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우월해지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상대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들을 가지고 있다면 대화와 분위기를 주도해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상대에 대한 공격도 수월하게 할 수 있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만큼 유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런 규칙은 범죄의 세계에도 적용된다. 누군가를 상대로 살인이나 사기 등의 범죄를 구상할 때, 상대방에 대해서 많이 알면 알수록 좋다. 그가 몇 시에 일어나서 어떤 교통수단으로 출근하는지, 평소에는 몇 시에 퇴근하고 어떤 음식점을 선호하는지 등.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사람의 통장잔고가 얼마인지 친구관계가 어떤지도 함께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많은 정보를 알아두면 나중에 그 정보를 이용해서 범죄현장을 어지럽힐 수도 있다. 누군가를 죽이고 나서 사건 현장에 엉터리 단서를 심어두고 그 단서가 피해자의 친구에게 향하도록 할 수도 있다.
정보와 데이터에 집착하는 살인범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 8번째 편인 <브로큰 윈도>(제프리 디버, 랜덤하우스코리아)에는 바로 그런 연쇄살인범이 등장한다. 그가 사람을 죽이는 데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그냥 자기만족을 위해서 살인을 한다. 살인의 대상들이 대부분 젊은 여성이라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성적인 동기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이 살인범에게는 특정한 방식이 있다. 목표물을 정한 후에 그 여성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아 낸다. 어떤 일을 하고 마트에서 무슨 물건을 주로 사는지 주변 인간관계가 어떤지 등. 그리고 업무 때문에 예전에 잠깐 만났던 사람처럼 위장해서 접근한다. 상대 여성은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고 긴장을 풀게 된다.
그러려면 사전조사를 무척 꼼꼼하게 해야 할 것이다. 조사가 치밀할수록 범죄를 성공시킬 가능성은 높아진다. 살인을 한 후에는 현장에 엉뚱한 단서들을 심어놓는다. 그 단서들은 모두 진짜 살인범이 아닌 특정한 다른 사람에게로 수사의 방향을 돌려버리는 역할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범인으로 지목될 특정인에 대한 사전조사도 빈틈이 없어야 한다. 살인범이 여태까지 이런 식으로 몇 명의 여자를 죽였는지, 또 몇 명의 평범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는지 알지 못한다. 그야말로 완전범죄 퍼레이드를 벌이며 경찰의 수사망을 빠져나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살인범도 법과학자 링컨 라임의 눈길을 피해가지는 못한다. 평소처럼 사건 수사에 여념이 없던 어느날, 링컨 라임은 불길한 소식을 듣게 된다. 그동안 소식이 없던 사촌 아서 라임이 살인혐의로 구속되었다는 것이다. 아서를 진범으로 밝혀줄 증거들은 현장에 넘쳐나는데, 막상 아서는 자신이 한 살인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부정하고 있다. 링컨 라임과 그의 연인인 아멜리아 색스 콤비는 어떻게 사건의 진상을 밝힐까?
수사진과 살인범의 두뇌싸움<브로큰 윈도>에서 링컨 라임은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독특하게도 사촌과 얽힌 자신의 과거를 여러 차례 회상한다. 그동안 자주 과거를 회상했던 아멜리아 색스와는 달리 링컨 라임은 좀처럼 그런 적이 없었다. 자신을 전신마비로 만들었던 사고에 관한 기억을 제외하면.
작품의 제목을 번역하면 '깨진 창문'이다. 창문이 깨진 집, 창문이 깨진 자동차 등은 범행의 대상이 되기 쉽다. 범죄를 없애기 위해서는 이런 사소한 것들을 개선해야 한다. 거리의 낙서를 지우고 아파트의 계단을 청소하고 가로등을 수리하는 작은 일들이 중요하다. 괜히 비싼 돈 들여서 감시카메라를 여기저기 설치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것들을 개선하더라도 <브로큰 윈도> 속 살인마 같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링컨 라임과 수사팀은 정체불명의 살인범이 '모든 것을 아는 사나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살인범은 모든 것을 알기 위해서 정보와 데이터에 집착한다. 사람이 죽더라도 그에 관한 데이터는 남는다. 때문에 살인범에게 육체의 죽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
지능적인 살인범이라서 수사진도 어려움을 겪는다. 정보를 중시하는 살인범을 추적하려면 상대방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살인범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고 한발 앞서 나갈 수 있다. 범죄수사에서도 아는 것이 힘이고 정보가 권력이다.
덧붙이는 글 | <브로큰 윈도> 제프리 디버 지음 / 유소영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