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서울까지 한국 국민 13만4162명 호소가 담긴 서명 명부도 건넸다. 여야를 막론한 한국 국회의원 100명이 서명한 명부도 건넸다. 그러나 미쓰비시는 여전히 사죄의 말도, 보상의 약속도 하지 않았다. 다만 7월 15일까지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자는 제안에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23일 오전 10시 일본 도쿄 시나가와역. 한국에서 온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대표 김희용 목사)' 회원 25명과 '나고야 미쓰비시·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이하 나고야 지원단)' 회원 20여 명이 함께 삼보일배를 시작했다. 도쿄엔 거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들이 삼보일배로 도달한 곳은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 미쓰비시는 일제 강점기 동안 무려 10만여 명을 징용으로 강제동원한 1등 전범기업이다. 하지만 미쓰비시는 사죄와 배상은커녕 착취한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마저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의 삼보일배는 주주총회를 하루 앞두고 있는 미쓰비시의 이런 행태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삼보일배는 근로정신대 지원모임과 활동을 주도한 이국언 사무국장을 비롯해 이상갑 민변 광주지회장, 서정성 광주광역시의원 당선자 등 10여 명이 함께 했다.
삼보일보 행렬 뒤에서는 한국 국회의원 100명의 서명을 받아온 이용섭 의원(민주당·광주 광산을)이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광주유족회장이 탄 휠체어를 밀며 나고야 지원단과 함께 항의행진을 했다. 장휘국 광주광역시 교육감 당선자도 나고야 지원단과 함께 펼침막을 들고 행진하며 일본과 미쓰비시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했다.
미쓰비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던 양금덕(82) 할머니는 "엄마만 찾을 13세, 14세 어린 여자아이들을 끌고 와서 밥도 제대로 주지 않고 뺨 때리고 발로 걷어차고 '조선인은 사람도 아니다'라며 짐승 취급을 하며 노동력을 착취했다"고 야윈 눈물을 흘렸다.
양 할머니는 "내게 죄가 있다면 열심히 일하면 돈도 주고 공부도 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끌려와 일본을 위해 조막만한 손으로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며 "그렇게 열심히 일한 내가 다른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일했던 만큼 돈을 달라는데, 물 한 통 못 사는 99엔이 말이 되나"고 절규했다.
이금주 회장(91)은 "일제는 항상 자기들이 양심국가, 정의국가라면서 정직하고 양심적인 우리를 조선인들은 본받으라고 했었다"면서 "조선 남자들을 잡아다가 전쟁터에서 죽게 만든 것도 모자라 어린 여자애들을 끌어다 강제 노동시킨 대가를 지불하라는데 이를 외면하는 것이 양심국가냐"고 되물었다.
지난 10년 동안 조선여성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소송지원은 물론 매주 금요일 미쓰비시 본사 앞에서 '금요시위'를 주도해온 나고야 지원단. 다카하시 마코토 회장은 "우리가 미쓰비시와 일본 정부에 바라는 것은 딱 두 가지"라며 "진심어린 사죄를 하고 법률을 제정하여 모든 조선 강제연행 희생자들에게 법적으로 보상하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삼보일배를 마친 이들은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의 사과와 보상을 촉구하는 한국 국민 13만4162명과 한국 국회의원 100명이 서명한 명부원본을 미쓰비시 측에 전달했다. 항의 서명을 전달한 이들은 오전 10시 30분부터 미쓰비시 측과 면담을 했다.
면담에는 한국 국회의원 100명의 서명을 받아온 이용섭 의원과 김희용 시민모임 대표, 이국언 사무국장, 다카하시 마코토 회장, 소송원고였던 양금덕 할머니, 이금주 회장 등 15명이 참석했다. 미쓰비시 측은 한국에서 온 취재진은 물론 일본 NHK 취재진의 취재까지 허락하지 않았다.
원래 1시간으로 예상됐던 양측의 면담은 두 시간으로 늘어났다. 이용섭 의원과 다카하시 마코토 회장이 전한 면담내용을 축약하면 다음과 같다.
방문단 : 한국 국민 13만4162명의 서명과 한국 국회의원 100명의 서명이 담긴 서명부를 가져왔다. 미쓰비시 : 한국 국민의 어려움과 고통, 진정성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방문단 : 미쓰비시가 인권과 평화기업으로 거듭나려면 진심어린 사죄와 보상을 하라.미쓰비시 : 미쓰비시는 거대기업이다. 이 자리에 나온 사람들이 입장을 밝힐 사안이 아니다.방문단 : 오는 8월 22일이 한일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날이다. 8월 15일은 한국 광복절이다. 문제해결의 타이밍이 중요하다. 오는 7월 15일까지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문제해결을 위한 협의체 구성 여부에 대한 답을 달라.미쓰비시 : 매우 귀중한 제안으로 생각한다. 검토해보겠다. 하지만 통보 약속을 할 수는 없다.방문단 : 우리는 분명한 시한을 두고 요구를 했다. 우리의 요구에 대해 미쓰비시가 화답하지 않는다면 국민적 저항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 '반(反) 미쓰비시' 활동을 전개할 것이다. 미쓰비시를 비도덕적·반인도적 기업으로 간주하고 국민적 불매운동은 물론 국제 인권단체와 세계여론에 호소해 미쓰비시의 반인륜적 행태를 지속적으로 고발해나갈 것이다.
이국언 사무국장은 "작년에 왔을 땐 과장 두 명이 나와서 우릴 응대했지만 이번엔 더 높은 인사가 나와 면담했다"며 "여전히 불쾌하고 기분 나쁘지만 그래도 작년보다는 조금은 나아진 자세"라고 평가했다.
이용섭 의원 역시 "철저한 외면으로 일관해온 그동안의 자세보다는 진일보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다"며 "문제해결을 위한 논의체(협의체)가 구성되면 문제해결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기대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일본과 한국 시민들이 내건 펼침막엔 "99엔, 일본 정부의 양심의 가치입니까?"라고 적혀 있었다. 강제동원한 근로정신대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 약 4조원은 현재 일본의 한 국책은행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한국 정부는 45년 전 한국과 일본 정부가 체결한 '한일협정'을 이유로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정부는 한일협정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 협정내용을 공개하라는 소송이 현재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