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가 적잖은 내홍을 겪고 있지요. 오는 22일에 있을 6·25 60주년 평화기도회 때문이지요. 그 행사를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연다다는데, 간증자로 초청된 분이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그건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지요. 한국 개신교는 크고 작은 모임이 있을 때마다 세상 정치가들과 권력자들을 초청했었습니다. 교회 내에서 그들이 이야기를 하게 만들었고, 그것으로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았습니다. 또 그것으로 교회 밖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펼쳐 왔지요.
이번 일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는 게 사실이지요.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간증자로 초대하는 이유는 한국 개신교가 그만큼 영향력이 있음을 만방에 알리려는 것이겠지요. 그 외에 납득할 만한 다른 설명은 궁색한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현상들이 오늘날 한국 개신교가 지닌 전형적인 포퓰리즘의 하나지요. 한국 개신교는 지난 세월 동안 일반 성도들이 지닌 심리적인 요인들을 이용해 그 욕망들을 곧잘 성취해 왔지요. 목회 세습에서도, 해외파 학위목사들을 선호하는 데서도, 교회당을 크게 짓고 부활동산이라는 명목으로 큰 땅들을 매입하는 모습속에서도 일반화된 일들이었지요.
이종전의 <한국교회 어디로 가고 있는가?>는 바로 그런 포퓰리즘과 시장경제주의로 치닫고 있는 한국 개신교의 치부를 진단해 주고 있지요. 물론 그에 대한 처방전도 마련해 놓고 있지요. 무엇보다도 한국 개신교의 크나큰 오점은 지난 125년을 동안 많은 교인수와 그에 걸맞은 대형 예배당을 짓는데 중점을 두었고, 그것을 한국사회에 영향력으로 행사해 왔다는 것이지요.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의 현실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조금 냉정하게 표현한다면, 한국교회는 가장 복음적임을 자처하나 복음으로부터 가장 멀어진 인본주의적인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감히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한국교회가 보여 주고 있는 실상이기 때문이다."(머리말)
과연 무엇이 그로 하여금 실망감을 안겨 준 것일까요? 무엇보다도 성경 신앙에 근거한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 교회 부흥을 위한 것이라면 세상에서 주도하는 마케팅 기법을 무작위로 도입하는 것, 설교를 해도 하나님의 메시지에 다가서기보다 오로지 인기를 끌 수 있는 이야기로 엮어 내는 것 등으로 꼽고 있지요. 그야말로 시장경제원리와 성장지상주의가 한국 개신교를 지배하고 있다는 진단이지요.
그것은 요즘 유행하고 있는 '해피데이'라는 전도방법도 같지요. 가난하던 시절 교회에서 군고구마와 찐빵을 나눠줬었죠. 그것이 요즘에는 또 다른 유형의 물량주의 공세로 돌변해 있다는 것이죠. 그 행사에 맞춰 교회에 처음 나오는 사람들이 점점 수준 높은 상품을 받는데, 그 값이 도에 지나치다는 데에 있지요. 그로 인해 예수의 생명이나 진리보다도 자칫 기복주의적인 신앙 형태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어디 그 뿐이겠어요. 유명한 텔레비전 부흥강사들이 입으로 품어내는 설교도 마찬가지죠. 온갖 유머와 해악으로 넘쳐나지만 그 모든 것이 세상의 성공과 출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잖아요. 이는 기독교 출판계를 강타했던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도 결코 무관하지 않지요. 더 놀라운 건 요즘 대형 교회들은 주 5일 근무제로 야외에 빠져나가는 교우들을 붙잡기 위해 휴양지에까지 목회자를 보내 예배를 인도하게 한다는 것이죠.
"일천번제는 율법적 제사신앙의 연장이다. 율법적 제사신앙이란 인간의 희생이 복음의 자리를 대신하는 신앙이며, 결국 인간의 종교적 자기 성취를 목적으로 구약의 제사를 재연하는 것 이상이 아니다."(103쪽)
이와 같은 상황에서 그는 한국 개신교회에 대한 처방전을 그렇게 내리고 있지요. 무엇보다도 성경신앙에 입각한 하나님과 인간의 본질을 바르게 파악하여 성경의 토대 위에서 신학을 바르게 정립해야 하고, 그것을 토대로 교회에서는 교리를 바르게 가르치고, 신앙과 일치되는 삶을 한국 개신교가 주도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죠. 한마디로 포퓰리즘이나 시장경제주의와 같은 인본주의적인 흐름을 차단하고 하나님 앞에 솔직해지라는 것이지요.
이쯤 되면 한국 개신교는 온갖 치부들이 다 드러나는 셈이고, 그에 따른 바른 처방전도 갖고 있는 셈이 되겠죠. 문제는 한국 개신교가 그렇게 세속화된 신앙유형을 과감히 버리고,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을 수 있는가 이겠죠. 하루라도 빨리 그것들을 정화시켜 새로운 생명과 진리를 담아내는 순전하고 강직한 한국개신교가 되었으면 하고, 그는 바라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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