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 외에는 먹이지 마세요. 사람 먹는 것 먹이시면 큰일납니다."
한국의 반려인들이 꽤 오랫동안 듣고 살아온 말이다. 물론 인스턴트 음식이나 과자나 음료 등의 간식을 즐기는 반려인이라면 이 말은 정답이다. 사람에게도 나쁜 음식이 반려동물에게 좋을 리 없다. 하지만 반려인이 자연적인 올바른 식단을 갖고 있다면 그 음식을 나누는 것이 반려동물에게 나쁠 리 없다.
최근 오랜 기간 듣고 당연히 그럴 거라 믿고 살아온 이 말에 의심을 갖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직접 반려동물의 식단을 만들어 주는 사람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드디어 20년 넘게 홀리스틱 수의학으로 동물들의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해 온 수의사 닥터 피케른의 책 <개고양이 자연주의 육아백과>(리처드 H. 피케른·수전 허블 피케른, 책공장더불어)가 나왔다.
저자 리처드 H. 피케른은 이 책에서 오늘날 동물들에게 보이는 수많은 퇴행성 질병은 부적절한 식단에 의해 유발되었으며 그 주 원인이 사료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그렇듯 많은 미국인들도 처음에는 사람 먹는 음식을 반려동물에게 먹이자는 주장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많은 미국인들이 사람먹는 음식을 개와 고양이에게 주자는 의견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미국사람들이 놀라고 있는 동안, 유럽 사람들은 사료를 주지 않고 자연적인 음식을 (반려동물에게) 주었고 덕분에 유럽의 개가 미국의 개보다 훨씬 건강해졌다. 우리의 편의와 오랜 저장기간의 장점을 위해 가공·처리하고 적은 비용을 들여 체계화한 제품은 10억년 동안 동물이 자연으로부터 얻은 신선한 음식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 (본문 중에서)
동물 진화론적 역사와 함께한 식단이 정답
실제로 책에는 식단만 바꿨을 뿐인데 피부병이 낫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개가 새 삶을 찾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것은 사료가 반려동물의 건강을 오랜 기간 망쳐왔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질환을 식단 바꾸는 것만으로 고칠 수는 없다. 저자도 치료보다는 예방 차원으로 사료 대신 자연식을 권하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사람도 불치병 선고를 받고 기적적으로 나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식단을 바꾸기도 하지만 더불어 운동과 병원 치료 등 여러 가지 치료 방법을 병행하지 않던가.
또한 이 책을 보고 자연식 식단을 만들어 주지 못하고 사료를 준다고 반려동물에게 미안해 하는 반려인이 생기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처치와 형편에 맞춰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저자 또한 제대로 된 식단을 만들어 주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질 좋은 사료에 보조제를 첨가하는 것을 권하고 있다. 자연식을 만들어주는 일은 노력과 시간을 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사료를 거부하고 자연식 식단이 좋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보면, 마치 인간의 육아 역사에서 분유에서 모유로의 회귀가 더 좋다고 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완전한 비유는 아니지만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 최고로 좋은 식단이라던 맹신이 어느 순간 자연적인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믿음으로 흘러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 옛날 남은 김치찌개에 밥 말아주는 시대로의 회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식단은 단백질은 거의 제로에 가깝고 영양균형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형편없는 식단일 뿐이다.
저자는 아픈 동물을 잘 치료하기 위해 박사 과정까지 밟았으나 서양의학의 한계를 깨닫고 홀리스틱 관점(대상을 조각으로 나눠서 보는 것이 아니라 정신, 신체, 마음 등 전체적으로 보는 것)으로 접근하게 된다. 거기서 가장 비중을 둔 것이 바로 영양학이다. 그리고 오랜 경험 끝에 내린 결론은 그들이 자연에서 먹던 식단과 가장 유사한 식단이 정답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진화론적 역사와 함께해 온 음식과 가장 비슷한 음식을 먹이자고 다짐했다. (본문 중에서)
반려인에게 책임을 묻다
지금까지 나온 반려동물 관련 인문서나 실용서 등에서 보지 못했던 내용을 이 책은 다루고 있는데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반려인의 도덕적, 윤리적, 환경적 책임에 관한 문제이다. 나는 이 책이 빛나는 이유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반려동물의 영양학을 다룬 점도 있지만 그보다 반려인에게 위와 같은 책임을 물었다는 것이다.
책에는 꽤 많은 자연식 레시피가 소개되고 있는데 그중에 채식 레시피가 눈에 띈다. 저자는 반려동물에게 가끔 채식 위주의 레시피를 시도하는 것은 매우 가치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채식 위주의 식단이 항생제, 살충제 등 독성 잔류물의 수치가 낮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고기 사용량을 줄여 우리가 사는 지구에 미치는 부담을 줄이고 동시에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고통을 감소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반려인에게 뼈아픈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는 자연적인 환경에 비해 너무나 많은 육식동물과 살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육식'이 얼마나 환경파괴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 아는 저자는 우리가 육식동물인 개·고양이를 가축화 해 그 수를 늘리면서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데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일반적인 자연환경에서 개와 고양이가 생활할 때보다 사료(이것 역시 육류로 만들어짐)를 먹이는 등 (개와 고양이를)가축화하면서 그 수가 급격히 증가했고, 이는 자연환경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장선상에서 반려동물의 중성화수술, 훈련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많은 동물관련 책을 읽었지만 한번도 이렇게 내게 이야기해준 저자는 없었다. 그래서 머리를 텅 얻어맞은 것 같았다. 이런 사실을 마음에 담은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의의는 충분했다.
예방접종 하지 마라?
이 책은 동물 질병의 치료법으로 서양의학을 조금 비켜 동종요법과 허브요법 등 대체의학을 소개하고 있다. 서양의학이 질환을 근본적으로 치유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증상만을 일시적으로 없애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질환에 따라서는 일단 증상을 없애는 것이 중요한 것도 있으므로 그것마저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서양의학의 보완, 대체의학으로 조용히 동종요법에 대해 알려준다.
사실 이 책을 만나기 전부터 나는 동종요법 등 홀리스틱 수의학에 관심이 많았다. 외국에 사는 지인들을 통해 안락사 선고를 받은 개가 행복하게 오래 산 이야기, 책을 통해서 불치병 선고를 받은 개가 고통스럽지 않게 삶의 질을 보장받으면서 산 이야기 등을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홀리스틱 수의학을 기적의 치료법으로 알 정도로 내가 순진하지는 않다. 단지 우리나라에도 홀리스틱 수의사가 있다면 서양의학과 병행해서 진료를 받아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글들을 줄 치면서 읽게 되고 반려동물의 질환을 바라보는 시선을 자꾸 교정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들이 권하는 약에 대해 무조건 오케이 하지 말고 묻고 상의하고 공부해서 결국은 내가 판단해야겠다는 결론.
특히 이 책의 내용 중에서 수의사 선생님들을 불편하는 것 중의 하나가 예방접종이다. 저자는 예방접종이 항상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며 간혹 장기간 지속되는 건강상 장애를 유발한다고 지적한다.
사실 나 같은 경우 17살 우리 개에게 3년 전부터 예방접종을 하지 않고 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어린 시절 기본 접종을 잘 했는데 매년 하는 추가접종이 너무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그래서 매년 예방접종을 하는 대신 항체 검사를 한다. 검사를 해서 항체수치가 낮게 나오면 그때 접종을 하기로 결정했다. 얼마 전 병원을 찾아 항체 검사를 했는데 17살 노견인 우리 개는 각 항목마다 항체수치가 최고 레벨이어서 수의사 선생님을 놀라게 했다.
물론 저자도 예방접종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몸에 무리가 되지 않게, 예방 접종 시작시기를 조금 늦추고, 접종 전에 먼저 항체 검사를 할 것을 권하고 있다. 특히 개 농장에서 자라 유전적 요인과 환경이 나쁜 경우에는 예방접종에 신경써야 한다고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자연의 섭리 거스르지 않을수록 삶의 질 올라가
몇 년 전 병의 원인을 찾지 못하고 반려견을 떠나보낸 겸험이 있는데 그때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며칠 전 맞은 예방주사였다. 그래서 17살 노견에게 예방접종을 하는 것을 더 꺼리게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또한 반려인의 선택이다. 식단도, 예방접종도 나의 상황과 반려동물의 상태 등에 따라 철저하게 반려인이 판단해야 한다. 아예 예방접종을 하지 않았다가 질병에 걸리고 후회할 수도 있다. 영양 균형을 맞춘 제대로 된 자연식 식단을 만들어 주지 못하면 반려동물에게 영양 불균형과 면역력 저하 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모든 자료와 정보를 바탕으로 나와 반려동물의 상황을 고려해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게 바로 반려동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져야 하는 반려인의 의무이다. 그래서 이 책은 반려인에게 과제를 잔뜩 내주는 굉장히 어려운 책이다.
그리고 저자는 책의 곳곳에서 말한다. '동물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은 복잡하지만 우리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으면 않을수록 반려동물의 삶은 더 유익하게 흘러갈 것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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