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서 내려 투어버스를 타는 사람들
투어버스는 아침 9시에 출발한다. 시간 여유가 있다. 우리는 잠시 도청리 어항으로 나가 아침 분위기를 즐긴다. 그리고는 버스가 출발하는 주민회관 옆으로 간다. 이미 두 사람이 먼저 와 기다린다. 투어버스 담당자에게 물으니 우리도 탈 수 있다고 한다. 4명이 차에 타자 버스는 도청항으로 간다. 8시 50분쯤 들어오는 배에서 내린 손님들을 태워야 투어가 시작된다고 한다.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니 한 떼의 사람들이 내린다. 순식간에 투어버스가 차고 9시가 조금 넘어 투어를 시작한다. 투어코스는 도청리를 출발하여 당리-읍리-청계리-상서리-신흥리-진산리-국화리-지리를 한 바퀴 돌아 다시 도청리로 돌아오도록 되어있다. 11시 50분 완도행 뱃시간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투어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 밖에 안 된다. 그래서 빨리 빨리 이동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슬로시티 청산도에서 빨리 빨리라니 문제다. 그렇다고 무한정 시간을 줄 수도 없다. 답사를 슬로 슬로로 하면 된다. 그러나 실제로 투어를 해보니 2시간 반에는 어림도 없다. 앞으로 시간을 좀 더 늘렸으면 좋겠다. 점심을 포함해서 5시간 정도하면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요금도 시간에 맞게 현행 5000원의 두 배쯤 받으면 좋을 듯하다.
청산도 한 바퀴
투어버스를 운영하는 사람은 부부다. 남편은 차를 몰고, 아내는 관광해설을 한다. 차는 먼저 당리로 향한다. 당리 주차장에 차를 세우더니 우리에게 20분 정도 시간을 준다. 아내와 나는 어제 한번 갔다 온 곳이라 여유를 부린다. <봄의 왈츠> 세트장에는 또 갈 필요가 없고, <서편제> 세트장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침이지만 아주머니들이 벌써 나와 장사를 하고 있다.
당리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서편제> 세트장이다. 이곳에서는 도락리 쪽으로의 전망이 좋은 편이다. 아내와 나는 세트장 안에서 사진도 찍고 산책도 하면서 여유를 즐긴다. 그런데 옆의 마늘밭에는 아주머니들이 나와 밭을 매고 있다. 그들을 보니 놀러 다니는 게 조금은 미안하다.
당리를 보고 난 차는 읍리로 간다. 읍리에는 마을 입구에 느티나무가 있고, 고인돌도 있고 하마비도 있다. 그러므로 읍리는 청산도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는 마을이다. 이곳을 지나 투어버스는 청계리를 거쳐 범바위로 간다. 범바위로 가는 길은 구장리와 권덕리 쪽으로도 나 있지만, 차를 가지고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청계리 쪽 코스를 택한다.
버스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범바위
청계리에서 범바위로 이어지는 길은 청산도의 차마고도라고 관광해설사가 설명한다. 그것은 보적산 산줄기를 돌아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범바위 주차장에 이르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 있다. 이곳에서도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30분이다. 범바위까지 올라갔다 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빠듯하다.
먼저 작은 범바위에 오른 다음 고개를 넘고 휴게소를 지나 큰 범바위로 오르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큰범바위는 암봉이어서 모든 사람이 다 오를 수가 없다. 산을 조금은 탈줄 알아야 오를 수 있다. 그래서 아내는 포기를 한다. 나는 범바위 조망을 포기할 수 없어 정상까지 올라간다.
그곳에 오르니 동쪽으로 매봉산(384m)이 가까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연무로 인해 바다가 약간 뿌옇게 보인다. 그리고 바로 앞으로 바위섬인 상도가 보이는데, 마치 청산도로 다가오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바위를 내려오니 관광해설사가, 이곳 범바위 지역의 자기장이 강해 버뮤다 삼각지대처럼 전자기기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해도에도 이곳 범바위 앞 청산도 삼각지대가 자기장 이상 지역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범바위가 자성이 강한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란다. 자석을 바위에 대면 붙을 정도라고 하니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것 같다. 범바위는 이래저래 청산도의 관광명소가 되어가고 있다.
겉과 속이 다른 '1박2일'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돌로 만든 담장과 구들장 논으로 유명한 상서리다. 상서리 마을회관 앞에 차를 내리니 아주머니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이곳에도 역시 농산물과 해산물을 파는 매장이 형성되어 있다. 나는 그보다는 돌담에 관심이 많아 마을로 들어간다. 돌담은 바람이 많은 섬지방의 특성을 고려해 만든 견고한 방어막이라고 한다.
이들 돌담에는 담쟁이 같은 식물들이 붙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마을의 특성을 고려해 돌담을 보완하는 작업도 하고 있었다. 좁은 돌담길을 한 바퀴 돌아 나오니 구들장논과 밭이 보인다. 구들장논이란 구들을 깔듯 논바닥에 돌을 깔고 그 위에 흙을 쌓아 만든 논이다. 그러나 이제는 쌀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논의 가치가 옛날만큼 크지는 않다고 한다.
상서리 마을을 보고나서 우리는 신흥리로 간다. 시간이 없어 신흥리부터는 내리지 않고 그냥 지나쳐 간다. 그러다 보니 관광해설사의 설명이 길어진다. 신흥리는 해수욕장으로 유명하다. 조수간만의 차가 두드러지고 2㎞나 되는 백사장을 갖고 있어 야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 때문에 KBS에서 방영하는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이 지난해 이곳 신흥 해수욕장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당시 신흥리 마을 사람들은 연예인을 만나는 꿈에 부풀었다고 한다. 그런데 주민들을 근처에도 못 오게 해 실망이 컸다는 것이다. 연예 프로그램들이 이처럼 겉과 속이 다른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주민친화적이고 예의바른 것처럼 포장하지만, 프로그램 하나를 만들기 위해 주민들을 이용하거나 배제하기도 하며 때에 따라서는 고압적으로 굴기도 많다. 이러한 일로 해서 청산도 사람들은 최근 방송을 타는 것에 대해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청산도를 떠나며
신흥리까지 보면 내용적으로 청산도의 2/3 정도를 본 것이다. 나머지 북쪽 1/3은 문화유산이나 자연유산이 남쪽만 못하다. 북쪽에는 진산리, 국화리, 지리가 있다. 진산리는 동쪽으로 향하고 있어 해뜨는 마을로 유명하다. 또 해수욕장에 몽돌이 많아 파도에 부딪치는 소리가 깊은 울림을 준다고 한다. 가까운 곳에 갯바위 낚시터도 있어 낚시꾼들이 많이 찾고 있다.
투어버스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지리다. 지리에는 해수욕장이 있고, 전복 양식장이 가장 넓게 분포되어 있다. 또 해수욕장 뒤로는 송림이 있어 야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래서인지 민박집은 지리에 가장 많다. 그리고 지리는 서쪽으로 향하고 있어 낙조가 특히 아름답다고 한다.
이들을 보고 도청리로 다시 돌아오니 11시30분이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로 가 가방을 찾아 도청항 선착장으로 가니 11시40분이다. 벌써 완도로 가는 배가 대기하고 있다. 이번 배는 청산고속카페리호로 사람만 탈 수 있다. 배에 오르니 역시 사람들이 많다. 청산도는 이제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한적하게 시간을 보내기는 어려워졌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산도는 꼭 한 번 찾을 가치가 있는 섬이다. 아직 옛날 정취가 그대로 남아있고, 상업성이 덜 하기 때문이다. 작은 섬에 산과 바다 그리고 문화가 어우러져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섬, 청산도는 그래서 좋다. 청산도 슬로우 걷기축제 홈페이지는 청산도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진도아리랑이 들려오는 서편제 고개를 거닐고...봄의 왈츠 촬영지에서 유채꽃 향을 맡으며...청보리의 푸르름을 가슴으로 느끼고...다랭이논의 아기자기한 모습도 가슴에 담고...화랑포 해변의 바다 절경을 온 몸으로 느끼고...성서마을의 옛 돌담길을 걸으며...내 인생의 쉼표를 찍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