 표현된 것이다.
선배가 후배에게 김낙순 "당론과 개인 소인이 다르면..."
강연자로 나선 김낙순 전 의원은 시의원과 국회의원을 지낸 경험을 한껏 살려 시의원 당선자들에게 각종 팁과 당부를 전했다.
김 전 의원은 "끝없이 공부해야 한다"며 "정치를 하면서 시사에 뒤떨어지는 발언을 하면 정말 무식하게 보인다"고 '학습'을 강조했다. 그는 "신문 헤드라인이라도 읽으라"며 "<조선일보>를 보고 상대가 우리를 어떻게 반박하는지를 파악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당론과 개인 소신이 다르면 당론을 따르고, 지역 사정과 개인 소신이 다르면 지역 사정을 따르라"며 "이렇게 하면 자신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적다"는 '팁 아닌 팁'을 전하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의 조언은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한 혹평으로 이어졌다. 그는 "오세훈은 전형적인 귀족 오렌지"라며 "누가 지적을 하면 노골적으로 비웃으며 나보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은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런 사람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던가. 오세훈 시장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두라는 것이다.
그는 "이명박, 오세훈 시장이 8년 동안 해 온 것이 뉴타운 정책, 재개발 정책"이라며 "이 때문에 서울의 서민과 빈민이 서울 인접 지역으로 쫓겨나 서울에서 민주당이 죽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빈민과 서민도 살 수 있는 서울을 만드는 것이 여러분의 역할"이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반대만 자꾸하면 발목만 잡는다고 비판"
민병두 서울시당 교육연수위원장은 "우리가 반대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우리가 이뤄낼 목표가 무엇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며 "무엇을 반대해야 한다고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개혁 진영이 주목하는 지점은 디자인 서울, 한강르네상스, 한강운하, 뉴타운에 관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콕 집어 무엇을 반대하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귀띔을 건넨 것이다. 이어 "자꾸 반대만 하면 발목만 잡는다고 비판 받는다"며 "무상급식과 같은 문제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민 위원장은 "오세훈, 이명박 시정 8년 동안 소수라서 일일이 파헤치지 못한 게 있는데, 이런 것들을 열심히 공부해서 어두운 부분이 어디인가, 어떻게 개선할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부'와 '조언'이 전달된 이 날 워크숍에서는 7월 추경안 대비, 한강운하 문제 등에 대한 강연이 계속 이어졌다. 저녁시간 이후 진행된 '당선자 의정 준비' 토론회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탄돌이'라는 말이 있다. 지난 2004년 4·15총선 때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반대열풍을 업고 얼결에 국회의원이 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차지했고, 이들 중 초선 의원이 108명이었다.
"당시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들은 개성도 강하고 자유분방해서 '108번뇌'라고 얘기했다."
11일 열린 민주당 서울시의원 당선자 워크숍 첫 번째 강사로 나선 민병두 서울시당 교육연수위원장의 말이다. 당시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들은 당내에서 그리 환영을 받지 못했다. 개성만 강한 게 아니라 의정 경험이 부족한 '함량 미달' 의원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다음 총선에서 이들 중 상당수는 낙선했다.
민병두 위원장은 "이번에도 초선 시의원이 70명"이라며 "대부분 구의회나 국회에서 경험을 했고, 의원 개개인이 독자적인 권한을 갖고 있지만, 얼마나 팀워크를 잘 다져서 필요할 때 한 목소리 낼 수 있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민 위원장은 '팀워크'와 함께 '겸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MB 심판'이 50%, '한나라당 독선 심판'이 30%인데, '민주당이 잘해서 찍었다'는 의견은 10%도 안 된다"며 "우리는 이를 경계하고, 당선자 워크숍이 '겸손함'을 다지는 워크숍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당선된 시의원들 중 상당수가 '검증된 인물'이라기 보다는 'MB 심판론'에 힘입어 당선된 인물들이 많다는 점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실제 한 시의원은 "이번에도 'MB 심판론'에 힘 입어 당선된 '탄돌이'들이 없지 않다"며 "이 분들이 실수하지 않도록 서로 협력하고, 도와주지 않으면 다시 국민들로부터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정태 시의원(영등포구 2선거구)도 "자칫 시의원들 사이에 팀워크가 깨지면 오합지졸을 면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선거가 끝나고 거리에서 유권자들을 만나보면 '민주당이 잘해서 찍었다'는 사람은 거의 없고, 모두 'MB가 미워서 (민주당을) 찍어줬다'고 한다"며 "어깨가 무겁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인지, 이날 워크숍에 참석한 시의원 당선자들의 분위기는 사뭇 진지했다. 서울시 시정 현안 보고 등이 끝날 때마다 "자료를 다시 보내달라"며 열띤 학구열을 보이기도 했다.
김형식 시의원(강서구 제2선거구)은 "이번 선거는 누구의 승리도 아니다. 후보나 민주당의 승리도 아니었다"며 "오직 '북풍'의 패배였고, 시민의 매질만 있었다"고 지적했다.
"민심을 따르지 않으면 죽는다는 엄중한 경고였고, 그 대상은 정치권 전체였다. 민심을 경외하지 않는 자를 기다리는 것은 오직 심판뿐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경외하는 마음으로 민심을 섬기겠다. 오세훈 시장이 재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이) 아직 민주당에게 시정을 맡길 준비가 안 됐다는 민심의 경고인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의원은 "지난 2004년 탄핵 이후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이 국회의 다수를 점했는데, 이번 지방선거 승리로 그때의 설렘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당시 '탄돌이'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