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고비와 함께한 80일>(지성사 펴냄)은 동고비 한 쌍이 주인공이다. 저자는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란 관찰일지로 학계를 놀라게 했던 김성호 교수. 그가 이번에는 8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이른 새벽부터 밤까지 온종일 관찰한 것을 책으로 묶었다.
'동고비는 참새 정도 크기의 우리나라 텃새로 동작이 매우 빠르다. 아래를 보고 나무줄기를 내려올 정도로 나무를 잘 탄다. 암수 구별이 힘들다. 딱따구리가 버리고 간 둥지에 둥지를 다시 지어 7개의 알을 낳는다.'
우리에게 동고비는 이정도로만 알려졌다.
덧붙이면, 이제까지 동고비를 연구·관찰한 사례는 없다. 외국에는 한 종의 새나 동물만을 본격적으로 관찰 연구하거나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와 같은 책을 내는 학자들도 더러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니 이 책 속 내용 대부분은 단순한 흥미를 넘어 이제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은 동고비의 생태에 관한 귀중한 자료인 것이다.
"특별히 할 일이 없으니 경계를 서는 동고비가 슬슬 꾀를 내기 시작합니다. 진흙을 나르는 길에 동행을 해주는 일을 자주 빼먹는가 하면 둥지를 짓는 동고비가 진흙 작업을 할 때에도 딴 짓을 할 때가 많습니다. 등을 보이며 둥지를 다듬거나 아예 둥지 안으로 들어가 내부 공사를 하는 친구의 경계를 서려면 둥지 쪽을 주시하며 둥지에 접근하는 다른 새들을 막아내야 하는 것이 마땅하고, 만약 둥지에 접근하는 새들이 없을 때는 둥지 주변은 현재 안전하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둥지 짓기에 전념하라고 소리로 신호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둥지는 보지도 않고 한눈을 팔거나 은단풍 꽃을 따먹기 바빠 둥지 쪽으로는 등을 지고 있으면서도 건성으로 소리만 낼 때도 많고, 심지어 자리를 비우고 어디론가 날아가 오랜 시간 지나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 동고비를 만난 지 59일째(4월 28일) 관찰일지 중에서암컷과 수컷이 힘을 모아 둥지를 짓는 여타의 새들과 달리 암컷으로 보이는 동고비는 죽어라 집만 짓고, 수컷은 한량처럼 노닐며 누가 오는지 경계만 설뿐이다. 암컷 동고비가 얼마나 많은 흙을 물어다 집을 짓는지, 알을 낳을 때쯤이면 부리 끝이 뭉툭해질 정도다. 그런데도 혼자 묵묵히 해내는 이유는 '경계'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리라.
꽃놀이 간 수컷이 암컷에게 바가지 긁힌 이유
그런데 날마다 크게 하릴없이 심심했던 모양인지 철없는 수컷은 어느 날 딴짓을 하는 것도 모자라 이처럼 아예 멀리로 꽃놀이를 나가 한참만에야 돌아온다. 이때를 놓칠세라. 둥지를 탐낸 곤줄박이 한 쌍이 나타나 둥지를 차지하려고 한다. 게다가 전혀 엉뚱한 동고비가 진흙을 물고 제집인 줄 알고 나타나는 일까지 벌어지고 만다. 암컷은 이들과 싸우며 상처를 입고 만다. 이 모두 수컷이 제 할일을 내팽개치고 꽃놀이를 갔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한참 지나 꽃놀이를 마친 수컷이 천연덕스럽게 나타난다. 암컷이 단단히 화가 났나 보다. 둥지 앞에서 수컷을 향해 날개를 쫙 펴고 몸을 좌우로 흔드는 특별한 행동을 한다. 암컷의 잔소리가 먹힌 것일까? 이후 수컷의 행동은 이전과 많이 달라진다. 다시 나타난 곤줄박이 부부를 단박에 몰아내는가 하면, 암컷에게 먹이를 물어다주는 등 이제까지 안하던 살가운 짓까지 한다. 아마도 반성을 하고 아양을 부리는 걸까?
이 부분까지 읽다가 동고비 부부의 일상이 우리네 부부와 닮았음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 이처럼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 웃고 탄복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동시에 저자의 열정에 고마워하며 이런 책이 계속 시리즈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까지 갖고야 말았다. 참으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관찰일지다.
알 낳아 품던 동고비 암컷, 수컷에게 어리광 부리다둥지를 짓는 과정에 재미있는 일이 또 벌어진다. 동고비 부부가 나타나 둥지를 짓기 시작하자 주변의 또 다른 새들이 오며가며 둥지 안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 풍경이 마치 우리들의 이웃들과 닮았다. 이웃 누군가 집을 고치거나 새로운 누군가 이사를 오면 어떻게 고치는가? 어떤 사람들이 이사를 오는가? 궁금해 고개를 쑥 디밀고 둘러보는 것처럼.
하루 수십 번에서 수백 번, 한 달 가까이 진흙 등을 물어다 날라 입구가 야구공 만한 딱따구리 둥지에 100원짜리 동전 크기의 입구를 가진 동고비 둥지가 완성된다. 둥지가 완성되자마자 알을 낳아 품는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둥지를 지으며 그토록 악착스럽던 암컷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수컷에게 어리광을 피우고 먹이를 보채는 등 어린 새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암컷이 잠시 둥지를 비운 사이 수컷이 날아와 둥지 밖에서 잠시 기다리지만 느낌이 조금 다릅니다. 잠시 머뭇거리다 둥지 입구의 좁은 통로로 고개를 쑥 집어넣어 어린 새들을 슬쩍 들여다봅니다. 이렇게 좁은 통로를 통해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자신의 어린 새들과 첫 대면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고 또다시 밖에서 기다립니다. 하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합니다. 둥지 안의 어린 새들이 더욱 궁금해져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둥지에 들어가는 것이 처음이라 서툰 몸짓으로 몇 번 시도하더니 결국은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자신의 어린 새들과 둥지 안에서 첫 상봉이 이루어지지만 오래 있지 않고 나옵니다. 반가움보다 먹이를 구하는 것이 더 급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 동고비를 만난 지 59일째(4월 28일) 관찰일지 중에서암컷이 둥지를 짓는 동안 꽃놀이까지 나갈 만큼 한가했던 수컷은 암컷이 알을 낳고 알을 품는 동안 암컷과 둥지를 여왕처럼 살피고 보호하며 눈에 띄게 수척해지고 초라해진다. 이런 수컷이 안타까운 걸까? 부화가 일어난 첫날, 둥지에서 먹이를 주로 받아먹던 암컷이 먹이활동을 나간다. 그러자 수컷은 새끼를 보고 싶은 마음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처럼 조심스럽게 자신의 새끼들과 첫 만남을 하게 된다.
"암컷은 역시 암컷입니다.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 비밀 창고를 하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입구로 나와 날아갈 듯 머뭇거리다 고개를 죽 내밀어 바깥 진흙 벽 꼭대기에서 씨앗으로 보이는 것을 빼내 먹더니 바로 둥지 안으로 들어갑니다. 처음에는 그 모습에 한참을 웃었는데 어린 새를 돌보가 위해 그 작은 씨앗 하나로 시장기를 달래고 또 다시 둥지로 들어가야 했다는 것을 생각하자 한참을 멍하니 서 있어야 했습니다." - 동고비를 만난 지 62일째(5월 2일)의 관찰일지 중에서수컷의 묵묵한 부성애와 암컷의 악착같은 모성애를 느낄 수 있는 이 두 부분을 읽으며 부모님 생각이 나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책을 통해 만나는 동고비 부부의 자식들을 돌보는 과정은 눈물겹도록 감동스럽다(다른 새들도 그렇겠지만).
부화한 지 16일만에 배변 가리는 어린 새들부화한 새끼들이 커갈수록 먹이를 나르는 횟수는 점점 늘어나 동고비 부부는 단 한순간도 쉬지 못하고 하루 수백 번씩 먹이를 나른다. 그래도 새끼들은 끊임없이 보챈다. 그리하여 동고비 부부는 이제는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더욱 바빠진다. 그리하여 날로 더욱 초췌해지고 입을 벌리고 거친 숨을 쉬는 모습이 점차 늘어난다.
깊은 시름과 힘든 일로 지쳐있을 때 자식이 보여주는 대견스러움과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은 고통을 사라지게 하는 명약이다. 부화한 뒤 처음 얼마간은 엄마 동고비가 둥지 속에 들어가 일일이 배설물을 물어내어다 버려야만 한다. 하지만 부화한지 16일째, 어린 새들은 둥지 바깥쪽에 엉덩이를 두고 배설을 함으로써 어미의 일손을 덜어준다. 동고비 엄마도 "이런 맛에 자식을 키운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동고비와 함께한 80일>은 이처럼 이른 봄 동고비 한 쌍이 딱따구리가 번식을 끝내고 버리고 간 둥지로 날아와 그 속에 자신들의 둥지를 짓고 사랑을 하고, 알을 낳아 품어 자식들을 세상에 내놓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생물계의 신기한 이치와 동고비의 감동을 서평 한 편으로 전한다는 것이 그저 아쉽다고 할까.
저자의 날카롭고 자세한 관찰, 그리고 재미있고 살가운 표현들은 이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여기에 300장이 넘는 관련 사진까지 더해졌으니 오죽 생생하고 재밌으랴. 게다가 동고비 주변의 다른 새들까지 관찰하여 해박한 지식과 함께 시시콜콜하게 들려준다. 저자를 통해 만나는 딱따구리와 오목눈이, 곤줄박이, 검은머리방울새 등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지극정성으로 돌보던 자식들만 놔두고 떠난 부부 동고비이 책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감동스럽다. 저자가 동고비를 만나 지 79일째 되던 날 밤, 부부는 그토록 지극정성으로 돌보던 어린 새들만 둥지에 두고 떠난다. 둥지에서 춥고 어두운 밤을 홀로 맞으며 견뎌낼 수 있어야 둥지를 박차고 떠날 용기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아늑한 둥지를 벗어나 척박한 삶을 개척할 때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
그리고 이튿날인 80일째, 부부는 지난날과 변함없이 이른 새벽부터 어린 새끼들에게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다 먹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부부는 어린 새들이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채도 본체만체 더 이상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 심지어는 새끼들이 성난 복어처럼 볼을 볼록하게 하고 깃털을 세워 시장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도 본체만체 배설물만 받아낼 뿐.
이렇게 동고비 부부는 새끼들을 독립시키기 시작한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나 몇 번이고 주춤거리다가 날아보겠다고 용기를 냈던 어린 새가 목표지점인 건너편 나뭇가지까지 날지 못하자 어미가 재빠르게 나타나 날개를 살짝 펴고 흔들어 준 다음 먹이를 건넨 후 날아간다. "힘내거라. 너는 할 수 있어. 꼭 해낼 거라 믿는다." 마치 이렇게 격려하는 듯 말이다.
새끼들을 키우며 초라해지고 수척해져 볼품없는 동고비 부부는 그렇게 한 마리 한 마리 격려하며 8남매를 무사히 험한 세상으로 날려 보낸다. 책 속 동고비들이 모두 힘차게 날갯짓을 한 5월 중순쯤 묵묵하게 밀려오는 감동으로 책을 덮었다. 이후 한 달 동안 책의 부분 부분을 다시 펼쳐 읽으며 저자의 열정과 동고비의 자식사랑에 감동하고 있다. 손에서 쉽게 놓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새나 동물을 관찰한 이런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덧붙이는 글 | 동고비와 함께한 80일-김성호 교수의 자연 관찰일기|지성사|2010년 05월 03일 출간|2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