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하면 딱 두 글자, 폐인(廢人)이 떠오른다."
"보수는 억압, 분열, 오만, 닫힘성과 탐욕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건전한 모든 시민운동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현 정부에게는 남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드는 '꼰대' 기질이 있다."진보 진영에서 터져 나온 말이 아니다. 놀라지 마시라. 보수 진영이 스스로를 성찰하며 한 말이다. 역시 6.2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패배는 보수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게 분명하다. 보수 진영 일각에서 "진보 좌익에게 배워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보수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는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6.2지방선거와 보수의 재성찰'이라는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바른사회시민회 공동대표)는 보수는 왜 지방선거에서 패했고, 다시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발표했다.
'폐인' '꼰대' '탐욕'... 보수가 진단한 이명박 정부이날 박 교수는 그동안 진보 진영과 야당이 이명박 정부를 비판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며 현 정부의 국정 운영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이명박 정부는) 자신과 다를 수밖에 없는 진보좌파를 '박멸해야 할 적'이 아닌 국민의 신임을 받기 위해 같이 경쟁하는 선의의 '경쟁자'로 생각하고 그 존재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또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경찰·검찰조사 남발로 언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공안정국을 조성하지 않았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이어 박 교수는 "현 정부는 금년 5.18 민주화운동기념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뺐고, 80년대를 권위주의 시대를 연상케 하는 경찰의 행인 가방을 뒤질 권한을 위한 법제화를 추진했다"며 "한국의 보수우파가 '억압자'로 투영될만한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았는지 냉정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박 교수는 "보수우파는 모름지기 좌파진보에 대해 '핍박자'의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야 한다"며 "만인지상의 존재처럼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무엇인가 가르치려는 생각을 버리고 야당이나 진보좌파에게 무엇을 듣고 배우겠다는 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특이 박 교수는 이명박 정부를 향해 '탐욕'을 버릴 것을 주문했다.
"(정권을 잡았다고) 보수가 모든 것을 다 차지하겠다는 생각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 큰 권력은 물론, 작은 권력, 인사권, 돈, 자리, 정책 등 모든 것을 다 차지하겠다는 것은 탐욕에 불과하다. 보수우파는 모든 것을 독점하지 말고 진보좌파에게 줄 것은 주고 나눌 것은 나눠야 한다."박 교수는 보수 진영의 교육감 선거 패배에 대해서도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자만심에 함몰돼 온갖 비열한 전략을 사용하며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분열극을 벌여 보수의 품위조차 추락시켰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박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는 서울대를 졸업하지 않거나, 돈이 많지 않은 사람도 장관 등을 했는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그런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가난하고 서울대를 졸업하지 않은 사람도 높은 자리에 기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유권자들, 천안함 이슈에 조정당하고 있다는 것을 거부"박 교수는 "보수우파는 새로 태어나지 않고 구태의 모습을 지속한다면 과거의 진보좌파처럼 '폐족'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보수우파는 관용적이고 자기절제력을 가진 새로운 보수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보수의 혁신을 당부했다.
이런 박 교수의 진단과 이명박 정부 평가는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박인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성재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원장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성재호 교수는 "박 교수의 발표를 정말 감동 깊게 들었다"고 극찬했다. 성 교수는 "이명박 정부 하면 딱 두 글자 '폐인' 즉,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망가진 사람이 떠오른다"며 "실용을 극단적 가치로 내세운 나머지 집착의 정도가 극에 이른 것은 아닌지 냉정히 자아비판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성 교수는 "보수의 '탐욕'은 매우 중요한 지적으로, 가진 자의 오만으로 비춰지는 현 세태를 냉정히 바라봐야 한다"며 "진보는 매우 'clever'하게 그들이 가진 신념을 행동으로 표현하고 펼쳐내는데, 이를 능가하기 위해 보수는 'smart'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원 교수는 정부의 '북풍' 이용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천안함 침몰 사건을 지나치게 선거에 이용하고 있다는 인식을 줬다"며 "유권자들은 천안함 이슈 하나에 본인이 조정당하고 있다는 것을 거부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 교수는 "'역사의 심판을 받겠다', '선거 결과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 같은 회피적 자세로 국면 전환을 꾀하는 것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안된다"며 "'역사와 대화하기 전에 먼저 국민과 대화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smart'한 보수, 가능할까?또 이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책을 바꿔야 하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 전반에 할말도 제대로 못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은 우려할 내용이다. 최근 유엔 특별보고관이 방한해 '한국 사회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됐다'고 하는 것이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를 뒤덮고 있는 경직되고 음울한 분위기에 숨통을 트는 방향으로 국정 기조를 선회해야 한다."이 교수는 이를 위한 조치 중의 하나로 "종북 또는 친북 성향의 단체를 제외한 건전한 모든 시민운동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폐인' '탐욕' '꼰대' 등 달갑지 않은 표현으로 보수에게 비판 받은 이명박 정부는 과연 "부드러움과 열림, '쿨함'을 근거로 살아있는 보수로 변신"할 수 있을까?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