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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 산을 오르면서 온 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중턱에 앉아 빨간 빛을 발하는 교회당의 십자가를 세어 본 적이 있다. 2개 리(里)만으로 되어 있는 작은 읍내에 빨간 십자가가 열다섯 개나 되었다. 빨간 빛이 아닌 천주교 성당의 십자가를 포함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십자가들도 있을 것이다.

 

누가 대한민국을 하느님께 바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대한민국은 이미 기독교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50대 교회 중에 한국 교회가 23개나 되고, 세계 10대 교회 중 무려 일곱 개가 한국 교회다. 1, 2, 3위를 다 한국 교회가 차지하고 있다.

 

남한 전체 인구 중 개신교 신자가 1700만 명이라고 한다. 천주교 신자도 500만 명을 넘었다.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하면 그리스도교 신자는 무려 2200만 명에 이른다. 전체 인구 절반 이상이 그리스도교 신자인 셈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숫자상으로는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미 '지상낙원'이 만들어진 셈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그리스도의 정신이 온전히 뿌리내린 세상인가? 복음정신이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 사회인가?

 

가톨릭 교회의 상본 가톨릭 교회에는 수많은 예술품과 상본들이 있어서 신자들의 신앙 표양에 이바지한다.
가톨릭 교회의 상본가톨릭 교회에는 수많은 예술품과 상본들이 있어서 신자들의 신앙 표양에 이바지한다. ⓒ 한상봉

 

오래 전에 어느 분이 말했다. 바닷물을 구성하는 수만 가지 성분 중에 바닷물을 짜게 하는 염분이 차지하는 비율은 3%에 불과하다고. 그 3%의 비율이 전체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는 거라고. 그래서 어떤 분이 또 이런 말을 했다. 한국에 성당과 교회가 너무 많고 그리스도교 신자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사회가 더 혼탁하고 범죄가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고. 그리스도교 신자가 전체 인구 중 3% 정도의 비율만 차지한다면 오히려 제대로 소금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고.

 

예전에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적잖이 고민했다. 복음정신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고, 빛과 소금의 역할이 진정 어떤 것인가에 대해 숙고를 거듭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신앙관 중에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예수 믿어 구원 받자', '예수 믿어 복 받고 천당 가자'는 그 핵심 목표가 실은 가장 치명적인 문제임을 헤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고 절대적인 가치이지만, 그것은 굳이 구호나 표어로 내세울 필요가 없는 말이다. 그것을 구호나 표어로 내세우지 않더라도 그 목표는 기본이자 궁극적인 핵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존재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뜸 그런 궁극의 목표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예수님 따라, 예수님 마음으로 세상을 바르게 만들자'라는 구호와 표어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예수님 따라 예수님 마음으로 세상을 바르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그 노력의 대가로 누구나 신앙의 최종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 믿어 구원을 얻자'는 것은 개인적 성격을 지니지만 '예수님 따라 예수님 마음으로 세상을 바르게 만들자'는 공동의 성격을 지니는 것임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 한국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예수 믿어 구원 받자'라는 도식에 깊이 젖어 있다. 여기에 '예수 믿어야 복 받는다'라는 도그마에도 익숙해져 있어서 기복신앙을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해 낸다. 이제라도 그 단순한 도식에서 벗어나 모든 신자들로 하여금 '예수님 따라, 예수님 마음으로 세상을 바르게 만들자'라는 가치 지향에 익숙해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곁들여 교회는 신자들을 교육함에 있어 '예수님의 눈, 예수님의 마음'을 많이 가르쳐야 한다. 어떤 현상이나 당면 문제 앞에서 예수님의 눈과 마음을 생각해보게 하는 것, 그런 습성을 길러주는 것이 참으로 필요하다. 이런 경우에 예수님은 어떤 마음이실까? 어떤 눈으로 보고, 어떻게 판단하실까? 등의 의문들을 가져보게 하는 것은 교육으로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본다. 하지만 교육 여부를 떠나서 진정한 그리스도 신자라면 마땅히 예수님의 눈과 마음을 가져보려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자신을 예수님 입장으로 치환시켜 생각해보는 것은 사물을 제대로 보고 판단하는 일에 명확한 도움을 줄 수 있다.

 

선거 때는 주변 사람들과 설왕설래를 하기도 한다. 그에 따라 간혹 특별한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상대방이 천주교건 개신교건 그리스도교 신자일 경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예수님이라면 그에게 표를 주실까요? '예수님이라면?'을 생각하시면서 결정하세요." 그런 말을 지난 대선 때는 유난히 많이 했다. 물론 별 효과는 없었지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한국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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