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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겉표지
 <강남몽> 겉표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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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황석영은 '강남형성사'에 관한 소설을 쓰겠다고 말했었다. '강남'이라는 특수한 지역에 얽히고설킨 사람들의 욕망을 그려보겠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책으로 쓴다는 것이 가능할까? 분량만 따진다면 조정래의 <한강>에 버금가는 대하소설이 되지 않을까? 많은 생각이 들 때, 황석영은 '강남형성사'에 관한 소설을 인터넷 서점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설이 책으로 나왔다. <강남몽>이라는 제목의 장편소설이다.

<강남몽>은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소설을 이끌어가고 있다. 등장하는 이들은 성장배경도 다르고 사는 환경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르다. 하지만 그들을 연결하는 것이 몇 개 있으니 그중에 하나가 '강남'이라는 지역이다. 소설은 '박선녀'라는 여자가 대성백화점에 쇼핑을 갔다가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갑자기 무너졌던 삼풍백화점을 연상시키는 대성백화점이 숱한 위기신호를 보내더니 그것처럼 기어코 붕괴된 것이다. 강남에서 돈 꽤나 있다고 하는 박선녀는 졸지에 콘크리트 더미에 갇힌다.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박선녀의 생명을 위협하는 그곳은 한때 그녀의 팔자를 바꿔준 곳이었고 또한 돈을 벌게 해준 곳이었다. 술집을 운영하면서 돈을 벌고 깡패들을 고용해 돈을 지키고 고급 정보를 얻어 돈을 불릴 수 있었던, 이제는 재벌가의 가족이 된, 비록 그것이 후처일지라도 엄연히 가족으로 인정받고 있는 그녀가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된 것은 오롯이 강남이라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그곳에 깔려 있다. 사람 인생이라는 것이 이렇게 덧없는 것일까? "거기 누가 있어요?"라고 묻는 그 목소리에서 그런 인상이 묻어난다.

박선녀와 수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죽음으로 몰아간 백화점, 그걸 만든 이는 누구였던가? 백화점이 위험하다는 신호를 접하고서도 끝끝내 모른 척 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백화점으로 상징되는 '강남의 꿈'을 좇아 이곳에 달려온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돈을 벌겠다는 욕망과 남부럽지 않게 살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짓은 물론이고 금수만도 못한 짓을 했던 이들은 누구였을까? 강남의 꿈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렇게도 사람들은 이곳을 향해 몰려들었던 것일까?

황석영은 박선녀를 시작으로 일본군의 앞잡이 역할을 하다가 해방 직후 미군의 앞잡이가 되어 한국 근현대사의 그늘에서 건설업 등으로 돈과 권력을 취했던 김진, 얼치기 부동산업자가 된 후 청와대의 정치자금 마련을 위해 부동산 투기를 했던 심남수, 광주 충장로파의 전설적인 주먹 홍양태, 백화점 지하 아동복 매장에서 일하는 임정아 등을 통해 '강남의 꿈'을 이야기하는데 그 솜씨가 '황석영의 것'답다. 단 한 권의 소설로, 강남으로 상징되는 한국 자본주의 형성과정과 숨겨진 오점들을 역동적으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황석영이 아니라면 이렇게 큰 스케일의 소설을 누가 한 권으로 담아낼 수 있었을까? 거장의 노력이 엿보인다.

하나의 다큐멘터리 같다고 할까? 거대한 거품처럼 들끓는 사람들의 '솔직'한 욕망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한국 근현대사의 장면들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강남몽>은 소설이면서 또 하나의 다큐멘터리같다. 이 다큐멘터리 같은 소설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누군가는 배가 아프고 누군가는 속이 쓰리겠다. 아주 많이.


강남몽

황석영 지음, 창비(2010)


태그:#황석영, #인터넷 연재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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