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에서 쓰는 술과 감주를 만드는 관청이 사온서(司醞署)다. 사온의 '온'은 술 빚는 걸 뜻하는 말로 조선왕조에선 태조 원년에 고려의 제도를 이어받아 설치됐다. 처음에야 관원으로 영 · 승 · 직장 · 부직장을 뒀지만 태종 14년엔 승을 주부로 고치고 세종 28년엔 부직장을 봉사로 바꾸었다. <경국대전>에 자리 잡기는 사온서 밑에 주고(酒庫)가 설치돼 있다는 게 눈길을 끈다.
'주고'가 뭔가? 술 창고다. 술을 관리하는 직책이다 보니 흥그러운 얘기가 적지 않을 수밖에 없다. 포근한 날씨였지만 정월 명절이 닷새 앞으로 가까워졌으니 혼처를 정해 놓은 집에선 명절 전에 혼사를 치르려고 기를 쓰는 편이었다.
그것은 사온서의 말단직원인 봉사 박문호(朴文鎬)의 집도 마찬가지다. 명절을 앞두고 서둘러 딸아이의 혼사를 치른 것이다.
밤이 깊어진 신방엔 사내의 손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이팔청춘이니 피는 맹렬히 끓어오르고 은밀히 숨은 정념의 화약이 하나 둘 터지며 남녀의 호흡은 먼 길을 달려온 당나귀의 헐떡거림처럼 숨 가쁘게 이어졌다.
어디서 배운 기술인지 신방맞이를 하는 신랑의 기교는 참으로 눈부셨다. 은옥(銀玉)은 죽은 듯 눈을 감은 채 잔잔한 미소를 입가로 흘리며 사내의 흔들림에 몸을 맡겼다.
신부를 위해 사내는 열심히 봉사했다. 그게 바람처럼 유행하는 선도식 비술임을 규방에 있는 처녀지만 모를 리 없었다. 열일곱 처녀가 듣기엔 남사스러은 우입좌출이니 사왕생환이란 걸 알 리 없었지만 끈끈하게 노닥거리는 사내의 움직임이 용출하는 힘으로 처녀의 깊은 곳에 쏟아질 때는 그저 꿈이 아닌가 싶은 즐거움이었다.
환희의 신음이 쏟아졌을 때 은옥이의 아랫부분엔 묵직한 물건이 돌출돼 뜨거운 기쁨을 안겨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얼마나 혼인을 잘 했는지 마음자리가 뿌듯이 차올랐다.
사온서 말단직원인 봉사를 아비로 둔 은옥이로서는 두 단계나 윗전인 윤참봉의 며느리가 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신방맞이. 처녀가 어린애 티를 벗고 어른이 된 이 날. 비록 처음인양 내색을 떨었지만 사내가 처음은 아니었다. 자신이 열다섯 때니 더듬어 가면 두 해 전이다. 그녀가 별당에 있을 때 온 몸이 후꾼 달아오를 연시를 받았었다. 사온서 직장 정태수의 아들 정일구였다.
키가 훤칠하고 용모 또한 빼어났으니 여느 처녀라도 단번에 빠져들 장부였다. 품계는 달랐으나 부친이 다니는 사온서의 상관 아들이니 알게 모르게 집안 출입이 잦았다. 자신만의 은밀한 비밀이라 은옥은 안갯속같은 마음판에 꼬옥 꼭 숨겨놓은 채 신혼 첫날밤을 맞이한 것이다.
깊은 숨을 끊어 쉬며 가만히 새신랑을 돌아보았다. 두 차례나 힘을 쓴 사내는 깊은 잠에 떨어져 코를 곯았다. 살그머니 상체를 일으켜 속적삼을 걸치고 어지러운 마음자락을 정리했다. 마음은 어느새 첫 경험의 그 시절로 달려가 있었다.
그때는 지금 같은 즐거움은 없었다. 낮참 어림에 은애한다는 서찰을 받고 쉼 없이 콩당대는 마음을 주체할 길 없었는데 한밤중에 갑자기 뛰어들었으니 놀란 것보다 호기심이 반작용했다. 훤칠한 사내 정일구는 다감한 말을 뱉어냈다.
"아가씨, 세상 즐거움 속에 첫손을 꼽는 게 남녀 간의 화락입니다. 시생은 선학(仙學)의 오묘함에 빠졌다가 지금에야 깨어났습니다만, 나의 은밀한 말을 들으시려면 먼저는 마음을 편히 하는 환단을 드셔야 합니다."얼결에 받은 환단은 콩알보다 더 작았다. 그것을 어찌할까 망설이는 데 사내가 작은 호로병을 내밀었다.
"시생이 신선나라에 들어가 서왕모에게 받은 감로줍니다. 환단을 이 물로 마시면 만병이 물러가고 백약을 몸에 두른 듯 생기가 넘치지요."그 나이 또래의 처녀들 마음을 아는 걸까. 호기심 많은 은옥이의 마음을 사내의 달착지근한 속삭임이 슬쩍 꼬드겼다.
"어서 드시지요."'한 번 마셔 볼까?' 하는 마음은 권하는 이의 마음을 무시할 수 없어 '설마 죽기야 하겠어?' 싶어 환단을 삼켰다.
환단은 새로운 꿈 속으로 안내하는 열쇠였다. 문을 들어서자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완전히 헤쳐 놓았다. 칼로 몸을 찢는 것도 같고 바위 같은 억센 힘으로 온 몸을 짓눌렀다. 하복부가 떨어져나간 듯한 지독한 고통에 몸부림치다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졌다. 바람처럼 다가온 건 알 수 없는 세계에 빠졌다는 설렘이었다. 이것은 시작이었다.
바람처럼 빠져나간 사내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지만 야릇한 비밀은 은옥이 마음에 새겨진 채, 반년 쯤 흐른 뒤 혼례를 치른 자리에 되살아났다. 부친이 내의원에 참봉으로 있는 윤씨댁 자제였다.
그는 부친의 영향으로 강정제에 대해 이것 저것 많이 알아 은옥이와 혼담이 있고부터 심심찮게 박씨 집안에 들러 구하기가 쉽지 않은 주요 약재를 내놓곤 했었다.
"에헤헤 장인어른. 내가 가져온 이 약재는 구하기가 몹시 까다롭습니다. 아버님이 은밀히 거래 하는 수표교 인근의 제중당이란 한약방에서 좋은 약재를 구했다기에 시생이 가져온 금석곡입니다."
금석곡(金石斛). 가리왕산에서 출토했으니 약효가 빼어날 건 두말할 나위 없다. 조선의 약초라면 그 첫머리에 떠오르는 게 인삼이다. 몸이 약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조제하는 방법에 따라 인삼은 몸에 받는다.
그러나 회춘강정(回春强精)의 특효약으로 손을 꼽는 건 인삼이 아니라 금석곡이었다. 이따금 집에 들른 약초꾼들에게 귀가 닳도록 들은 데다 제중당 이주부도 그런 얘길 했었다.
"세상 사람들이 너흴 약초꾼이라 우습게 여길지 모르나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너희들은 아픈 사람을 살리는 약왕 같은 게지. 너희라고 신농씨가 뿌려놓은 산삼 한 뿌리 못 켈 게 아니며 금석곡 한 촉 못 건질 바 없다. 너희들이 그런 약초 한 뿌리만 가져오면 쌀 스무 가마가 많다 하겠는가."
금석곡이라 했으니 약초꾼들은 광물질로 생각했으나 그게 '난(蘭)'이라는 것이다. 조선에선 탐라 등에서 발견되는데 중국에선 깊은 산 험한 계곡에서 어렵게 찾아냈다. 이주부는 설명을 단단히 붙인다.
"이 약초는 내분비촉진약(內分泌促進藥)으로 첫 손을 꼽을 수 있네. 사내의 거시기가 위축돼 이층 짓기가 어려운 자에겐 특효약이야. 중국에선 이게 오래전부터 특산품으로 사랑을 받아왔거든. 금석곡이란 난(蘭)은 높은 산의 습기 먹은 바위에 무리지어 피어나 군생(群生)하는 것으로 크기는 넉 자(尺) 어림이네. 이름자에 금(金) 자가 붙은 건 전체가 황색인데다 얻기가 힘들어 '구름 위의 약초'로 불리운 탓이지."돈냥이나 있는 중국 부호들은 이걸 차(茶)로 만들어 복용하며 여러 명의 첩을 거느렸다. 강정면으로 볼 때 으뜸으로 내세울 만한 약재였다.
윤씨댁 자제는 그 부친을 닮아 말 주변이 끈끈한데다 농질에 입술이 닳아 박봉사로선 사위에 대한 신뢰가 새롭게 다져지는 참이었다.
박봉사 집은 지금의 종로구청이 멀지않은 수진방이다.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이 자신의 집터를 정할 때 오래 오래 살 것이라 큰소리치며 정했는데 그가 이방원(태종)에게 피살된 후 '명이 다한 곳(壽盡坊)'이라 소문나 세상 사람들의 조롱을 받게 됐다. 이후 사복시(司僕寺)란 관청이 들어서자 말을 관리하게 돼 상삿골이란 명칭은 이 사복시 때문에 생겨났다.이곳에서 기르는 말 중에 교미할 때가 된 말을 상사마(想思馬)라 했다. 이 말이 암내를 맡고 날뛰면 관원들을 골목으로 몰아넣어 잡았기에 붙여진 명칭이다. 상삿골과 연관있는 행당동 살곶이 서쪽다리 언덕 위엔 마조단이 있다. 말의 조상 선목(先牧)의 제사를 비롯해 마사(馬社), 마보(馬步) 등에 제를 올려 돌림병을 예방한 게 눈에 띈다.
박봉사의 집은 골목 안쪽에 자리잡아선지 행인들의 출입이 많지 않은 곳이었다. 혼례를 올린 그날 표씨(表氏) 성을 쓰는 젊은이가 흐릿한 밤길을 걷고 있었다. 보름이 가까워졌으니 날씨가 쌀쌀한 데다 술기가 웬만큼 사라진 듯 싶었으나 어느 길을 어떻게 걸었는지 온 몸의 맥이 풀려 있었다.
그의 걸음이 청사초롱 걸린 박봉사 집 앞을 지날 때 하인 두 놈이 문전 앞에서 이리저리 서성이다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아이구 서방님, 왜 이제 오십니까. 고뿔이라도 걸리면 큰일이지요. 약주 좋아하시는 서방님이 아무리 말 술을 마신다해도 야밤에 고생하는 저희 입장도 생각해 주셔야지요. 에헤헤, 지금이라도 오셨으니 다행입니다. 어서 들어가십시요."
이 날이 박봉사의 외동딸 은옥이의 혼례날이었다. 나이 열일곱이 돼도록 애지중지 길러 보문동에 사는 내의원 윤참봉 댁과 혼례를 치르자 신랑댁을 아는 이들은 그런 말을 했다.
"박봉사가 상삿골로 오더니 행세깨나 하는 윤참봉과 인연을 맺는구먼. 세도 부리고 싶은 욕심이 용뿔처럼 대단한 양반인데 그런 집안과 사돈을 맺었으니 대문 앞에 내건 비룡승천이란 편액이 틀린 말은 아닐세."
마음에 걸리는 건 사윗감이었다. 시건방지기가 이를 데 없고 장인 앞에서도 방정맞은 언사를 함부로 지껄이는 놈이었다.
"아하하하, 이 댁에 장가들면 장인어른께 좋은 약재를 소개하리다. 기대를 하슈."어디 그 뿐인가. 혼례를 치르더니 신방에 들 생각은 않고 무뢰배같은 녀석들과 오후 2시 어림에 인사차 약주 한 잔 걸친다고 나가더니 저녁 8시가 넘은 그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입안이 버석버석 탔다.
박봉사는 끓는 속을 진정시키느라 이만저만 애 태운 게 아니다. 이번 혼사는 상대가 마음에 들어서 하는 게 아니었다. 사온서 말단 직원인 자신의 신분으로선 중앙요로에 실낱같은 끈이라도 있는 자와 인연을 가져야 벼슬길이 열릴 수 있다보니 보문동 낡은 사대부가의 윤참봉과 인연을 맺은 것이다.
매파가 능력있는 사내로 추켜세우며 혼서를 건넨 뒤 신랑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이 날파리처럼 날아들어 마음자리를 우그러뜨렸다.
"
무어? 신랑 될 놈이 주태백이야? 말술이라구? 어허 남의 혼사라고 구경꾼들이 맘대로 지껄이는군. 사내는 의당 술 한 잔 마실 수 있는 거지. 안 그런가? 이태백 그 양반이 말하길 한 말 술은 자연으로 통하는 대장부가 마실 술이라 했네. 글 읽는 사내면 그 정도 깜냥은 돼야지."
며칠 후엔 투전에 빠져 알게 모르게 집안을 거덜냈을 거라는 소문도 날아들었으나 박봉사의 인내심은 남아있었다.
"사내대장부가 한때의 여흥으로 투전에 빠지는 것도 남아다운 기상이야. 아암, 그렇고말고! 꽁생원마냥 엽전 몇 푼 움켜쥔 채 바들바들 떤대서야 뭐에 쓰겠는가."그런데 해 떨어지기 전에 날아든 소문이 너무 황당해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술을 마시고 투전을 하는 것까진 그럴 수 있다 했는데 사위란 인간이 술만 쳐 먹으면 치마 두른 계집은 보이는 대로 껴안고 지랄 방정을 떤다는 것이다.
그 방정이란 게 뭔가? 색(色)이었다. 서책을 본다는 놈이 유가(儒家)의 경전 <논어>를 비롯해 <대학>이나 <맹자>라도 읽어야지 길거리 약장사들이 떠벌리는 염담이나 즐기고 우스개 잡소리 풍설에 관심을 기울이는 헤픈 귀를 가졌으니 박봉사를 아는 이들은 염병할 사위에 대해 한마디 거드는 것 조차 부담스러워했다.
"이런 소릴 안 하려고 했습니다만 말이 나왔으니 한마디 얹겠습니다. 박봉사의 사위께선 스스로 말하기를 바람을 일으킨답니다. 무슨 부채 도사인가 싶어 물었더니 폼을 떠억 잡고 무풍불기랑(無風不起浪)이라지 뭡니까. 바람이 없으면 물결이 일어나지 않는답니다. 세상에 엎드린 조개꼭지는 자신이 바람을 일으켜 흔들리게 하는 풍류남아라고 큰소리 칩디다!"
"어허, 염병할 놈 지랄하누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