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쇠고기 수입 협상 과정에서 참여정부가 2008년 총선을 의식해 미국과의 약속을 어겼다는 주장에 대해,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4일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문 전 실장은 이날 오후 <오마이뉴스>와한 전화통화에서 "지난 2007년 3월 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한 통화에서 무조건적인 쇠고기 수입 개방을 약속한 적이 없었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지난 2008년 4월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으로 한미 쇠고기 수입 협상을 이끌었던 민동석 외교안보연구원 외교역량평가단장은 최근 내놓은 자신의 책에서 "노 전 대통령이 부시 전 대통령과 한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문 전 실장은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부시 전 대통령에게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권고를 존중해 국내 쇠고기 시장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개방할 의향을 원칙적으로 갖고 있다고 말했다"면서 "대신 (수입 개방) 조건을 (부시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 "미국 쇠고기 개방 요구는 합리적이지 않았다"
문 전 실장이 밝힌 조건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는 국민의 자존심과 연결돼 있는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일본과 대만 등 주변 국가들과 수입 조건이 균형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것.
그는 "노 전 대통령께서 우리만 먼저 따로 앞서서 쇠고기 시장을 개방하기란 어렵고, 일본과 대만 등과 진도를 비슷하게 가야한다는 조건을 달았다"고 말했다.
참여정부가 끝날 때까지 일본은 미국산 쇠고기의 경우 뼈를 포함해 20개월 미만 조건을 풀지 않았고, 대만 역시 뼈를 제외한 30개월 미만의 살코기 수입 조건을 유지하고 있었다.
문 전 실장은 "미국 쪽에선 OIE의 광우병위험 통제국 지위를 얻은 이후, 오히려 전 월령, 전 부위의 수입을 요구해왔다"면서 "이 같은 요구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았고,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강조했다.
이어 참여정부 말기에 2008년 총선을 의식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문제를 이명박 정부에 떠넘겼다는 민 단장의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아전인수격인 해석에 사실까지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쇠고기 협상을 이명박 정부에 떠넘겼다? "아전인수격 해석에 사실 왜곡"
민 단장은 2007년 대선 직후인 12월 24일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 실무부처의 의견을 무시하고 '다음 정권으로 넘기자'고 결론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문 전 실장은 "당시 장관회의에 참석했었다"면서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당시 한덕수 총리 주재로 관계 부처끼리 논의한 미국산 쇠고기 2단계 수입방안이 보고됐다"면서 "1단계는 30개월 미만의 뼈없은 쇠고기를 우선 수입하고, 2단계는 미국에서 동물성 사료금지 조치 등이 시행될 경우 전 월령의 쇠고기를 수입하는 방안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시 한 전 총리와 김종훈 본부장 등은 쇠고기 수입문제를 타결해야 미 의회에서 한미FTA가 비준될 것이라고 했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이렇게 타결해주면 미 의회가 한미 FTA를 비준해주는 게 확실하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7년 말 미국 의회는 민주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다수당으로 올라선 상황이었다. 게다가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쪽에서 한미FTA의 자동차 분야 등에 강한 불만을 가지면서 직·간접적으로 재협상을 요구해오던 시기였다.
문 전 실장은 "당시만 해도 한미FTA의 미국 의회 비준은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에나 거론될 사안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면서 "노 전 대통령께선 미국으로부터 (한미 FTA 비준에 대한) 아무런 보장이나 전망도 없는 상황에서 과연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이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이 회의 때 관계 부처에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 일체 응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2008년 총선을 의식해 미국에 등을 돌렸다'는 민 단장의 주장에 대해서도, 문 전 실장은 "과거 한·칠레FTA 비준 당시 농촌 출신 의원을 중심으로 엄청난 반대 속에 국회 통과가 어려웠다"면서 "한미FTA는 칠레와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인데, 이 같은 상황에서 쇠고기 수입을 미국 요구대로 허용하면 국민 여론이 더욱 악화돼서 국내 비준안 상정조차도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노 전 대통령의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시절 쇠고기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구를 노 전 대통령이 거부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당시 이 당선자께서 선거 직후인 12월과 1월에 청와대에 두 번 방문했다"면서 "(이 당선자께서) 올 때마다 참여정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소개했다.
이어 문 전 실장은 "노 전 대통령이 국제적 기준에 따른 합리적 수준과 주변 국가와의 균형 등을 자세하게 설명했고, 우리 역시 그동안 약속을 다 지켜왔으며 미국에서 더 이상의 요구를 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노무현 재단 쪽에선 민동석 단장이 최근에 내놓은 <대한민국에서 공직자로 산다는것>이라는 제목의 책 내용이 한미 쇠고기협상 과정에서 사실과 다르게 기술돼 있는지 여부 등을 알아본 후, 향후 법적 대응도 검토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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