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 오늘은 속칭 '놀토'다. 그리고 음력 오월 초하루다. 선거 끝난 후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속이 후련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걱정도 거둘 수 없었다. 청와대를 차지한 분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초선 의원들이 나서는 모양새는 나쁘지 않은데 그 사람들이 얼마나 당차게 나갈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민주당은 여전히 비몽사몽인 듯싶다. 당의 정체성은 오리무중이요 비전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시원한 것은 인터넷밖에 없다. 인터넷 매체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실감하는 날들이다.
인터넷을 보면 이미 천안함 사고에 대한 정부 발표는 거의 사망 단계에 이른 것 같다. 북한의 소행이냐 아니냐를 떠나 감사원마저 "총체적 부실"이라는 결과를 발표했으니 이제 순서는 책임자 처벌로 갈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떻게 되리라는 점도 묵시적으로 공감하는 차원을 넘어 노골적으로 근거를 대가며 비관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네티즌들이 많으니 읽다보면 진실을 볼 수 있는 날이 멀지않았음을 느낀다.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들을 검색하는 시민들의 숫자를 좀 더 적극적으로 늘리도록 하는 것이 과제라는 생각을 한다. 우선 먼저 본 사람들이 이웃에게 전할 일이다.
요즘 텃밭 농사는 때에 맞추어 수확하고 그 자리에 심는 일 때문에 바쁘다. 그저께는 아내와 마늘과 양파를 캤다. 금년 일기가 나빴고 화학비료를 뿌리지 않겠다는 고집으로 복합 비료마저 생략했더니 알의 굵기가 시장에서 파는 마늘에 비할 수 없다. 양파 역시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구슬만한 것도 있어 실소하게 만들었다. 작물들을 너무 혹사시킨 것 아니냐는 미안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비록 알은 잘더라도 내가 길렀다는 자부심으로 보충하면 되고, 거기에 단단하고 야무진 까닭에 저장성이 좋은 점까지 더하면 결코 손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마늘과 양파는 하우스 안에 건조중이다. 어제(금요일)는 토요일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 완두콩을 거두어들였다. 밭에서 거두어들인다고 콩이 되는 것은 아니다. 콩깍지를 벗겨내야 비로소 밥에 놓아먹을 수 있는 콩이 되는데 그 일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텃밭 농사를 하면서 경험적으로 체득한 사실인데 농사란 결코 힘자랑해서도 안 되고, 욕심을 부려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쇠스랑이나 괭이로 밭을 엎을 때도 누군가 시킨 일을 '억지로 마지못해 일하는 사람처럼' 하늘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해야 한다. 비록 시간이 많이 들지만 몸에 무리가 되지 않아서 좋다.
또 텃밭 농사로 돈을 벌겠다고 바등거리는 일도 무망한 노릇임을 알아야 한다. 아마 돈으로 셈한다면 어디서 어떻게 생산한 것인지 따지지 않고 시장에서 사먹는 편이 가장 싸게 먹힐 것이다. 무릇 일과 놀이 거기에 건강을 위한 운동이라는 생각으로 또 꽃과 나무와 더불어 산다는 생각으로 느긋하게, 그러나 작물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한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텃밭 농사에도 몇 가지 금도를 정해놓고 실천하는 중이다. 너무 각박하게 하루 이틀을 따지는 일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시간과 타협하여 늦추지 않으려 한다. 작물에 따라 씨앗을 뿌리는 시기가 다른데 그 시기를 놓치면 게으른 농부라는 딱지를 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한 해 농사는 끝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풀과 타협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여름철 풀을 아주 없애겠다고 작정한다면 사람이 먼저 쓰러질 것이다. 때문에 풀과 공생한다는 생각으로 양보하려 한다.
철을 모르는 날씨는 더러 재앙이 되기도 하지만 인간의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기에 가능한 미리 대비하거나, 당한 후에는 쉬 포기하는 편이 건강을 지키는 방법일 것이다. 하늘을 원망하는 것은 사람의 몸만 축낼 수 있기 때문에 삼가 할 일이다.
노동력을 고려한 적당한 양의 면적, 지역의 기후와 토양에 맞는 작물의 선정, 시기를 놓치지 않은 부지런함, 여유로운 마음은 텃밭 농사의 기본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요즘 날마다 적절한 양이 익어가는 보리수와 오디를 보는 일도 재미있다. 일하는 틈틈이 잘 익은 오디와 보리수를 맛보는 즐거움도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없는 호사일 것이다. 자연의 순환에 맞추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키우는 나무를 보면서 삶의 의미를 다시 새기는 일도 의미 없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밖에는 비가 내린다. 바깥일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아쉽다. 풀매는 일 말고도 매실을 따고, 팥이며 녹두며 메주콩을 심어야할 밭을 만들어야 하고, 고구마도 심어야하는데 일이 밀리는 셈이다.
그러나 하늘이 말리는 것을 어쩌랴. 그렇다고 마냥 쉴 수는 없다. 이런 날은 찾아오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또 누구를 부를 수도 없다. 아내와 비오는 숙지원이 정경이나 보면서 비닐하우스에 쌓아둔 완두콩을 줄기에서 떼어내고 또 콩깍지 까는 일이나 해야 할까 싶다.
농사에 금도가 있다면 정치에는 반드시 해야 할 일과 절대로 해서 안 되는 일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 자신의 욕심을 위해 국민을 속이는 거짓말은 절대 해서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는 성서의 구절도 있다. 아마 장로라는 MB도 그 정도는 모르지 않을 것이다.
국민은 "밥통"이 아니다. 이쯤해서 국민에게 진실을 밝히고 잘못은 사죄해야하지 않을까?
시기를 놓치는 일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일이다. 어뢰에도 깨지지 않은 천안함의 형광등. 감사원의 발표, 궁색한 국방부 장관의 변명. 그런 소식을 뒤로 하고 아내와 솔바람소리, 뻐꾸기소리만 들리는 숙지원에나 가야겠다. 오후에라도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면서.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