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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향이의 배를 열자 자궁이 있는 쪽이 상해 있었다. 부어오른 형태로 보아 단순한 부기가 아니고 아래쪽에 상한 부분이 있고, 질엔 가제에 싼 좌우 1센티 가량의 물건이 끼어 있었다. 그것을 뽑아내자 주위는 퍼렇고 까만 피가 엉켜 있었다.

"이게 흉기구먼. 여기에 극독이 있었어."

내의원에서 출장 나온 검시의가 주장을 폈다.

"내가 보기엔 내장 색깔이 아래쪽과 옆이 다른 것으로 보아 병이 침범한 것 같습니다. 그것을 알고 가제로 싼 치료약을 사용한 것 같은데···, 그게 독약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약용이 의혹을 제기했다.

"그렇다면 죽기 전 요란을 떨었을 것 아닌가. 지독한 고통이 몰아쳤을 것 같은 데 그것을 참고 죽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아닙니다. 내의원에 보낸 물목 중 탕약 두 첩이 있었어요. 의생들이 그것을 분석한 결과 진통을 멎게 하는 약제와 수면 효과가 있는 성분이 검출됐으니 죽은 계집은 자신의 질구에 가제를 넣고 죽음을 맞이한 거요."

"죽음을 맞이했다, 아니면 죽어야 했다. 어느 쪽인가? 허나 내 생각은 다르오."
"뭐가 다르오. 정수찬?"

"궁엔 사람을 죽이는 약재가 많소이다. 대비전 나인이 스스로 죽으려 했다면 목을 매거나 비상을 먹지 자신의 음패 안에 독약을 밀어 넣는다는 게 납득할 만한 일인가?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오. 질구 안쪽 낮은 위치가 감염된 상처처럼 흐물거리는 것으로 보아 내 생각엔 창병에 걸렸을 것이오. 그래서 소향이란 나인은 자신의 몸에 닥친 병증을 치료하려 사내를 찾아갔을 것이고, 사정을 알게 된 누군가는 치료약을 준비한다는 것으로 안심시키고 독약을 넣어 절명시켰소. 물론 진통 효과가 높은 탕약을 먼저 먹게 했을 것이네. 소향이가 간 곳은 두 곳이네. 성의학서에 나오는 요초방을 필사해 준 사내와 수표교 옆 제중당이네. 제중당을 방문해 탕약을 그곳에서 지은 것인가를 알아오고 서과는 나와 함께 하원이란 기생 양성소를 찾아가자."

정약용 일행이 명례방에 도착한 건 정오가 이른 시각이었다. 그래선지 하원엔 손님을 맞아들이는 부산스러움이 없었고 여느 집처럼 한가했다. 문을 두드리자 하품을 풀풀 쏟으며 수원에서 왔다는 서른이 못돼 보이는 여인이 나왔다. 아무 옷이나 걸친 데다 머리를 빗지 않은 탓에 부스스했다.

"이 집은 장안에서 이름께나 날린 기생 양성소가 아닌가. 한데 어인 일로 이렇듯 한산한가?"
"댁은 뉘시우?"

정약용이 대문 턱을 넘으며 검지 끝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 말인가?"
"그렇수. 뉘시우?"

"사원부에서 나온 관원일세!"
"예에?"

"어찌 놀라는가? 잘못한 게 있는 모양이구먼."
"잘못은요! 그런 거라면 금오위인가 하는···."

몸채 쪽에서 여인의 물음이 카랑하게 날아오자 수원댁은 재빨리 부엌 쪽으로 사라졌다. 정약용의 눈짓을 받은 서과가 그쪽으로 가는 것과 동시에 하원의 주인 임수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을 비스듬히 튼 채 왼손으로 치마말기를 거머쥔 품새가 거만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그동안 잘 있었는가?"
"술청을 열려면 이른 시간인데 웬일이시우?"

"소향이란 나인이 이곳 하원출신이 분명할 터. 몇 달간 여러 차례 이곳에 들른 것으로 아네만?"
"제 년이 자란 곳이니 보고 싶은 얼굴도 있겠지요."

"한데, 그 나인 죽었네."
"예에?"
"어찌 놀라시는가. 모르는 건 아닐 것이고 그 나인이 이곳에 들러 누굴 만났는가?"

"만날 사람 만났겠죠. 내가 직접 따라다니며 누굴 만나는 지 보지 않은 이상."
"그래서 묻는 것 아닌가. 자네가 못 보았대도 알아내는 방법은  있네. 자, 모두들 따라 나오시게. 일단 사헌부로 들어가면 모든 걸 실토하게 될 게야."

임수경의 표정이 금방 부드러워졌다. 그녀는 설픗설픗 눈웃음 치며 길 안내를 하듯 한손을 폈다.

"에이, 그러지 말고 올라 오우. 약주 한 잔 한 다음 죄가 있으면 잡아가시우. 수원댁! 술상 좀 내오게."

객방에 마주 앉자 정약용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추호도 자넬 귀찮게 아니할 것이니 아는 것만 말하게. 소향이란 나인이 이곳에서 누굴 자주 만났다는데 그 자가 누군가?"

"금오윕니다."
"금오위? 장안의 파락호로 소문난 이철형이 말인가?"

"그런 자가 있어야 우리 같은 술장사가 살 것 아니우. 부모 잘 만나 이 나라 땅덩이가 금오위같은 위인들 소유랍디다. 그 자들이 그것을 꽉 틀어쥐고 있다면 세상이 돌아가겠습니까. 이런 곳에 와서 물 뿌리듯 써대야 화수분처럼 다시 생겨나지요."

"책사에서 해묵은 의약서적을 대여해 거기 나오는 미약을 필사해 금오윌 줬는가?"
"그렇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금오위가 이곳에서 소향이란 나인을 만나 의약서를 필사한 내용을 받고 재물을 주었다? 일은 그것만으로 끝난 것 같진 않고··· 다른 이유가 있는가?"

정약용의 물음이 떨어졌을 때 서과와 수원댁이 객방으로 들어왔다. 서과는 귓속질로 무언가를 말하고 곁으로 물러났다. 이내 물음이 떨어졌다.

"아무래도 안 되겠네. 기생어미인 자네가 사헌부에 가야겠어. 간밤 이 집에서 폭행사건이 일어났는데 자넨 모른다 하니 부득이 관원들이 나설 밖에. 자, 가세. 자네가 사헌부에서 무슨 말을 하는 지 들어볼 것이야."

정약용이 일어서자 임수경이 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요, 아니에요. 다 말씀드리지요. 지난 밤 우리 집에 소동이 있었지요. 임씨 집안의 먼 친척뻘 되는 아이가 이곳에서 손님 시중을 들었는데, 궁중에 미약을 만들 비방이 있다는 말을 듣고 서점에서 의서를 대여해 필요한 부분을 필사해 왔습니다. 그 약은 처음 만들어진 게 아니고 제중당 이주부가 이미 만들어 비싼 값으로 팔고 있던 것이었어요. 금오위는 처방전대로 약을 만들었는데 그 약은 약성이 워낙 강해 중독 증상을 일으키곤 했답니다. 이런 줄 모르고 금오위는 미약이 얼마만큼 효험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우리 집에 있는 아이에게 시험한 거죠. 그런데 사단이 났습니다."

"사단이라?"
"그 아이가 예전에 손님을 받았는데 배 타는 선원이었나 봐요. 그 자가 몸에 창병이 있었는데 병을 옮긴 것도 모르고 금오위와 잠자릴 하게 됐어요. 이 날을 기점으로 그 아이와 금오위는 시간만 났다 하면 함께 지냈는데 그로 인해 창병은 금오위 몸에 깊숙이 잠복한 거죠. 그러던 중 궁안에 끈을 만들기 위해 찻잔에 미약을 타 소향이에게 먹인 후 금오위가 품었는데 미약의 중독성 때문에 두 사람은 만났다 하면 벌거벗고 뒹구는 일이 많아졌어요. 그런데 얼마 전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금오위의 물건에서 노란 농이 흘러내린 겁니다. 질겁한 금오위가 그 원인을 찾다보니 우리 집에 있는 그 아이가 병을 옮긴 거란 사실을 알아냈어요. 때마침 혼겁한 소향이도 이곳으로 금오위를 찾아와 일이 벌어져···."

"소란만 피우고 끝났는가?"
"아니지요. 낭패한 금오위가 지옥에 갔다 부처님을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한바탕 주먹질을 해대고 나서 울화를 삭이는데 안쪽 방문이 열리며 이주부가 나타났어요. 얽히고 설킨 매듭을 풀어줄 것이니 자신의 청을 들어달란 것이었어요. 왕실의 제왕들이 사용하는 처방집에 신선미각방이 있으니 그걸 구해 달라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해 금오위는 신선미각방을 보내는 조건으로 창병에 걸린 두 사람의 몸을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사헌부엔 관원들이 모여 다시 한 번 정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검시기록에 나타난 것으로 보면 이 일의 중심엔 이주부가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서과의 말에 의하면 하루 전 이주부는 금오위 이름으로 옹주에게 서찰을 보내 초빙했다는 것이다.

<내가 청나라에서 어렵게 구해 온 비방집에 신선미각방이 있기에 혼기를 앞둔 옹주님에게 보여드릴까 합니다. 이것은 황제가 무희를 총애할 때 내린 것으로 제중당 이주부에게 선물하게 됐으니 내일 정오에 제중당에 오시면 기이한 비방집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정약용이 상황을 정리해 사건의 전개과정을 그려냈다. 그것은 죽은 상금이와 폭행을 당한 임씨 여인, 그리고 금오위의 관계를 기본적인 삼각구도로 설정했다. 문제는 소향이의 질 속에 들어 있는 독극이었다. 그 점에 대해 금오위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기생들과 노닥거리다 창병 걸린 걸 다른 사람이 안다면  무슨 망신이오. 해서 모든 걸 조용히 풀려 했는데 교활한 이주부 놈이 옹주에게 서찰을 쓰게 해 비방집을 보여주겠다고 하니 내가 편지까지 대령했소. 내 억울함으로 본다면 그 놈을 당장 찢어죽이고 싶지만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잖소. 바라는 건 그 놈이 비방집을 보다 죽음의 신이 데려가길 바랄 수밖에 없소이다."

정약용은 섬뜩한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돌아섰는데 길을 오던 중 아무래도 다시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금오위를 찾아갔을 때 그는 목을 맨 후였다. 시간은 오후 1시가 10분이 지나 있었다. 곁방의 대들보에 줄을 달아 목을 매단 주검을 내려 보니 자액이 분명했다. 앉은뱅이책상 위엔 노란 봉투에 절절한 사연이 쓰여 있었다.

<돌이켜 보면 모든 건 내 책임이고 내 탓이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일엔 이주부의 교활함이 숨겨져 있다. 그자의 간교한 속임수에 넘어가 창병에 걸린 임씨 여인과 통정해 병을 얻었고, 그것을 무마하는 과정에서 이주부는 오히려 일을 더 크게 만들어 대비전 나인 소향이의 목숨을 빼앗은 이유를 모르겠다. 일이 시끄러워지면 모든 게 나로 인해 생긴 것이니 모든 혐의는 내게 돌아올 것이지만 그렇게 되면 나는 억울함으로 인해 구천을 떠도는 원귀가 될 게 아닌가. 그래서 많은 돈을 주고 중국 사천성에 산다는 짐새의 극독을 비방집에 뿌려 두었다. 한 장 한 장 비방집을 넘길 때마다 극독이 새처럼 날아올라 이주부의 심장은 굳어지고 말 것이다.>

호화롭게 꾸민 이주부의 손님맞이 객방엔 비방서가 뒹굴고 그곳엔 일하는 계집아이가 쓰러진 채 숨이 끊겨 있었다. 이주부는 대비전의 급한 연락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옹주가 보낸 답장은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갑작스런 초대지만, 오늘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탓에 다음날 가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귀한 서책 잘 보시고 다음날 제게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추리, 명탐정,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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