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림 서울새내기조합원 생산지 방문'으로 10일 충북 괴산 '솔뫼농장'을 다녀왔다. 지난겨울에 지인의 소개로 '한살림 생협'의 조합원으로 가입을 했었다. 한살림생협에서는 일 년이 안 된 조합원들을 새내기라고 해서 교육 및 생산지 방문의 기회를 주고 있다.
우리를 안내하는 한살림 홍보담당 조합원은 "생산지 방문은 여행이라기보다는 교육받으러 가는 것이 우선 목적입니다. 생산지에서 제대로 된 상품을 내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 한살림의 정신이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모두 신나고 즐겁게 좋은 체험을 해 봅시다"고 말한다.
또 차 속에서 짤막한 자기소개의 시간도 가졌다. 가족들의 밥상을 어떻게든지 유기농으로 살려보고자 일찌감치 발 벗고 나선 엄마들은 똑 소리 나게 말도 잘한다. 어떤 이유이든 간에 밥상에 오르는 먹을거리의 소중함을 알고 모인 사람들이다. 젊은 엄마들 틈에 끼어 다 늦게 새내기가 된 나도 소개를 했다. 끊임없이 재잘거리며 노는 아이들 때문에 차 속은 바글바글 죽 끓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 오히려 잠이 왔다. 3시간 쯤 걸려 목적지인 솔뫼농장에 도착했다.
'솔뫼농장'은 개별 생산자들이 각자의 농산물을 생산해서, '솔뫼공동체'이름으로 한살림 등에 물품을 보낸다고 한다. 찹쌀, 토마토, 고추, 늙은 호박, 수세미 등의 1차 농산물과 가공품으로 고추장, 엿기름, 메주 등을 생산하여 공급한다. 그 외에도 공동체 속에서는 '농사의 품질관리', '유기농 품질 기준관리', '농사 협력', '도농교류를 위한 협력' 등을 함께 한다.
처음(1994년) 5가구가 무농약으로 시작해 지금은 14가구가 솔뫼공동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곳은 충북과 경북의 도 경계지역이다.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지점이며 속리산과 화양계곡이 가깝고, 남한강이 시작되는 청정지역이다. 이런 지리적 요건에다 다행히 국토 난개발의 영향을 덜 받은 환경 덕분으로 유기농 농사를 짓기에 유리한 지역이기도 하단다.
2008년에 '한살림 농업살림기금'과 소비자들의 출자, 모금, 노력봉사 등으로 도농교류회관인 '솔뫼어울림터'도 건립했다. 이 어울림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년 간 천오백여명 정도라고 한다. 어울림터는 도시 소비자들이 자연 속에서 농촌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니 많이 활용 했으면 좋겠단다.
가공공장에서 일하던 조합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에 우선 고추장 가공공장부터 둘러보았다. 보리를 싹을 틔워 엿기름을 만드는 현장과 고추장 단지들을 돌아보며 생산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현재는 고추장을 익히고 있는 과정이란다. 독마다 날짜가 새겨져 있었다. 약 10개월을 숙성해서 출하한다고 한다. 고추장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는 유기 재배한 국산재료들이다.
"공동체에서 발효식품을 만들기 위해 가공공장을 세우고 운영하는데 현재는 고전중입니다. 고추장 항아리 가격만 해도 만만치 않고, 발효식품은 밥상에 오르기까지의 오랜 시간을 요하는 것이라, 당장에 수익이 나는 것도 아니지요. 하지만 좋은 음식은 고생을 해야 얻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도시회원들의 많은 이용은 우리들에게 용기를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설명을 하는 생산자의 둥글한 구리 빛 얼굴과 항아리가 닮았다. 퉁퉁한 항아리가 보물처럼 여겨진다. 아파트 베란다에 소금항아리정도만 보관하고 있는 나로서는 탐나는 풍경이다. 고추장 맛보기는 검붉게 탄 단단한 위쪽을 검지로 살살 헤집어 안쪽의 선홍색 말랑한 장을 쿡 찍어 입 안에 넣고, 그 얼얼한 맛의 감촉을 느껴보아야 제 격인데, 여기서는 많은 사람들의 먹을거리이기에 그렇게 할 수 없단다. 아쉽다. 쩝쩝 입맛만 다시고 아쉬움에 장항아리의 퉁퉁한 배만 만지작거리다 나왔다.
가공공장 지붕에는 태양열 발전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것은 생산자들이 운영하는 것이 아니고 '한살림햇빛발전소'의 사업이다. 한전은 이렇게 개인이나 단체가 친환경 태양열 전기를 생산할 경우 일반 전기 판매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사들인다고 한다. 한살림은 그 수익금 전액을 지역사회공동체 등에 기부하는 형식으로 운영한단다.
바로 옆 비닐하우스는 토마토 농장이다. 하우스 안은 매우 더우므로 아이들은 물놀이 하러 가고 어른들만 들어가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딸 수 있었다. 도시에서 주말농장을 하고 있는 회원 중에서는 생산자님의 토마토 재배법 설명에 이것저것 질문을 하고, 어떤 형식의 유기재배를 하고 있는지도 꼼꼼히 묻는다.
우리를 태워 온 대형버스는 아이들을 태우고 냇가로 갔기에 농장을 둘러본 어른들은 몇 대의 조그만 농사용 트럭 짐칸에 나눠 타고 바람을 가르며 솔뫼어울림터가 있는 곳으로 옮겼다. 점심시간이 된지라 우선 밥부터 먹었다. 소박한 음식들에 감사하며 아이들도 잘 먹는다. 어른들은 시원한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찬 식혜와 따뜻한 보이차도 준비돼 있었다.
생산자님들이 새내기 조합원들을 위한 음식을 만드느라 특별히 시간을 낸 것이라, 바쁜 농사철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들녘의 해는 푸른 논밭을 달구는데 어울림 마당에 마련되어 있는 원두막에 앉으니 등허리에 흐르던 땀방울이 시나브로 잦아든다. 수박 하우스에서 일하느라 틀어 논 라디오에서는 '싱글벙글쇼' 김혜영씨의 목소리가 음파를 타고 할랑할랑 사방으로 번진다. 밥을 먹어 배가 그득하니 세상사 유유자적한 마음 들어 편안해 진다.
오후 시간은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간담회를 갖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서로 소개도 하고, 도농 간의 활발한 교류로 땅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자는 이야기들이 오간다. 흙을 살리는 일은 생산자만의 일이 아니다. 때문에 도농 직접적 교류를 통한 유기농 농산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전폭적인 관심과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동안 논에 제초제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았더니 투구새우와 멸종위기에 있던 야생 미생물들이 되살아나고 있어 '논생물 시범지역'이 되었단다.
"신뢰가 우선입니다"
혹시나 회원 중에 농약을 사용하는 경우가 없었냐는 질문에 아직은 그런 경우가 없었단다. 다만, 약속된 이상의 농산물을 심는 경우에는 서로 조율의 시간을 가졌던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원활하다고 한다. 농사짓는 사람으로서 떳떳함을 내세우는 생산자들의 몸짓은 당당하고 여유가 있어 보인다.
"사실 유기농은 소출이 일반 농사에 비해 훨씬 적습니다. 또 판로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유기농으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고요. 따라서 유기농을 찾는 소비자가 느는 만큼 유기농 생산지도 넓어지는 것이라고 봐야 되겠죠"
그나마 요즘은 친환경 약재들이 개발되어 예전에 비해서는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만날 풀밭에서 산다"는 여성 생산자님의 말이 마음에 담긴다.
4평의 땅에서도 먹을거리보다 풀이 먼저 배를 불리고 자란다는 것을, 비가 오면 각종의 풀들이 먼저 고개를 세운다는 것을, 사람의 손길이 조금만 늦어져도 너울거리는 것은 먹을거리가 아니라 빳빳이 곧추 세운 잡초들이란 것을..... 푸성귀 뜯어 먹는 재미로 하게 된 주말농장이지만, 정말 '전쟁'이라는 표현밖에 달리 쓸 말이 없는 풀과의 씨름은 사람을 고되고 지치게 한다. 그래서 '풀밭에 산다'가 십분 이해되었다.
가공 공장에 있을 때는 흰 모자와 흰 가운을 입고 있던 생산자 김철규씨는 이번에는 '쌀 한톨의 무게는 생명의 무게'라는 글씨가 박혀 있는 옷을 입고 아이들과 열심히 놀아준다. 이렇게 생겼어도 이곳의 유치원 원장이라면서 너털웃음을 웃는 그를 도시의 아이들이 잘 따른다. 아이들은 막힘이 없어 보이는 들판에 더위도 잊고 놀면서 자연의 한 풍경을 만든다.
"후대에 물려줄 것은 돈이 아니라 숨 쉬는 땅입니다. 그래서 이웃의 손가락질에도 굽히지 않고 유기농을 고집해 왔지요. 그것이 농사살림이고 밥상살림이고 생명살림이라고 봅니다."
생산자들이 유기농으로 전환을 하게 된 사연들은 제각각이었지만, 어렵고 힘들고 지난한 시간이 요구되는 유기농을 하는 목적은 그런 사명감 때문이란다.
간담회가 끝나니 좋은 곳을 안내하겠다면서 또 트럭을 태운다. 짧은 다리로 트럭을 오르내리려니 꽤나 모양 빠진다. 십여 분 달려 간 곳은 속리산 자락 끝에 있는 '옥량폭포'와 '왕소나무'가 있는 곳. 거의 같은 장소에 있으면서 '옥량폭포'는 경북 상주시 소재고, '왕소나무'의 주소는 충북 괴산이다. 경계가 넘나든다. 우리도 도농의 경계를 넘어 살가워 진다. 잠시 폭포 계곡에 발도 담그고, 왕소나무의 위용 앞에 세월의 무게도 느끼며 단체사진도 찍었다.
다시 '솔뫼어울림터'로 오니 이번에는 찰진 옥수수가 삶아져 있다. 이곳은 지대가 약간 높아서 올해 것은 아직 이르고 작년에 냉장해 놓은 것이란다. 오늘은 내내 눈과 입이 호강을 한다. 주부가 밥도 하지 않고 설거지도 하지 않았는데 먹을 것이 저절로 들어오니 마냥 한가로운 생각만 든다. 아침 차 속에서 집에 가겠다고 떼를 부리던 어린 친구가 이번에는 집에 가지 않겠다고 칭얼거린다. 그것도 곧 엄마의 품속에서 잦아들고, 돌아오는 차 속은 적절한 피곤함 때문인지 모두 다 조용하다.
땅에서 사람은 들고 나지만, 면면히 이어져 가야할 땅은 반드시 살아있는 생명이어야 한다. 제대로 된 먹을거리에 관심이 많아 오늘의 일정을 소유한 사람들, 특히나 젊은 엄마들의 건강한 책임의식이 든든해 보였다. 어떤 조합원이 생산자에게 "행복하시냐?"고 물었지만, 생산자뿐만 아니라 오늘을 공유한 모두가 건강한 땅에서 행복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