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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마을(전북 남원시 운봉읍 행정리) 서어나무 숲에서. 심심하면 그네도 타면서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오후 한나절 늘어지게 자고 싶은 곳이었다.
행정마을(전북 남원시 운봉읍 행정리) 서어나무 숲에서. 심심하면 그네도 타면서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오후 한나절 늘어지게 자고 싶은 곳이었다. ⓒ 김연옥

옛길, 고갯길, 논둑길, 숲길 따라 마을과 마을이 이어지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마음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지리산 둘레길. 높은 산꼭대기를 향해 힘겹게 오르지 않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서도 생명의 숨결을 느끼며 느리게 걷는 그 길에는 아기자기한 삶의 이야기가 있고 느림이 주는 행복이 있다.

지난 6일, 나는 꼭 한 번 걷고 싶었던 지리산 둘레길을 경남사계절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가게 되었다. 아침 7시에 마산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외평마을 주천치안센터(전북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에 도착한 시간이 9시 50분께. 모두들 소풍 나온 기분으로 한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남원시 운봉읍 서천리까지 이어지는 지리산 둘레길 1구간 길을 나섰다.

이 일대 대부분 논들은 모내기가 끝난 듯한데, 마침 이날에 모심는 논이 더러 있었다. 요즘은 기계로 모심기를 하지만, 옛날에는 여럿이 한 줄로 늘어서서 못자리에서 기른 모를 부지런히 논에 옮겨 심었을 것이다. 힘든 노동을 잊기 위해 흥을 돋우는 농요도 같이 부르면서 말이다. 

 지리산 둘레길의 모심기 풍경.
지리산 둘레길의 모심기 풍경. ⓒ 김연옥

20분 남짓 걸어가자 숲길로 들어서면서 개미정지가 나왔다. 개미정지는 내송마을에 있는 서어나무 숲으로 쉬어 가기에 좋은 곳이다. 걷다가 힘들면 얼마든지 쉬어도 되고, 그것도 시간에 쫓기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쉴 수 있다는 것이 둘레길의 매력인 것 같다.

지리산 자락을 한 바퀴 도는 지리산 둘레길은 전라북도,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에 있는 남원시와 구례, 하동, 산청, 함양군의 80여 개 마을을 잇게 되는데 총 길이가 300여km에 달한다고 한다. 현재 걸을 수 있는 길은 전북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에서 경남 산청군 금서면 수철리까지 이어지는 71km 거리로 다섯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2007년 1월에 설립된 사단법인 '숲길'에서 옛길의 흔적을 찾아서 잇기도 하고, 필요하다면 돌을 쌓고 나무다리도 놓아 가면서 지리산 곳곳을 '하나의 길'로 연결하는 작업을 해 오고 있다. 자원 조사와 정비를 통해 둘레길 전체 구간은 2011년에 완성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걷게 된 '주천과 운봉' 구간의 길이는 14.3km로 지리산 서북 능선을 조망할 수 있는 길이다.

 주천면의 마을 주민들이 남원 장으로 가기 위해 지나다녔던 구룡치서 표지목을 바로 세우고 있는 일행의 모습이 아름답다.
주천면의 마을 주민들이 남원 장으로 가기 위해 지나다녔던 구룡치서 표지목을 바로 세우고 있는 일행의 모습이 아름답다. ⓒ 김연옥

 사무락다무락에서.
사무락다무락에서. ⓒ 김연옥

흰민들레 꽃, 자색 감자꽃이 잠시 우리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군데군데 피어 있는 보라색 붓꽃의 고운 자태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했다. 오전 11시 10분께 주천면의 마을 주민들이 남원 장으로 가기 위해 지나다녔던 구룡치에 도착했다. 표지목이 뽑혀 있었는지 한 일행이 흙을 더 깊이 파서 바로 세우고 있었다. 내 일이 아니라서, 또 귀찮아서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을 애쓰고 있는 그 분이 멋져 보였다.

20분 정도 더 걸어가자 이제는 팥빙수 파티가 벌어졌다. 산길에서 맛보는 즉석 팥빙수의 비법은 간단하다. 냉동실에서 1주일 동안 얼린 우유를 으깨어 팥빙수용 팥과 그저 섞으면 되는데, 그 달콤하고 시원한 맛이 환상적이었다. 한 사람의 아이디어와 정성으로 여러 사람들의 입이 참으로 즐거웠다. 여름에는 시원한 막걸리도 빠질 수 없다. 걷는 게 힘들어질 때 여럿이 가벼운 이야기도 주고받으며 막걸리를 한두 잔 쭉 들이켜면 기분도 좋아진다.

이름이 재미있는 사무락다무락에 이르자 나지막한 돌탑들이 보였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돌을 하나씩 얹으면서 가족의 무사함을 빌었던 옛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 절로 느껴졌다. 거기서 10분쯤 더 가면 징검다리를 건너게 된다. 개울에 드문드문 놓인 징검다리는 언제 보아도 정겹기만 하다.

 회덕마을에 있는 덕치리 초가(전라북도 민속자료 제35호). 지리산 봉우리와 어우러져 정말이지,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회덕마을에 있는 덕치리 초가(전라북도 민속자료 제35호). 지리산 봉우리와 어우러져 정말이지,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 김연옥

  
  ⓒ 김연옥

운봉에서 오는 길과 달궁 쪽에서 오는 길이 모인다 해서 모데기라 불렸다는 회덕마을에는 조선시대 민가의 형식을 엿볼 수 있는 초가집이 있다. 2000년 6월에 문화재로 지정된 덕치리 초가(전라북도 민속자료 제35호, 전북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로 지리산 봉우리와 어우러져 정말이지,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길을 걸어가다 비닐하우스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몇 분이 정성껏 키운 상추를 따고 있었다. 분주히 일하는 그들 모습에 왠지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사진을 예쁘게 찍어 달라는 아저씨 말을 듣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요즘같이 더운 날에 먹으면 좋은 반찬이 상추쌈이다. 아삭아삭 씹히는 맛도 있고 이것저것 반찬을 만들 필요도 없다.

 수령이 500년은 되어 보이는 우람한 노치마을 소나무들 아래에서 맛있는 점심을 했다.
수령이 500년은 되어 보이는 우람한 노치마을 소나무들 아래에서 맛있는 점심을 했다. ⓒ 김연옥

 해발 550m의 고랭지인 노치마을(전북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은 백두대간이 통과하는 곳이다.
해발 550m의 고랭지인 노치마을(전북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은 백두대간이 통과하는 곳이다. ⓒ 김연옥

노치샘에 도착한 시간이 낮 12시 20분께. 모두들 한 바가지 물을 퍼서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우리는 노치마을 뒷산으로 가서 소나무 아래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이곳에 수령이 500년은 되어 보이는 소나무 몇 그루가 모여 있는데 참으로 우람하고 멋스러웠다. 해발 550m의 고랭지인 노치마을(전북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은 백두대간이 통과하는 곳이다. 지리산의 관문인 고리봉과 만복대를 바라보고 있는데 예전에는 갈재라고 불렸다.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덕산저수지, 가장마을, 덕산마을을 지나 계속 걸어갔다. 여름 햇살이 따갑게 쏟아져 내리는 길은 우리를 지치게 했지만 코를 벌름이며 향긋한 아카시아꽃 향기에 취하고, 넓은 감자밭이 주는 풍요로움에 젖기도 했다.  

 덕산저수지를 지나면서.
덕산저수지를 지나면서. ⓒ 김연옥

 2000년에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 산림청과 유한킴벌리가 주최한 제1회 아름다운 마을 숲 부문 대상을 수상한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
2000년에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 산림청과 유한킴벌리가 주최한 제1회 아름다운 마을 숲 부문 대상을 수상한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 ⓒ 김연옥

오후 2시 30분께 행정마을(전북 남원시 운봉읍 행정리)에 이르렀다.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은 참으로 아름답다. 자연의 품속에서 완전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곳, 심심하면 그네도 타면서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오후 한나절 늘어지게 자고 싶은 곳이었다. 2000년 11월에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 산림청과 유한킴벌리가 주최한 제1회 아름다운 마을 숲 부문 대상을 수상한 숲이다.

지리산을 바라보며 걷는 길 따라 삶과 노동을 만나는 지리산 둘레길은 어쩌면 진정한 자기를 만나 위안을 얻고 돌아오는 길인지도 모른다. 길을 허락해 준 마을 주민과 숲속 생물들에게 감사해 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지리산 둘레길에서 한 번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


#지리산둘레길#서어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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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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