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지방선거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한겨레>에 대한 절독을 선언했다.
유 전 장관은 12일 오후 자신의 트위터에 "<한겨레>, 어둠속 등불이던 그 신문이 이제는 더 이상 아닌 것 같다"며 "소비자로서 가슴 아픈 작별을 했다"라고 적었다. 그는 이어 "아침마다 눈뜨자마자 잉크냄새 풍기는 그 신문을 펴는 것이 일상의 기쁨 중 첫 번째였다"며 "그 기쁨을 상실하는 것이 무척 아프다"고 했다.
유 전 장관이 '아픔'을 감수하면서까지 <한겨레>와의 작별을 선언한 까닭은 무엇일까? 앞서 유 전 장관은 11일 새벽 자신의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놀라워라, <한겨레> … 민주당과 참여당더러 '놈현' 관 장사 그만하라고 한 소설가 서해성의 말을 천정배 의원 대담기사 제목으로 뽑았네요. 분노보다는 슬픔이 앞섭니다. 아무래도 구독을 끊어야 할까 봅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그것이 지나친 요구일까요? 벌써 23년째 구독중인 신문인데… 정말 슬프네요.""DJ 유훈통치와 '놈현' 관 장사를 넘어라" 표현 논란
그랬다. 유시민 전 장관은 <한겨레>가 지난 11일치 신문 33면 '한홍구-서해성의 직설'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을 그대로 쓴 것에 놀라워했고, 분노했고, 슬퍼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자야 하는데, 잠이 잘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잠을 청해야겠네요.ㅠㅠ"라고 소회를 피력했다.
유 전 장관이 문제를 삼은 '직설'은 역사학자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와 소설가 서해성씨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되며 말 그대로 직설적인 표현들을 서슴없이 쏟아낸다. '직설'의 이번 주제는 '민주당 찍어야 해?'였고, 천정배 민주당 의원이 초청됐다. 논란이 된 "'놈현' 관 장사" 발언은 천 의원을 상대로 민주당의 비민주성 등을 성토하던 서해성씨 입에서 나왔다.
"선거 기간 중 국참당 포함한 친노 인사들이 써 붙인 '노무현처럼 일하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보면서 쓴웃음이 나왔어요. 이명박이 가진 폭압성을 폭로하는 데는 '놈현'이 유효하겠지만, 이제 관 장사는 그만둬야 해요. 국참당 실패는 관 장사밖에 안 했기 때문이에요. 그걸 뛰어넘는 비전과 힘을 보여주지 못한 거예요."<한겨레>는 이 대담기사에 "DJ 유훈통치와 '놈현' 관 장사를 넘어라"는 제목을 달아 서씨의 발언을 크게 부각시켰다.
이 기사를 두고 누리꾼들도 설전을 벌였다. '표현이 과했다'는 비판 의견이 우세했다. '수정하지 않으면 구독을 끊겠다'는 압박도 줄을 이었다.
누리꾼 'ameba91'은 이 기사 댓글에 "너무나 기분 나쁘고 열 받아서 한겨레 오늘부로 끊는다, 놈현, 관 장사? 도대체 이 무슨 저질스런 표현이고 인격모독인가"라며 "가슴 아프게 돌아가신 노 (전) 대통령을 그렇게 모독하는 서해성과 한겨레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적었다.
'sunae0301'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1주기 때 봉하마을 와서 추모객들한테 '한겨레21' 나눠주면서 홍보하던 거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며 "관 장사는 한겨레 니들이 한 거겠지"라고 꼬집었다.
"신문을 끊어야할지 심각하게 고민 중입니다. 비판을 하는 방법에 이런 식으로 하지 않아도 표현할 방법이 참 많았을 거 같은데……. 특히 '0현' 이나 '관 장사' 등의 표현은 정말로 반감을 사기에 충분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choilee96)반면 'halbe470'은 "이런 정도의 비판도 못하는 사회인가"라며 "조중동을 미워 한다는 사람들이 조중동의 독선을 닮아가는 것 같아 보기가 안 좋다"고 지적했다.
노무현재단 "자극적 표현에 강한 불쾌감"... '직설' "사과드립니다"
결국 <한겨레>는 11일 오후 늦게 인터넷판 기사의 제목을 "DJ와 노무현의 유훈통치를 넘어서라"로 수정했다. 12일치 신문에는 노무현재단의 반론도 실렸다.
양정철 노무현재단 사무처장은 "<한겨레> '직설'의 부박한 표현을 보며"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돌아가신 분, 특히 서거한 전직 대통령을 향해 함부로 사용한 그런 표현이 아무런 여과 없이 제목으로까지 뽑힌 것에 대해선 대단히 유감스럽고,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특히 양 사무처장은 "기사가 나가고 많은 독자들이 항의를 한 데에는 문제의 표현뿐 아니라 '관 장사'라는 자극적 표현에 대해서도 강한 불쾌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5월23일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 서거, 그리고 5월29일의 운구행렬, 그리고 화장. 노 대통령의 '관'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그것인데 거기에 '장사'(비즈니스)라는 표현을 갖다 붙인 건 취지가 어찌 됐든 자극적입니다. 당사자가 유족의 입장에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쓴 표현인지 묻고 싶습니다. 예의가 아닙니다. 표현의 당사자든 편집자든 사려 깊지 못했음을 아프게 돌아보길 바랍니다."양 사무처장은 이어 "<한겨레>는 창간 이후 지금까지 황색 저널리즘을 철저히 경계해 온 걸로 안다"며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뛰어넘으라고 촉구하기 이전에, '망자에 대한 예의' '독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자극적 제목장사의 유혹을 뛰어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충고를 감히 드린다"고 말했다.
양 사무처장의 기고문 한켠에는 "'직설'이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함께 게재됐다. 이 글이 <한겨레> 차원의 사과문인지, 아니면 서해성씨나 대담기사를 정리한 기자의 사과인지는 분명치 않다. '직설의 사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6월11일치 33면 '한홍구-서해성의 직설'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을 그대로 실었다는 독자들의 지적이 있었습니다. 저희의 생각이 짧았고, 저희가 오만했습니다. <직설>은 "쥐를 잡기 위해 만든 난"(2화 출사표 참조)인데, 제대로 쥐잡기 전에 독부터 깨버린 것 같아 송구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부적절한 표현으로 상처를 드린 데 대해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