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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향에서는 일반적으로 씨앗을 "심는다"고 하지 않고 "넣는다"고 했으며, 고구마는 "놓는다"는 표현을 썼다. 어쩌면 "넣다"와 "놓다"는 별개의 말이 아닐 수 있다. "심다"와  "넣다" 혹은 "놓다"의 의미는 별 차이 없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심는다"는 말에 비해 "넣다" 혹은 "놓다"라는 표현이 땅에 대한 농부의 외경심을 드러내는 한 표현인 것 같아 정겹다는 생각을 한다.

 

씨고구마 넣기      지난 3월 초순 찍은 사진. 이미 기사에 올린 적이 있는데 재활용하였다.
씨고구마 넣기 지난 3월 초순 찍은 사진. 이미 기사에 올린 적이 있는데 재활용하였다. ⓒ 홍광석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는 고구마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구황작물이었다. 배고팠던 어린 날의 기억 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고구마. 가장 낮은 자들의 밥이 되어 허기진 배를 채웠던 것이 이제는 이름도 어려운 웰빙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니!

 

해변 산중이었던 내 고향에서는 고구마를 많이 심었다. 겨울이면 헛간방 귀퉁이에 옥수수나 시누대로 발처럼 엮어 원통을 만들고(고향에서는 그걸 '두대'라고 했음) 거기에 천장을 닿을 만큼 고구마를 저장했다. 마른 고구마에 묻은 마른 흙이 떨어져 나오는 엉성한 시설이었지만 그 안에 가득한 고구마를 보면서 흐뭇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고향에서는 감자를 "북감자"라고 했고, 고구마를 "감자"라고 했는데 고향의 고구마는 "물감자"였다. 찌면 노란 속살이 말랑말랑해서 붙여진 이름이었을 것이다. 당도가 높은 "물감자"는 겨울철 간식이었을 뿐 아니라 가난한 집의 끼니가 되기도 했다.

 

사랑방 뒤안의 아궁이에 걸어놓은 검은 무쇠 솥 가운데 양은 밥그릇을 엎고, 씻은 고구마를 가득 채운 후 물을 붓고 불을 때면 끝이었다. 삶아진 뜨거운 고구마를 호호 불며 김치에 감아 먹기도 했지만 주로 대바구니에 담아 식힌 후에 먹었다고 기억한다. 워낙 수분이 많은 고구마였기 때문에 따로 물이 소용없었다.

 

꼭지를 베어내고 쭉 빨면 껍질만 남았던 고구마

 

그러나 그런 고구마 때문에 외지인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했다.

 

"○○물감자!"

 

어린 시절 나는 그 말을 들으면 코를 씩씩 불었다. 무시하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바다에 둘러싸인 반도에 너른 들이 있어 농산물과 해산물이 풍부했던 덕에 다른 지역 사람들에 비해 야박하지도 악착스럽지도 못한 고향 사람들의 심성을 대변하는 역설적인 애칭이 아니었던가 싶다.

 

"○○물감자!"

 

이제 그렇게 놀리는 사람은 없다. 그 고구마의 종자까지 사라졌다는 말도 들렸다. 그리고 나 역시 한동안 멀리했던 고구마였다.

 

고구마 순 옮기기     나는 순을 꺾고 아내는 심었다. 왕복 60m 되는 이랑에 촘촘히 심었는데 400주 정도 될 것 같다. 막 심은 탓에 순이 시들하다. 그래도 고구마는 생명력이 강해 금세 뿌리를 내린다.
고구마 순 옮기기 나는 순을 꺾고 아내는 심었다. 왕복 60m 되는 이랑에 촘촘히 심었는데 400주 정도 될 것 같다. 막 심은 탓에 순이 시들하다. 그래도 고구마는 생명력이 강해 금세 뿌리를 내린다. ⓒ 홍광석

지난 토요일(12일) 아내와 텃밭에 고구마를 놓았다. 3월 초 비닐하우스 안에 거름을 많이 뿌린 후 두둑을 치고 아껴둔 호박 고구마 씨앗을 넣었던 순을 끊어 멀칭해 놓은 텃밭으로 옮긴 것이다. 갑작스런 추위 탓에 고구마 새순이 어는 사고가 발생하였지만 다행이 새로 순이 나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세 마디씩 끊고 아내는 멀칭해둔 밭에 심었는데 30m 쯤 되는 두 둑을 채우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자세히 세지는 않았지만 모종은 대략 400주 정도 되는 것 같다.

 

고구마는 생명력이 강한 작물로 박토에서도 잘 자란다. 초장에 한 번만 풀을 매주면 나중에는 잎이 무성하여 작은 풀의 성장을 막기에 김매는 품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된다.  또 굼벵이 외에는 병도 없어 농약을 칠 필요도 없다. 완전한 무공해 식품이면서 게으른 농부에게 딱 맞는 작물이다. 

어느 정도 자란 고구마 순은 꺾어 껍질을 벗겨 데치면 국거리도 되도 시원한 초무침도 되어 여름철 입맛을 돋우기도 한다. 양력 10월 말쯤 수확을 하는데 줄기와 잎은 가축의 사료가 된다.

 

나는 옛날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속이 노란 호박고구마를 심는데 호박고구마는 직근성 작물이어서 땅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바람에 캐기 힘들다는 점이 문제다. 그렇다고 쇠스랑으로 찍거나 호미로 잡아당기면 쉬 부러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그렇듯 심는 것도 쉽지 않고 캐는 일도 고되지만 한겨울 우리 가족의 유용한 간식이라는 점에서 포기할 수 없는 작물이다. 더구나 이제 고구마는 웰빙 건강식품으로 대접 받는 작물이다. 비교적 가격도 만만치 않다. 이웃에게 나누어면 고맙다는 말을 두 배로 받을 수 있으니 그 또한 괜찮은 일이다.

 

세상 밖으로 나오는 고구마        재작년에 가을에 찍은 사진이다. 금년 가을에도 이런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재활용한 사진임)
세상 밖으로 나오는 고구마 재작년에 가을에 찍은 사진이다. 금년 가을에도 이런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재활용한 사진임) ⓒ 홍광석

작년에는 100kg 쯤(상품성이 떨어지는 것 포함하여 10kg 열 상자 정도) 수확하였는데 금년에는 좀 더 많이 심을 작정이다. 그래서 작년에 비해 수확량도 조금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캘 때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과제라고 본다.

 

고구마를 저장할 공간이 없다는 점은 현대 주택 특히 아파트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추워도 곤란하고 너무 뜨거워도 안 되는 고구마는 저장법이 조금 까다로운 편이다. 고구마는 장소를 옮기면 쉽게 상한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고구마가 온도에 민감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저온창고를 가질 수 없는 가정집에서는 20kg들이 플라스틱 상자에 고구마를 담아 주방의 구석에 3단으로 쌓아두고 조금씩 먹으면 4인 가족이 겨울 한철은 넘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요즘 색상이 다양한 품종의 고구마가 개발되고 있다. 또 최상의 건강식품중의 하나라는 소개도 보았다. 아마 앞으로 더 맛있는 고구마를 더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배고픈 서민의 끼니를 대신해주는 구황작물이라고 했던 고구마. 하지만 이제는 가진 사람들에게 웰빙 식품으로 대접받는 고구마. 이제 "○○물감자!"라고 놀린다고 해도 "가난한 이들의 밥이 되었고 이제는 우수식품으로 대접받는 고구마처럼 너희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본적이 있느냐?"면서 웃고 말 것 같다.

 

고구마를 먹자!

그리고 빈 땅에 고구마를 심자.

나와 우리 이웃을 위해!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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