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말 사회서비스 확충 및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제정된 사회적기업 육성법이 시행된 지 이제 만 3년이 되어간다. 현재까지 노동부의 정식 인증을 받은 사회적기업은 전국적으로 300여 개 남짓. 그간 나름의 가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현 사회적기업 운영제도가 정부 주도(허가제)로 진행됨으로 인해 인증 사회적기업의 대다수가 일자리 창출 중심의 단순가치 제공형 모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정부 지원정책이 '약'이 아니라 오히려 '독'(자립적 생존기반이 허약한 기업들만 양산하게 된다는 점)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빵을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파는 기업'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이란 사회적 목적을 실현함과 동시에 수익을 창출하는 조직을 말한다. 사회적기업은 영리기업과 비영리조직의 중간형태로서, 정부나 영리기업이 해결하지 못하는 다양한 분야(환경, 실업, 의료, 보건, 교육, 주택, 문화, 예술, 금융, 농촌, 지역개발 등)에서 사회적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조직을 통칭한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기업 육성법 시행 3년
그렇다면, 현존하는 인증 사회적기업들은 두 가지 과제(사회적 가치+수익 창출)를 잘 실천해 가고 있을까? 유감스럽지만,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많은 사회적기업들이 재정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황 속에서 이른바 지속 가능한 경영(sustainable management)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막 걸음마 단계를 통과하고 있는 단계에서 성패(成敗)를 논하는 것은 이른 감이 있으나, 단지 시간만 흐른다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업계 사람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취약계층에게 일자리 및 사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회적 가치와 비즈니스 기법 및 경영 노하우를 최대한 활용하여 이윤을 창출한다는 경제적 목표를 함께 추구하지만, 서로 이율배반적인 두 개의 가치를 '동시에' 달성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현 사회적기업 생태계는 사회적 수요(윤리적 소비)를 창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립 능력이 부족한 공급주체만 늘어나고 있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자립 능력이란, 가치와 성과를 함께 용해시켜 지속 가능한 사업을 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현 사회적기업 시장을 둘러싼 문제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비즈니스 모델의 완성도가 미흡하고, 둘째 충분한 시장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으며, 셋째 추진주체(사회적기업가)의 사업가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를 기업경영의 3요소(3P)라는 관점으로 해석해 보면, 시장에 제공되는 상품(Product)의 경쟁력이 약하고, 유효수요 창출(Process)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인적 자원(People)의 한계를 겪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회적기업가(Social Entrepreneur) 발굴 및 육성 절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보다 심도 깊은 원인 분석 및 대안 모색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무엇보다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사회적기업 성공의 핵심요소라고 할 수 있는 뛰어난 사회적기업가(Social Entrepreneur)의 발굴 및 육성이다. 전 지구적 영역에서 사회혁신기업가를 발굴, 지원하고 있는 아쇼카 재단(Ashoka foundation)의 창업자 빌 드레이튼(B. Drayton) 박사는 사회적기업가를 '완전히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일반기업가가 시장을 차지하는 사람이라면, 사회적기업가는 세상을 바꾸는 사람(change-maker)이라는 뜻이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드레이튼 박사는 사회적 기업가는 결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과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 그리고 참신한 해법을 지닌 사람들을 찾아내어 키우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지난 20년간, 아쇼카 재단은 전 세계 60개국에서 1700명이 넘는 혁신기업가(fellow)를 발굴 지원해 왔으며, 사회적 기업을 21세기형 사회혁신 운동으로 끌어올린 조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사회적 기업은 많지만 진짜 사회적 기업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회적 기업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지만, 사람에 대한 투자가 먼저라는 이야기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당장 가시화될 수 있는 단기적인 성과에만 집착할 뿐, 긴 안목 속에서 먼저 사회적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ecosystem)를 만들려는 정부 차원의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왜? 양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양털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서울형 사회적기업'이다. 얼마 전 서울시는 2012년까지 총 1000개의 사회적기업을 발굴하여 2만8000개의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서울형 사회적기업이란, 사회적기업 요건은 충족하지 못하지만 잠재력을 갖춘 예비 사회적기업 중 서울시가 지원대상으로 선정한 기업을 말한다. 1000개라니? 아직까지 노동부 인증 사회적기업들도 온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준비안 된' 기업들 숫자만 늘리는 것이 과연 올바른 접근방법일까?
"2012년까지 총 1000개의 사회적기업 발굴"....전시행정의 표본 그렇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전시행정의 표본이다. 기업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핵심이다. '준비된 선수'에 대한 투자를 통해, 전 세계에서 놀라운 혁신을 만들어 가고 있는 아쇼카 재단의 사례를 보라. 아쇼카 재단의 3가지 접근방법(개인적 지원, 집단적 육성 그리고 사회적 인프라 구축)이 담고 있는 합리적 핵심은, 인재는 엄선하여 뽑되 선발된 혁신기업가들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름드리 나무는 좋은 토양 위에서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아쇼카 펠로의 선발은 엄격한 심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기업가(起業家)란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며,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 아니라 날 수 있는 자를 찾아 도와주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 나무로 성장할 수 있는 묘목을 정하는 일에 신중을 기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뛰어난 선수를 통해 먼저 제대로 된 전형(Role-model)을 창출하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경험과 비전을 전파시키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사회혁신 기업가를 키우고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반드시 검토해봐야 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기업가 학교'다. 현재 사회적 기업가를 육성하기 위해 개설된 단기 교육 과정들은 원론적 강의 및 사례 소개 정도의 일방적 정보전달이거나, 초보적 수준의 지도(mentoring)에 머물고 있는 등 체계적인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제대로 된 정부 지원도 없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 좋은 학교를 만들고자 힘쓰는 민간단체들의 노고에 갈채를 보낸다).
따라서 사람의 발굴, 교육훈련, 지원에 이르기까지 일원화된 시스템 구축 및 운영이 요구되며, 이를 위해 중앙정부는 물론 자치단체 차원에서 혁신을 이끌어갈 기업가를 실질적으로 배양(incubating)할 수 있는 '아카데미'의 설립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영국의 사회적기업 지원단체인 The HUB가 대표적인 사례다). 만일 사회적기업가 학교를 포함한 인프라 구축은 도외시한 채 단지 (예비) 사회적기업 숫자만을 늘리는 쪽으로만 방향을 잡는다면, 혁신은 고사하고 부실기업들만 키우게 되는 결과를 노정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자체에서 사회적기업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사회적기업 생태계를 형성하는 과정 자체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동인(動因)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검증된 국내, 외 사회적기업 성공 사례의 대부분은 '지역 밀착형' 모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가난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 소액융자를 해줌으로써 자립의 기반을 만들어준 그라민 은행. 물건 재활용을 통한 나눔과 순환을 전국 각 지역 내에 뿌리내린 아름다운 가게. 그리고 단지 끊어진 길을 복원하는 것만으로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인 제주 올레길을 보라. 모두 지역에서 출발하여 지역에 뿌리를 내린 훌륭한 성공사례들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역 내에 존재하는 자원을 활용하여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善循環.virtuous circle) 구조를 만듦으로써, 지역경제(공동체)를 예전보다 훨씬 풍요로운 곳으로 탈바꿈시킨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이름하여,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다. 이러한 사업들이 신규고용을 창출하고, 삶의 질을 높이며, 범죄율을 떨어뜨리는 등 지역경제를 살리는데 기여한다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이미 검증된 일이다(대표적인 사례가 영국 버밍햄의 Castle vale community 사업이다).
숫자놀이대신 사람을 먼저 고민해야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전국 각 지역에서 사회적기업가의 꿈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행복한 마을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호민관이 있지 않은가? 함께 손잡고 해나가면 된다. 시, 군, 구마다 혁신센터를 만들고, 책임감 있게 일할 담당자를 선임하고, 외국의 훌륭한 모범사례들을 통해 배우고, 도회지에서 힘들게 고생하는 실향민(?)들을 고향으로 불러들이고, 지역주민들과 더불어 꿈과 비전을 공유하면서 지금보다 더 살기 좋은 마을, 고장, 지역을 만들기 위한 큰 틀의 거버넌스(governance)를 조율해 나가면 된다.
믿고 먹을 수 있는 친환경 식품의 생산 및 소비를 도시와 농촌간에 유기적으로 순환(cycling)시킬 수 있는 유통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 우리 마을이 자랑할만한 수많은 아이템(먹거리, 볼거리, 놀거리)을 발굴하여 고부가가치 비즈니스로 키우는 작업 등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실로 무궁무진하다(이른바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 하에 진행중인, 생명의 강 파괴행위에 투입되는 예산을 이쪽으로 투입한다고 생각해보라. 측량할 수 없을 만큼 큰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인디언들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지금 하는 일이 미래의 7번째 세대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생각했다고 한다. 7번째 세대라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을 위해, 다음 세대 혹은 이 땅에서 태어나 숨쉬고 살아갈 후손들의 미래를 희생시키려고 하는 이 땅의 현실과 너무나 비교되지 않은가? 그저 한심하고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전환기의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화두는 돈보다 사람이어야 한다. 쇄빙선(碎氷船, icebreaker)과 같이, 기성의 틀을 부수고 새로운 항로를 열어갈 수 있는 사람. 전 세대가 만든 길 위를 걸어가되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과 해법으로 지역과 사회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아름다운 인재가 필요하다. 그러니 우선 많이 만들고 보자는 헛된 숫자게임에 빠지지 말고 먼저 사람을 발굴하고 키워야 한다. 빠르고 늦고를 떠나 그것이 가장 '옳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