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중략)

안개 속에 외로이 하염없이

나는 간다

<안개>일부-정훈희

 

 안개 속의 풍경
안개 속의 풍경 ⓒ 김찬순

 

지난 2일 새벽, 삼포길(미포, 청사포, 구덕포)에서 자연이 풀어낸 물감 같은 안개 군무를 만났다. 하얀 안갯길을 걷다보니 영화 <안개 속의 풍경> 생각도 났고, 정훈희의 <안개>와 배호의 <안개낀 장충단 공원>노래도 절로 흥얼거려졌다. 

 

정훈희의 <안개>와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은 내가 잘부르는 18번 노래들이다. 생각해보니 안개란 단어가 들어간 노래들이 유행하던 60년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답답한 그 시절에는 '안개'가 들어가는 노래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오리무중이란 말이 있듯이, 안개 무(霧)자 들어가는 단어들은, 대체로 답답한 상황을 상징하는 뜻으로 많이 쓰이는 것 같다. 그러나 안개는 신비로운 여성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신비한 안갯속에 싸여 있는 여성처럼, 안개에 싸인 풍경만큼 매혹적인 자연 풍경이 있을까.   

 

가시거리가 1km 이상일 때는 안개라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안개는 본질적으로 구름과 같지만 지면에 접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안개의 발생하려면 대기중에 수증기가 많아야 한다.

 

기온이 이슬점 아래로 내려가면 공기가 포화상태에 이르고 수증기가 물방울로 응결된다.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지표 가까이에 있는 차가운 공기와 만나거나 주변에 수증기의 공급원이 많아 습도가 높을 경우 안개가 잘 발생한다고 한다.

 

 안개 속의 출항
안개 속의 출항 ⓒ 김찬순

 

제주도 서귀포 당신(堂神) 신화에는 바람신과 안개신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주 먼 옛날 설마국에서 바람운(풍신)이 고산국이라는 여자와 결혼을 하였으나, 그녀의 동생(지산국:안개신)의 뛰어난 미모에 반한다. 그러다가 끝내 둘이서 한라산으로 도망가 부부가 된다.

 

뒤이어 쫓는 고산국은 그들을 죽이려고 했으나 동생 지산국의 도술을 이기지 못하여 서로 해치지 말기로 하고 돌아와 화해를 하고 각각 분계를 정한다. 그리하여 바람운과 지산국은 부부로서 하서귀 신목 윗가지에 좌정하였다고 한다.

 

이 설화는 제주도라는 섬 특유의 자연환경이 만들어 낸 신화지만, 이러한 신격화는 풍작과 흉작에 자연이 영향을 끼친다는 의식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김승옥은 자신의 작품 <무진기행>에서 안개를 일러 '여귀가 내뿜는 입김'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지난 2일 부산 해안가에 피어나는 안개 풍경은, 내게 상처 입은 자연을 어루만져주는 안개여신의 부드러운 손길로 다가왔다. 

 

 안개 속의 태양
안개 속의 태양 ⓒ 김찬순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 바다 풍경에 나는 잠시 어느 먼 이국 도시에 여행을 온 나그네가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얀 안개가 자욱한 하늘에서 미세한 안개비를 뿌렸다. 이렇게 이슬비가 뽀얗게 내리면서 하얀 안개가 자욱하면 '공몽'이라 하고, 푸른빛이 도는 안개는 '자하'라 이르고, '고하'는 산마루에 높이 걸린 안개 이름이다. '무열'은 안개가 자욱이 피어나듯 줄지어 볼만함을 이르고, '낙하'는 사라져가는 안개를 이른다고 한다.

 

 해안 안개
해안 안개 ⓒ 김찬순

안개낀 장충단 공원

누구를 찾아왔나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 안고

울고만 있을까

지난날 이자리에 새긴 그이름

뚜렷이 남은 이 글씨

다시 한 번 어루만지며

돌아서는 장충단 공원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일부-노래 배호

 

 안개를 쓸다 ?
안개를 쓸다 ? ⓒ 김찬순

 

하얀 바다 안개가 마치 우주의 입김처럼 서려 있는 송정해수욕장. 연두색 조끼를 입은 희망근로자들이 삼삼오오 열심히 바닷가에 쌓인 쓰레기를 청소 하고 있었다. 안개주의보라도 내린 듯 시야를 분간할 수 없는 자욱한 안개에 싸인 송정항에는 안개 따위는 개의치 않고 부산하게 입항과 출항하는 어선들이 보였다.

 

그 많은 어선들 중 집채 만한 다시마 그물뭉치를 기계로 하선하는 작업 광경을 지켜보았는데, 남자들도 힘든 기계 하선을 해녀 아주머니 몇몇과 어부 아저씨가 함께 하고 있었다. 남성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어업 종사에 여성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을 실감케 하는 풍경이었다.  

  

자욱한 안개 속에 뱃고동 우는 소리가 들리고, 태양이 나타날 것 같지 않았는데 뿌연 안개를 밀치고 환한 태양이 얼굴을 내밀었다….

 

 안개바다
안개바다 ⓒ 김찬순


#해안 안개#부산#안개도시#삼포길#명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