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차법)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나. 지난 4월부터 인권기자단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같은 달 14일 '장차법 2주년 토론회'에 참석하게 됐고, 그것이 계기가 돼 모니터링단 활동까지 하게 됐다.
장차법 모니터링단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소속으로, 부산 모니터링단 인원은 30명 정도 된다. 지난 6월에 꾸려진 모니터링단은 오는 10월까지 활동할 예정이다. 모니터링단에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골고루 섞여 있으며, 전국 곳곳의 시설을 방문해 장애인편의시설 및 서비스가 잘 운영되고 있는지 모니터링한다. 모니터링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하여 미흡한 부분을 각 시설에 제언하지만, 강제력 없는 '권고' 수준이다.
지난 3일, 첫 모니터링 장소로 택한 부산광역시 중구 용두산 공원을 찾았다. 어릴 때부터 심심찮게 놀러가곤 했던 용두산 공원. 도심 한 가운데 남은 쉼터, 그래서 오갈 곳 없는 이들이 모여드는 '정겨운 곳'이라는 친숙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곳이다. 그런데, 내가 수십 수백 번 들른 그곳에 장애인들은 몇 번이나 갈 수 있었을까. 무릇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다.
용두산 공원의 출입구는 4~5개 정도다. 공원이니 만큼 이곳저곳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러 개의 출입구 중 장애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다.
먼저 주출입구. 광복로에서 이어지는 이 출입구는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로만 이루어져 있다. 한마디로 휠체어로는 절대 이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유도블록이 설치되어 있긴 하지만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과 연결되어 있지 않아 유명무실한 상태다. 시각장애인이든 활동장애인이든 용두산 공원으로 진입하는 일부터 쉽지 않다.
또 다른 출입구는 비탈길이다. 경사가 꽤 가팔라서 전동휠체어가 아닌 일반휠체어로는 진입이 불가능할 듯하다. 차들이 끊임없이 씽씽 달리는 것도 문제다. 시각장애인이 이 출입구를 통해 용두산 공원을 이용할 경우 교통사고의 위험이 크다.
나머지 출입구는 모두 계단이다. 그것도 꽤 수가 많다. 이럴 경우에는 비장애인들도 힘들게 올라올 수밖에 없다. 휠체어를 이용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공원 내 주차구역은 총 두 곳이다. 아주 넓진 않지만 제법 많은 차량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다. 우리 아파트에도 있는 장애인전용주차구역, 공공시설이니까 당연히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내 예상은 빗나갔다. 장애인전용 마크가 새겨진 구역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주차장에서 장애인마크를 붙인 차량을 발견했으나 일반 주차구역에 주차되어 있었다. 장애인이 차량을 가지고 공원 내로 진입하더라도, 우선적으로 주차할 수 없다.
공원 내 여성용 화장실 세 곳을 둘러보았다. 역시 장애인전용칸이 '있긴 있다'. 그런데 사용할 수 없을 것 같거나 관리가 소홀하다. 첫 번째 화장실은 휠체어 여유공간이 부족해서 활동장애인이 들어갈 수 조차 없다. 두 번째 화장실은 휠체어 여유공간이 부족할 뿐더러 사용하는 사람이 많이 없는지 안쪽으로 잠겨있다. 마지막 화장실은 그나마 양호했다. 널찍한 전용칸이 있어 휠체어를 타고도 충분히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앗, 그런데 변기 옆에 대걸레가 널려 있다. 만약 저 화장실을 이용한다면, 그리 유쾌한 기분이 들지는 않을 것 같다.
장차법 모니터링단으로서의 첫 번째 활동을 마쳤다. 여기저기 오가며 장애인전용 화장실이나 엘리베이터를 꽤 봐왔던 터라 솔직히 공원에도 시설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을 줄 알았다. 고지대에 있는 공원이기에 원래부터 장애인의 접근이 힘들겠지만, 엘리베이터 등이 설치된다면 완전히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제대로 설치되어 제대로 사용되는 모습을 봤다면 좋았으련만, 첫 번째 모니터링부터 실망스런 모습을 보게 되어 안타깝다. 앞으로 활동하며 나는 얼마나 많은 실망과 뿌듯함을 느끼게 될까? 부디, 앞으로는 뿌듯함만 느끼게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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