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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이탈리아 월드컵 축구 16강전이 벌어진 2002년 6월 18일 광화문에서 붉은 악마 응원단들이 안정환 선수의 골든골에 환호하고 있다.
한국-이탈리아 월드컵 축구 16강전이 벌어진 2002년 6월 18일 광화문에서 붉은 악마 응원단들이 안정환 선수의 골든골에 환호하고 있다. ⓒ 권우성

사상 첫 아시아, 아니 우리 한국에서 열린 월드컵. 그리고 첫 승, 첫 16강, 첫 4강 진출! 거리응원의 추억들까지 더해진 2002 월드컵. 그때는 정말 온 나라가 하나 되어 환호하고 있었다.

2002년 5월 31일 시작된 월드컵의 열기로 온 나라가 터질 듯한 감동의 '오르가슴'을 느끼고 있을 무렵, 우리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에 빠져 있었으니…. '월드컵둥이' 둘째 아들을 품에 내려준 2002년 월드컵. 그때의 추억은 우리 가족에게 잊힐 수 없는 역사의 한 페이지다.

둘째의 병원 생활... 월드컵은 관심 밖의 사치스런 이야기 

월드컵이 열리기 두 달 전인 2002년 3월 12일 새벽 5시 40분. 기다리고 기다리던 둘째가 세상 밖으로 첫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1시간이 지나도 산모와 의사, 간호사 누구도 나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둘째아이는 선천성 장기질환을 안고 태어났다. 지방대학의 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받고 완치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6월 초, 둘째의 기저귀를 갈던 아내가 다급하게 나를 찾았다. 우연하게 둘째아이의 심각한 이상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결국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급하게 입원해 수술 날짜를 잡았다. 그렇게 병원 생활이 시작됐다. 아내는 산후조리는 꿈도 꾸지 못하고, 낯선 입원실에서 슬픔에 잠겨 아이 간호를 해야만 했다.

6인실 비좁은 입원실의 보호자용 침상에서 새우잠을 자며 아침저녁으로 식사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것쯤이야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회진 때마다 앞으로 수술을 3번을 더해야 한다는 설명과 특히 이번엔 4시간이 넘는 대수술이라는 주치의 말에 억장이 무너지고 말았다. 드디어 수술 날짜가 6월 20일로 잡혔다. 겁도 나고 마음은 급해 오고, 오죽하면 배고픈지도 모르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수술 이틀 앞두고 열린 16강전

우리 가족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한민국 곳곳을 응원의 함성으로 가득 메운 월드컵의 열기에서 입원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병원에서는 입원실과 로비 등 곳곳에서 환자와 가족들이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을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4일에 열린 폴란드전은 2대0으로 이겼고 미국전은 무승부를 기록했다는 소문(?)은 들려왔으나, 하루하루가 어떻게 가는지조차 모르던 우리 부부에게 무슨 감흥이 있으랴.

대망의 16강전. 둘째의 대수술을 이틀 남겨두고 역사적인 경기가 벌어졌다. 사건은 이때 시작됐다. 이탈리아와 경기가 열리던 6월 18일 오후 8시 30분. 같은 입원실에 있는 아이들 대부분이 선천성 기형과 관련된 수술을 앞두고 있었고, 그 부모들의 심정도 우리 가족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경기 시작과 함께 비좁은 입원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애써 외면하던 보호자들의 입에서는 서서히 환호와 탄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TV에서 경기가 시작되자 그동안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했던 야윈 아내의 시선은 병실 벽에 걸린 TV로 향했다. 그리고 아내는 어느새 서서히 생기를 회복하며 응원에 합류했다. '아픈 아이의 수술을 앞두고 저래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 겨를도 없이, '드로잉'이 무엇인지, '오프사이드'가 무엇인지 '축구'의 '축'자도 모르는 아내의 환호성이 주위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180도 바뀐 입원실 분위기...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링거를 꽂고 곤히 잠들었던 둘째가 보호자들의 소란에 깨고 말았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울음소리. 하지만 그 소리는 보호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지 오래였다. 아이들은 나 몰라라 하며 오직 TV에만 시선을 고정시킨 보호자들의 모습이 웃기지도 않았다. 아내는 언제부턴가 내 팔을 붙들고 이것저것을 설명하며 도취해 있었다. 정말 축구엔 관심이 없었던 아내. 공 하나를 가지고 거의 두 시간을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선수들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던 아내가 이럴 수가….

1점을 지고 있는 상태로 후반전이 거의 끝날 무렵, 입원실에서는 남은 경기시간을 헤아리며 여기저기서 탄식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 그런데 설기현의 동점골이 터졌다. 달려나오는 국가대표팀의 모습에 온 병원 사람들이 환호했고 입원실에서도 일제히 "우와! 동점이다!!!"를 외치며 일어서서 서로 부둥켜안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아픈 아이를 옆에 두고, 그까짓(?) 축구 때문에 이렇게 흥분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너희들만 그랬던 게 아닌데….' 하며 '오버'하는 게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중환자 입원실에서 월드컵 응원해 봤나? 안 했으면 말을 하지 마시라. 

대수술을 이틀 앞두고 이겼다며 환호하는 우리 부부, 응원소리에 놀라 잠이 깨어 침대에서 굴러 떨어진 아이, 안정환의 역전 헤딩골에 흥분해 아이의 링거줄이 빠진 것도 모르고 날뛰던 아빠. 그것은 정말 색다른 감동이었다.

이날 이후 입원실은 밝고 정겨운 공간으로 바뀌고 말았다. 보호자들의 아침인사는 축구 이야기로 시작됐고 점수 맞추기 내기까지 시작됐다. 보호자들이 아이의 수술보다 월드컵에 더 큰 관심을 보이게 된 건 좀 너무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역시 '월드컵둥이'... 축구 없이 못 사는 아들

이틀 후 예정되었던 아들의 수술을 한국 축구대표팀의 투혼의 정기를 받고 성공적으로 마쳤음은 물론이다. 월드컵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서인지, 입원실에서 응원소리를 많이 들어서인지 아들은 유난히 축구를 좋아한다.

어린이 축구대회 2002년 월드컵의 정기를 받은 아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축구광이다. 도내 어린이 축구대회에 출전한 아들.
어린이 축구대회2002년 월드컵의 정기를 받은 아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축구광이다. 도내 어린이 축구대회에 출전한 아들. ⓒ 김학용

어린이 축구대회 이날 축구경기는 TV를 통해 전국에 방송된 멋진 경기였다.
어린이 축구대회이날 축구경기는 TV를 통해 전국에 방송된 멋진 경기였다. ⓒ 김학용

어린이집 시절에는 도내 축구대회에 공격수로 나가 당당히 우승의 영광을 안기도 했고, 초등학교 2학년인 지금은 자타가 공인하는 축구광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새벽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눈을 비벼가며 경기를 다 보고야 마는 축구광. 엄마의 허락을 받아 기껏해야 일주일에 2시간을 할 수 있는 인터넷게임도 온라인 축구게임을 하고, 즐겨보는 책도 축구, TV 채널도 축구, 하여튼 축구 없인 못 사는 아이다. 

이제, 전율과 감동의 축제의 시간이 또다시 찾아왔다. 2002년 입원실에서 겪은 일은 단지 월드컵의 추억 이상으로, 지금도 내 마음 한구석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깊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이 본선에 올라가든 말든 그 결과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이리라.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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